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환자 손에 죽은 의사, 나도 당할뻔했다
출판사 사람과 만난 자리, 의도치 않게 상대를 당황하게 했다.
무례하다고 느꼈을까? 그들은 '의사가 쓴 의사 이야기'를 책으로 엮기 위해 내게 투자까지 한 터였다. 그래서 작가인 내게 최대의 예의를 갖춰 대했다. 혹여나 내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인가 조심스레 살피며, "그럴 리가요. 사람들은 의사를 존경하지요."라고 대답하며 말이다. 나는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한 것을 물은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정말로 궁금했다. 환자를 제외하고 의사 아닌 사람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그 자리는 오랜만에 비의료인을 만난 자리였고, 나는 평소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 것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옳았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몸에 대한 적확하고 바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의사들에게 많은 환자들이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가끔 적의감을 표하는 환자들이 있고, (우리)의사들은 마음의 상처로 남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의사를 싫어하는 걸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칼럼에선 이렇게 썼다.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타인에게 맡기는 기분을 상상해 보라. 매우 더러운 기분"이고, 이것이 "환자가 의사에 대해 가지는 심리상태" 라고 했다. 이해된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결국 관계의 상황이 악조건을 만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다. 환자에게 충분히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자기 결정 정도를 최대한으로 하면 된다. 또 상황이 잘 정리되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좋아진다. 어찌 됐건 병이 나으면 환자는 받아들인다. 하지만 낫기 어려운 병이라면 어떨까. 또 환자가 스스로의 병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들은 의사를 죽도록 미워하게 될 것이다. 병에 대한 인지가 모든 치료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환자에게 모든 걸 맡기고 알아서 하게 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런 특정 환자 군(郡)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적 질병을 앓는 분들 중 모든 결과를 의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들 모두가 의사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아니, 의사를 좋아하고 의지하는 환자들이 더 많다. 미워하는 비율이 타 질병을 앓는 환자보다 많을 뿐이다. 어쨌든 이 환자들, 설명하자면 치료 자체를 의사와의 관계에서 풀어가는 분들이다.
정신과 병동에서 보면 때로는 "저렇게까지 의사를 미워하다니?"하기도 한다. 이런 내 생각을 정신과 의사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실제로 의사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적대감이 쏠린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해할만한 설명이었다. 이해는 되더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았다. 미움이 실제로 물리적인 폭력으로 변해 피어오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과 폐쇄병동을 지키는 인턴이었다. 아침에 복도에 서 있었고, 교수님과 레지던트가 그날 오전 회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회진정리는 보통 당일 나가는 처방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당연히 환자에 대한 잡설이 들어갈 여지라고는 없다. 이들이 회진 정리에 여념이 없는 동안, 나는 병동 이리저리에 시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앞 환자 한 명이 지나가며, 흘낏흘낏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키는 작았지만 어깨가 넓고 무섭게 생긴 남성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피해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약간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이윽고 고성이 병동의 고요를 깼을 때 나는 내 예감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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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서는 위험한 상황을 막을 수 있어 매우 다행이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섬뜩했다. 그곳은 폐쇄병동이었고, 환자는 맨주먹이었다.
그가 만일 흉기라도 주워 들고 왔다면?
진심으로 자기 앞 모든 것을 제거하고 싶었다면?
환자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의사가 그럴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싶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게 잘되지 않는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적 없고, 죽일 만큼 타인을 미워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숨진 의사가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시스템을 만드는 분들이 이 비극들을 보고 이제는 대책을 세웠으리라 믿고 싶다. 이번만큼은 말이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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