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코로나19에서 회복한 58살 금순 씨의 이야기
누구나 힘들다지만 누구나 똑같이 힘든 건 아니다. 피해는 같아도 고통은 같지 않다. 같은 힘으로 때려도 아이가 어른보다 더 크게 다친다.
코로나19도, 고용 대란도, 분양 계약 위반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조금 불편하고 짜증 나는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삶이 산산이 조각난다.
흔히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는 방문판매원 금순 씨는 지난 2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대구에서 코로나 환자 집단감염이 폭증하던 무렵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3월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대법원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한 야쿠르트 아줌마가 돌아갈 일자리는 없었다. 회사는 그저 쉬라고만 했다. 그러나 그녀에겐 일자리가, 소득이 필요했다. 이자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자인지 궁금하다면 우선 이 영상을 보도록 하자.
▶ 미완공 집 떠안은 5,000세대 "빚 갚다 죽게 생겼어요"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831695 ]
그녀에게 이 집은 어떤 의미일까. 왜 이 집을 분양받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 안 때려도 몸이 아픈데….
금순 씨는 남편과 떨어져서 마음 편하게 살아보려고 동성로 다인 로얄팰리스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이름은 오피스텔이지만 전용면적 47제곱미터에 복층으로 제법 살만한 집 모양새를 갖춘 이른바 '아파텔'이라 불리는 주거형 오피스텔이었다.
"따로 좀 살아봤으면 싶어서. 우리 아저씨가 자기 부모밖에 모르고. 형제들밖에 안 챙겨주고. 애들 방이라도 하나씩 해줘야 되겠다 싶어서 그걸 계약을 했거든요."
좋은 아들, 좋은 형이었던 남편은 금순 씨에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나이에 안 때려도 몸이 아픈데... 내가 맞아가면서 왜 살아야 하는 건지.. 아저씨가 막노동하는데 일은 열심히 하는데 365일 중에 360일을 술을 먹어요. 맨날 술이 떡이 되어서 집에 들어와서 자기 기분이 더러우면 화풀이를 저한테 하는 거예요. 아무리 참고 같이 살려고 해도, 내가 벌어서 자기 반찬값 해 대 가면서 밥 해줘 가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데 손찌검을 왜 하냐고! 애들한테도 XX년 하면서 욕하니까. 그래도 애들한테는 "아빠 원망은 하지 마라고, 네가 해로우니까 아빠 미워하지 말라" 그랬어요."
왜 참고만 살았을까.
"(신고를) 왜 안 했겠습니까. 했어요. 한 다섯 번은 했어요. 애들이 신고하기도 하고. 이번에 내가 나올 때 신고를 하니까 경찰서에서 하는 말이 "아줌마 아직도 이러고 살아요? 내가 다섯 번은 본 것 같아요."라면서, 그 경찰관이 제 얼굴을 알더라고요. 솔직히 나와도 제가 뭐 해 먹고살겠어요. 옛날부터 애들 데리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그 일을 몇 번 반복했지요.
금순 씨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이혼은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 그녀는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엔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 신고로 남편이 처벌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남편보다 무서운 돈은 금순 씨가 이혼 소송을 여전히 꺼리는 이유다.
"그러니까 살다 살다 뛰쳐나왔는데. 갈 데가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소송 비용도 없고 어지간하면 합의 이혼하려고. 이번에도 길에서 무릎 꿇고 빌었어요. 제발 이혼해 달라고. 내가 살 길은 그 길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금순 씨에게 다인 로얄팰리스는 손에 닿는 돈으로 손에 닿지 않을 것만 같던 행복을 얻을 기회처럼 보였다.
● "빚만 갚다 죽게 생겼잖아요."
금순 씨는 방문판매원으로 지난 3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서 모은 돈을 동성로 다인 로얄팰리스를 분양받는데 쏟아부었다. 계약대로라면 이미 지난해 입주했어야 하는 바로 그 집이다. 남편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고, 셋방이라도 구할 보증금마저도 없었던 금순 씨는 치매를 앓는 90대 노모의 임대주택에서 같이 살고 있다.
"억지로 잠들었다가 2시간 3시간 이렇게밖에 못 자요. 밤새도록 고민 고민하다가 어찌 잠들어보면 엄마 욕 소리에 6시 되면 잠이 깨고."
처음 다인 건설이 공사를 중단했다는 얘기를 들은 날을 금순 씨는 기억한다.
"작년에 건물이 다 올라가야 하는데 왜 안 올라가지… 그랬는데, 1월에 갑자기 이자를 내라고 하면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이자가 얼마인가 물으니까는 70만 원 내라고 하니까 그것도 이해가 안 가잖아요. 중도금 이자도 자기네들이 다 내기로 하고 계약서를 써 줬는데."
시행사는 공사 진척에 따라 나눠 내게 되어있는 중도금을 수분양자의 명의로 대출하게 한 다음 한꺼번에 받았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다른 공사장의 자금 흐름이 막히기 시작하자 공사 대금을 끌어다 쓰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대신 이 대출에 따르는 이자는 모두 시행사가 부담하기로 계약서를 통해 약정했다. 그러다 자금 사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결국 중도금 이자까지 못 내는 상황이 됐고, 금융기관이 수분양자들에게 이자를 독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세대가 대구뿐만 아니라 부산 양산 등 5천 세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순 씨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이 고통에 빠져나오고자 많은 사람들이 계약 해지를 요구했지만, 시행사 측은 이미 낸 계약금과 이미 빌려 간 중도금을 대부분 돌려주지 않고 있다.
"그 중도금을 포기할 방법이 있으면, 계약금도 진짜 포기하고 싶어요. 언제까지 우리가 이자만 내고 있어야 하는 건지. 진짜 죽을 때까지 이자만 갚아야 되나 생각하니까는 지옥이 따로 없어요. 그렇게 잘못 산 것 같진 않은데. 이래 살아가 뭐하나 싶어가지고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이 상황에서 계속 이자만 내다보면 죽을 때까지 진짜 빚만 갚다 죽게 생겼잖아요."
매달 그녀를 옥죄는 이자, 그냥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
"이자 못 내고 이러면은 나중에는 자식들한테도 그게 넘어갈 수도 안 있나… 이런 생각에…. 애들한테 이게 전가가 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그 이자만 아니었어도 내가 보이스피싱 안 해도 될 거거든요."
보이스피싱.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 직장 잃고 일자리 구하다 빠져버린 범죄의 늪
금순 씨는 생활비와 매달 닥쳐오는 이자 상환을 위해 일용직을 전전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금순 씨에게 생각보다 큰 상처를 남겼다.
"코로나19 낫고 나서 근육통이 너무 심해요. 밭에 가서 일을 하려고 마늘밭에까지 갔었거든요. 그늘 하나도 없고 하루종일 땡볕에 8시간 9시간 일했는데 올 때 되니까 걸음도 못 걷겠더라고요. 하루 일하고 났는데 한 일주일을 앓았어요. 그러고는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병원에서 코로나19 때문에 그냥 나가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못 먹고 계속 토하고. 그래도 그 일이라도 해야 이자라도 내겠는데 싶어서 한 건데, 이제 그것도 못 하겠고. 어떻게든 벌어가지고 이자를 막아야 되는데."
이런 금순 씨에게 아르바이트를 권유하는 문자가 들어왔다. 채무 받아서 은행으로 보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 했다. 보통 은행 일 하다가 퇴직한 사람들이 한다고 해서 믿었다. 돈을 받아서 입금하는 간단한 일. 그리고 금순 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심부름하는 건데 왜 이러냐고. 돈 받아가지고 은행에 입금밖에 안 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누가 대한민국의 경찰권을 솜방망이라고 비웃는가. 금순 씨에게 대구 북부경찰서 경찰관은 염라대왕 같았다.
"경찰에다가 있었던 일을 다 얘기했어요. 저도 몰랐다고, 알았으면 안 했어요. 경찰관이 막 윽박지르고 눈물을 쏙 빼게 하더라고요. 먹고살라고 했는데 한 번만 봐달라고 그러는데도 '알고 시작한 것 아니냐'고 막 또 윽박지르더라고요. 우리말은 다 못 믿는다면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금순 씨의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어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금순 씨는 이번에도 돈이 무서워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를 언제부터 써야 할지, 수임료는 어떻게 부담할지 걱정이다.
"나는 모르고 했는데… 그 돈을 내가 다 중간에서 챙긴 것 같으면은 벌금을 내든, 징역을 살라 하든지 해도 살겠는데 돈 100만 원도 못 벌어오고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자 그것만 아니었으면 그 일도 안 했을 텐데."
● "아들을 낳았어야 했는데…."
금순 씨는 요즘 공공 일자리를 얻어 길거리청소를 하고 있다. 비교적 수월하고 월 100만 원가량 임금도 나온다. 그렇게 금순 씨는 버틸 계획이다. 다인 건설의 공사 중단 문제는 금순 씨의 사례가 보도된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다. 피해자 모임 밴드에서는 아직도 수시로 알람이 울리는데, 복잡하고 이야기가 달라 어렵기만 하다.
▶ [취재파일] 산산조각 난 '내 집 마련' 꿈…다인건설 오피스텔 공사중단, 그 후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932832 ]
"저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진짜 이런 세상에서 사는가 싶은 게, 저 큰 건물을 지으면서 어떻게 소비자들한테 이렇게 피해가 갈 수 있는지 그것도 의문이고요. 법이 이게 법이 맞나, 우리나라 법이 맞는 건지.. 상황이 이러니까 내가 잘못 살았나 싶기도 하고. 그 집에 들어가서 아들을 낳았어야 했는데, 아들을 못 낳아서 그런지."
금순 씨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금순 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됐지만 극복했고, 남편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 이혼하고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치매를 앓는 90대 노모의 집에 얹혀살며 매일 욕을 들어야 하고, 나가서 살 곳을 걱정해야 하며,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몸이 아프다. 일자리는 없는데 매달 이자를 갚아야 한다. 건설사의 무책임 속에서 그녀가 모아 둔 돈은 모두 중단된 공사장 밑에 깔려 있고, 정치와 행정은 그녀를 도와줄 계획이 없다.
이 고통은 끝이 날 것처럼 보이지 않고, 금순 씨는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 금순 씨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이 글은 1번의 대면 인터뷰와 3차례의 전화 인터뷰를 종합해 구성되었습니다. 인터뷰 정리 과정에서 정재은 스크립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화강윤 기자hwak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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