[영상] "두려워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죽을까봐" 가습기 살균제 9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신정은 기자 2020. 8. 3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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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사람들 중 43%만 피해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오늘(31일)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 9년째 되는 날입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초청해 공식 사과와 함께 지원확대와 재발방치책 마련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측과 시민단체는 이날도 거리로 나와 아직 피해 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습기 피해자 정부인정질환 인정률이 8.2%로 판정신청자 10명 중 1명도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았다"며 "가습기 피해 인정질환을 늘리고 인정률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정부는 ▲ 폐 질환, ▲ 천식, ▲ 태아 피해 3개 질환만 가습기살균제 피해질환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결과로 기타 폐질환과 신경계 질환 등 각종 병에 걸리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지만 이들 질환이 아니면 피해 신고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정부가 인정하는 질환 증상을 겪어 신고를 하더라도 실제 정부로부터 피해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센터는 "피해신고자의 절반도 안 되는 43%가 피해자로 인정받았고 피해 지원금도 37%만 지급됐다"며 "여전히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질환이 많으며 인정질환도 실제 질환별 인정기준이 매우 엄격하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피해가 알려지고 9년이 지났지만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는 없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지난 10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부인 박영숙 씨를 떠나보낸 남편 김태종 씨는 "아내가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는 SK가 만들고 애경이 이마트에 공급한, 굴지의 회사들이 관련된 상품이다"며 "우리가 물건을 팔아줘 성장한 기업인데 피해자가 죽는 순간까지 사과 한번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토로했습니다.

2014년 2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장모와 아내를 잃은 조병열씨는 "사별 후 지금까지 (판매 기업으로부터) 명확한 답변 한마디 듣지 못하는 이 세상이 너무 서글프고 힘들다"며 발언 도중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날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피 비대위)는 "지금의 피해판정 기준과 인정기준 등을 바로 잡고 불인정 피해자 전부의 피해를 재판정해야 한다"며 "피해신청자의 올바른 배상과 보상을 촉구한다"고 했습니다. 또 "정부가 나서 추모재단을 설립하고 전체 피해자를 위한 추모제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가습기 살균제 후유증은 계속…끝나지 않은 이야기

한국산업환경기술원 통계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신청을 한 6,844명 중 1,559명이 숨졌고 여전히 5천여 명이 후유증을 겪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세 아이들을 간병해 온 어머니 박수진 씨는 "제 인생에서 10~15년은 병원 생활이었다"면서 "셋째 아이는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했고 병원에서는 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또 아이 중 한 명은 공익 판정을 받고 입대한 뒤 훈련 기간 동안 천식 증상이 재발해 치료를 또다시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정부인정질환인 ▲ 폐 질환, ▲ 천식, ▲ 태아 피해 말고도 다른 증상을 겪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임신한 상태에서 중증 천식 진단을 받은 김경영 씨는 피부 발진, 심장통을 겪었고 갑자기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독성 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쓴 뒤 호흡기관 쪽 지병을 갖게 된 이재성 씨. 그는 자신을 '불인정 환자'라고 일컫었습니다. 정부인정질환에 해당하는 증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씨의 아내와 아들은 천식과 비염 증상을 겪으며, 자신은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삶의 의욕을 잃는 등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이었다고 밝혔습니다.

■ 옥시 전 대표는 징역 6년·무죄…애경·SK케미칼 재판 진행 중

검찰은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옥시 등을 대상으로 본격 수사에 나섰습니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2016년 4월,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롯데마트 PB제품)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세퓨 가습기살균제 등 4개 제품이 폐손상을 유발했다는 결론을 내린 뒤 제조사와 유통사 관계자 2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존 리와 신현우 전 옥시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은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됐고 이 가운데 신 전 대표는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존 리 대표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9년 7월, 검찰은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 등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각종 국정감사 자료 등 기밀정보를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환경부 서기관 최 모 씨 등 26명을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습니다. 

■ 100일 남짓 남은 '사참위'…남은 과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피해대책 마련 등에 힘써온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앞으로 100일 남짓 후면 조사 업무가 마감된다고 알렸습니다. 사참위는 이날 한국방송통신대 산학협력단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같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여도 유해물질인 살균성분 농도가 최대 32배의 차이를 보이는 등 제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을 새롭게 제기했습니다. 

사참위 측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직접 만나 위로하고 피해대책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피해의 규모를 파악하는 조사조차 소극적이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듬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 10주년을 앞두고 "남은 1년 동안 정부와 국회가 전력을 다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구성 : 신정은, 편집 : 김희선, 촬영 : 양현철, 화면제공 :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신정은 기자silv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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