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찍는 공연 도중 배우가 넘어졌다면?

김수현 기자 2020. 8. 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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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영상화로 내몰리다시피 하는 공연단체들은 영상 작업 경험이 없다보니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공연을 제대로 영상에 담으려면 어떤 카메라가 몇 대나 필요한지? 객석의 현장감을 영상에 담아내려면 마이크는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찍는 도중 배우가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영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무대공연 제작자들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 국제교류 정보플랫폼 <더 아프로(the Apro)>가 SBS보도본부 팟캐스트 <커튼콜>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총 5회에 걸친 전문가 심층토론 중 3회차의 주제는 <공연예술 영상의 제작>. 실제 공연영상 제작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에게서 영상화 작업의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SBS보도본부 정책문화팀 김수현 선임기자의 진행으로 신태연 예술의전당 영상제작 PD ('싹온 스크린' 총괄), 지민주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 김수기 디지컴코리아 엠앤엠 (영상제작업체) 대표가 참여했다.

1시간 40분에 걸친 토론내용을 둘로 나누어 요약, 소개한다. 이 기사는 토론의 후반부를 다룬다.


● 풀샷이냐 클로즈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민주 : 연극인들은 사실, 무대 전체의 그림을 중요시한다. 국립극단이 올린 <조씨고아 , 복수의 씨앗>의 경우, 제가 본 것만 스무 번이 넘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연극적 흐름은 무대 왼편의 B 배우가 하고 있는 장면인데 오른 편의 A배우가 너무나 열심히 움직이고 있더라. 그걸 그때 처음 봤다. 저 배우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걸 왜 그동안 못 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출가는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있고 배우들도 다른 배우가 움직이는 걸 다 보고 있으니, 그들은 영상에서도 무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걸 원하겠구나 싶더라. 하지만 영상 만드시는 분들은 풀샷 (무대 전체를 한 눈에 보여주는 샷)이 시청자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고 하던데.

신태연 : 풀샷(full shot)으로만 오래 가면 영상이 지루해 지는 건 맞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 중간 타이트하게 들어가고, 컷 전환도 빨라지는 등의 영상 기법이 나온 것이다. 공연을 영상화 한 뒤 시청자에게서 받는 긍정적인 반응의 대부분은 "공연장에서 볼 수 없던 것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배우들의 표정 연기까지 보여서 좋았다"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빠지면 영상의 메리트가 없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출가가 영상 팀에게 "이런 부분에선 이 배우의 연기를 더 잘 보여주면 좋겠다"는 식으로 미리 얘기해 주면 더 좋을 것이다.

김수기 : 촬영한 영상을 공연 연출진에게 보여드리고 요청사항을 수용하는 과정이 있다. 영상의 가장 큰 매력은 못 보던 부분을 큼직하게 보여주는 것인데… 공연 연출자의 입장에선 그게 때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공연 자체를 크게 보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나 보더라. 그런 타이트한 샷을 풀샷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객석에서 관객의 시각으로 볼 때 안 보이는 그림들이 많이 있다. 그런 걸 영상으로 잡아냈을 때 반응이 좋은 건 사실이다. 심지어 극단의 대표님도 영상을 보고서야 "엇, 저기 있는 배우가 이 장면에서 저렇게 열심히…??" 하고 놀라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게 영상의 매력 아닐지.

● 분장도 다르고 조명도 다르고…

김수현 : 연극이나 뮤지컬의 경우, 객석 맨 뒤에서도 배우 표정이 보여야 하니까 분장이 굉장히 대담하지 않나. 이게 영상에 크게 잡히면 매우 어색해 보인다는 고충도 있던데…

지민주 : 실제로 그런 부분들이 문제더라. 분장도 그렇지만 조명 차이가 문제더라. 연극 조명은 방송 조명처럼 '짱짱하지' 않지 않나. 여러가지 색의 조합을 해서 예쁘게 보이려는 일종의 배경이자 효과인데, 그런 조명으로 영상을 찍으니 화면에 너무 어둡게 나오더라. 옛날 영화 느낌이랄까. 이래서야 우리의 제작 의도가 영상으로 잘 전달될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영상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김수기 : 예전에는 무대 스태프들의 자존감이랄까 그런 것 때문에, 영상에 필요한 조명을 요청하면 난감해지는 상황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작품을 해 보면, 오히려 조명 디자이너 쪽에서 어떻게 하면 영상에 잘 나올 수 있는지 협의 조정해 주는 경우가 많다. 카메라가 들어가는 날은 무대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촬영에 적합한 세팅으로 가고, 안 찍는 날은 원래 세팅대로 가기도 한다.

● 얼굴 나올까봐 꺼리는 관객이 있다면?

김수기 : 최근 공연 촬영을 나가 보면, 관객도 촬영에 많이 적응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해외에서 보면, 자기가 공연 보는 날 영상 찍는 걸 기분 좋게 생각하고, 나중에 그 영상이 발매되었을 때 '나 그날 저기 있었어!' 하고 자랑도 한다더라. 비슷한 분위기가 이제 국내에서도 감지된다.

김수현 : 공연실황 중계가 활발한 영국 국립극장 NT Live나 미국 MET오페라의 경우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그쪽은 표를 예매할 때부터 '이날은 촬영'이라고 미리 공지하기 때문에, 다들 그런줄 알고 오니까 불평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영구적으로 영상이 남으니 배우들도 더 열심히 하게 마련이라 촬영하는 날 공연이 더 좋아지는 경향이 있으니 관객들도 촬영하는 날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있다.

신태연 : 예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싹 라이브(SAC live)'로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중계한 적이 있다. 그날은 '카메라 데이' 라고 미리 공고를 하고 티켓도 더 싼 값에 팔았다. 관객들 초상권 동의도 미리 받고. 사실 연출 하시는 분들도 객석의 열기를 영상에 넣고 싶어 하는데 초상권 문제 때문에 어려운 거다. 그렇게 하니 반응이 좋더라.

● 큰 돈 들여 시작한 촬영인데…중간에 배우가 넘어진다면?

지민주 : 실무 하다가 생긴 궁금증 하나. 한번 촬영 할 때 어마어마한 예산과 인력과 장비를 들이는데, 공연하다가 배우나 연주자가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김수기 : 음원은 다른 회차에 녹음한 것을 삽입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경우, 멀티트랙으로 악기별 사람별 소스를 갖고 있으면 가능한데, 영상은 좀 얘기가 다르긴 하다. 배우가 연기하다가 동선상에서 넘어진 적도 있었다. 이런 경우, 대체 가능한 컷을 같은 피사체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다른 각도의 카메라에서 갖다 쓴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보완한다.

신태연 : 끝난 뒤 추가로 다시 찍어서 붙이는 방법도 있다. 보통은, 공연단체의 연출자가 끝나고 뛰어온다. 다시 찍자고 .

지민주 : 충실한 촬영을 위해서는 객석을 비운 상태에서 찍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영국 NT 라이브 등을 보면 관객이 가득찬 상태에서도 클로즈업을 많이 하던데?

신태연 : NT(영국 국립극장) 라이브는 방송용 카메라를 쓴다. 이 장비는 배율이 굉장히 크다. 스포츠 중계 할 때 멀리서도 선수를 당겨 찍지 않나? 그런 걸 생각하면 된다. 그걸 방송 중계차로 뽑아서 녹화하는 방식이다. 반면 예술의전당 싹온 스크린은 온전히 영화 방식을 쓴다. '고퀄'의 영상이 나오지만 무대 뒤에서 무대 위의 배우를 클로즈업 하기는 어렵다.
영화 카메라로 찍어서 색보정을 하고 나면 정말 '뽀샤시' 그 자체다. 방송용 카메라는 색이 입혀져서 나온달까... 관용도가 낮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반면 영화용 카메라로 찍은 것은 후반작업에서 색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다.
조명은 좀 더 어려운 이슈다. <윤동주, 달을 쏘다> 작품을 촬영할 때 정말 힘들었다. 공연 자체가 너무 어두워서 카메라를 대도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다행히 서울예술단에서 나서주셔서 네시간 정도 걸려 영상용으로 조명을 다시 맞추고 촬영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영화용 카메라로 찍은 것이니 나중에 다시 공연 분위기대로 보정해 드렸다. <늙은 부부 이야기>에도 암전 장면이 나온다. 촛불 하나만 달랑 들고 배우가 등장하는데, 이건 아무리해도 카메라에 안 나온다. 공연용 조명의 셋팅으로는 해결이 안 돼서, 결국 별도의 영화조명팀을 불러 조명기에 실크천 치고 밤 분위기를 내서 찍었다.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긴다.

● 그거 찍어서 어디다 쓸 건데요?

김수기 : 이렇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좀 더 쉽게, 비용 덜 들이고 하는 방법도 있다는 건 알아두시면 좋겠다. 모두가 다 영화관에 상영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기획 단계에서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촬영한 콘텐츠를 갖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는 소형카메라로 찍어도 된다.
물론 시청할 때의 품질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확한 포커스라든지 빛의 높낮이라든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의 본질을 제대로 옮겨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영상을 담는 과정에서 준비를 잘 한다면, 장비가 저렴한 것이더라도 작품의 본질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

신태연 : 마지막 결과물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따라서 제작방식이 많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실황중계가 목적이라고 하면, 방송용 카메라로 할 수밖에 없다. 영화용 카메라는 온전히 편집해서 후반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가가 굉장히 비싸진다. 기록을 남기는 아카이빙 목적이라고 하면 핸디캠 정도로 촬영을 해도 되는 것이고. 하나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소리 녹음은 확실하게 하라는 거다. 수음이 제대로 안되면 그건 영상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영상화 작업을 위한 예산이 있다면 일단 음향적인 부분을 해결해 놓고 그다음에 카메라의 종류와 대수를 선택하는 게 낫다.

● "출연진 인터뷰를 틀었더니 관객이 집에 갔어요"

김수현 : 본 공연 이외에 부가영상도 많이 제작하지 않나? 활용 사례의 시사점은?

신태연 : 영화도 100분 보면 지루할 수 있는데, 공연영상 100분은 매우 긴 시간이다. 싹온 스크린도 초기에는 부가영상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배우나 제작진 인터뷰를 해 보면 말씀 잘 하시는 분들 것은 재미있게 만들어지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영국 국립극장 NT 라이브는 중간 휴식시간(인터미션)에 인터뷰도 틀어주고, 다음에 상영할 작품 예고편도 보여주고 하더라. 우리도 그렇게 해 봤는데, 그 사이에 집에 가시는 분들도 많더라 (일동 웃음).

김수기 : 최근에는 미디어 이용이 디지털화, 분절화되어서, 굳이 내가 본편의 작업물과 같이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생겼다. 부가영상의 '선택적 시청'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로 인해 부가영상의 중요성도 더 커졌다. 이야기가 있는 공연과 달리 순수예술의 경우는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나. 어떻게 감상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콘텐츠도 많이 필요하다. 이해하면 더 보고싶어지지 않을까? 나중에 공연장으로 관객이 유입되도록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보면, 리허설 영상이 조회수 몇만 씩 나오기도 한다. 공연영상의 경쟁력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민주 : 무대 뒷 이야기가 알고 보면 무궁무진하다. 이걸 관객과 나누면 더 풍요롭게 공연을 볼 수 있을텐데 하는 마음에, 부족한 예산을 쪼개서 열심히 만든다.

신태연 : 저희도 요즘은 중간에 부가영상을 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작 전에 이 공연은 어떤 겁니다 하고 소개하는 영상 보여주고, 끝나고 나서 틀고 그런다. 부가영상만 클립으로 잘라서 온라인 마케팅용으로 쓰기도 한다.

김수기 : 온라인 플랫폼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게 되면 본공연 30-40분 전에 미리들 들어오시지 않나. 그 시청자들 눈을 잡아둘 콘텐츠를 개발해야 할 필요도 있다.

● 그런데, 양쪽을 잘 아는 사람 찾기가 힘들어요

지민주 : 그런데, 이렇게 공연과 영상 양쪽을 잘 아는 감독님들을 대체 어디 가서 만날 수 있는 것인지? 있는 분들은 요즘 너무 바쁘시고. (일동 웃음)

신태연 : 사실, 공연단체별 또는 공연장 별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제일 좋긴 하다. 사람을 하나 정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키워야 하지 않을까? 어렵지만…
공연 촬영이라는 일이, 외부에서 다른 것 찍다가 그냥 와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분야다. 무대적 언어도 많이 알아야 하고, 공연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대 뒤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조정도 하고 커뮤니케이션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악이 들어가는 공연을 하면 무대 앞에 오케스트라 피트가 있고, 거기에 세팅된 악기와 각종 배선 등을 넘어가야 무대가 있다. 이런 구조를 모른 채로 크레인 같은 장비를 들여오면, 모두가 낭패를 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구조를 알고 미리 협의를 하면 대책을 세울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무대 일을 해 본 사람이 영상을 배워서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본다.

김수기 : 영상화 작업의 제반 단계에서 감독을 제일 괴롭히는 게 촬영 부분이다. 아무리 콘티를 만들어 설계를 하고 각각의 카메라에 역할을 부여하느라 애를 써도, 해당 공연의 촬영을 위해 단기적으로 모인 인력들이다보니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다. 몇년째 이 일을 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저조차도, 공연을 잘 영상화할 수 있는 스태프들을 찾고 있다. 찾고 싶다.

장르를 넘어선 뭔가를 할 때는 나름의 학습 시간이 필요하니 단기간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기회가 있으면 인력이 양성될 확률이 높다. 공공기관이나 교육기관이 공연과 영상 양쪽을 아는 인력을 양성한다면 또하나의 새로운 직업군이 성장할 수도 있겠다.

김수현 : 갑작스럽게 닥친 공연 영상화 바람에 대해 우려도 많지만 또하나의 기회이기도 한 것 같다. 이제는 차근차근 기본을 다져가면서 공연영상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들도 많아지기를 바란다. 다음주에는 공연예술 영상의 지적재산권에 대해 알아보자.

● 이 토론의 전문은 SBS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 <커튼콜> 코너에서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SBS뉴스 홈페이지 또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팟빵, 애플팟캐스트, 팟티, 구글팟캐스트 등 다양한 팟캐스트 플랫폼을 통해 제공됩니다. 유튜브와 SBS뉴스 홈페이지,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 등을 통해 동영상도 제공될 예정입니다.

● 토론회 제작지원 :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     

(기획 : 허윤석 / 총괄 : 이현식 / 녹음 : 하지윤 / 촬영 및 편집 : 이홍명, 황현정 / 타이틀 그래픽 : 김신규 / 주최 및 주관 : 예술경영지원센터 ‘더 아프로(The Apro)’)

▶ 극단이 '영린이' 탈출하려면?…"대사 잘 안 들리면 저 같아도 꺼버려요"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946700 ]
     

김수현 기자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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