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벽화마을 성공과 몰락, 그려야 돼 말아야 돼?
오래 알고 지낸 어느 지방의 공무원에게 벽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인근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원도심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곳의 상인들이 도심 활성화를 위해 벽화를 그리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하지만 벽화를 그린 후에 관리가 되지 않으면 더 지저분해질 수 있다는 염려가 많아 벽화사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벽화 무용론이 등장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때 유행처럼 전국 곳곳에 '벽화 마을'이 등장했지만 그림의 수준이 떨어지고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안 그린 것만 못하다는 지적이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벽화의 경우 다른 사업에 비해 사업비가 적게 들고 단기간에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쉽게 버리지 못하는 카드이다 보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벽화의 유용성은 대상지 성격 그리고 그림 내용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에선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소음과 사생활 침해 문제가 생기자 참다못한 주민들이 벽화를 지워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이렇게 주거지에 벽화를 그리기란 참으로 조심스러운 일이다. 벽화의 설치 목적과 내용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주거지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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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로 유명해진 대구 방천시장의 둑길은 처음에는 방천시장 활성화 사업의 일부로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노쇠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다가 시장과 나란히 위치한 어둡고 후미진 둑길에 김광석을 소재로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가수 김광석이 방천시장 근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고유한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전통시장을 찾지 않던 젊은이들의 관심을 끄는 역할을 했다.
방천시장 둑길이 가수 김광석을 기념하는 벽화와 조형물로 채워지자 통기타를 든 뮤지션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다양한 공연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비어있는 가게들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김광석의 이야기가 노래와 뮤지컬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결국 방천시장의 둑길이, 김광석을 기리는 중심지로 인식된 셈이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그린 벽화가, 시장뿐만 아니라 지역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문화공간으로 발전한 좋은 사례이다.
벽화는 결국 대상지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생명력을 잃기도, 얻기도 한다. 무리한 성과를 목표로 하다 보면 기대와 달리 실망스런 결과를 얻기 십상이다. 생명력 충만한 벽화가 되기 위해선, 목적이 아닌 '수단과 과정으로서의 벽화'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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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집 짓기, '내 사람 공부'가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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