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의 관록' 이 시대 최고의 엔터테이너, 엄정화

서정민 2020. 8. 10. 17: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3년 데뷔 이후 가수·배우로 종횡무진
5년 만의 영화 '오케이 마담' 12일 개봉
엄정화.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당신의 천직은 배우인가요, 가수인가요?”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질문 오랜만이네요. 데뷔 때부터 받았거든요. 둘 다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기 때문에 지금도 어느 하나를 고를 순 없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엄정화가 답했다.

엄정화를 배우냐 가수냐로 경계 짓는 건 무의미하다. 시작부터 그랬다. 그의 데뷔작은 1993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이다. 출연은 물론 영화 오에스티(OST) ‘눈동자’도 직접 불렀고, 같은 해 ‘눈동자’를 타이틀곡으로 1집을 발표하면서 가수로도 데뷔했다. 엄정화는 고혹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내세워 ‘배반의 장미’ ‘포이즌’ ‘초대’ ‘몰라’ ‘페스티벌’ 등 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90년대를 대표하는 ‘댄싱퀸’이 됐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80년대에 김완선이 있었다면 90년대엔 엄정화가 있었다. 무대에서의 표현력도 대단했지만 주영훈·김창환 등 훌륭한 조력자를 선택한 것도 탁월한 능력이었다”고 말했다.

엄정화.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2000년대 들어선 배우로서 활약도 두드러진다. 당당하면서도 파격적인 여성상을 연기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필두로 멜로·코미디·스릴러·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들며 존재감을 떨쳤다. <해운대>로 천만 영화에도 이름을 올렸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엄정화는 남자들 텃세에 굴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개척하는 당찬 모습으로 동시대 여성을 대변함으로써 여성 관객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배우”라며 “특유의 발랄한 매력으로 코미디에 특히 강점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남편의 그늘에 가렸던 주부가 자신의 꿈을 펼친다는 코미디 <댄싱퀸>이 400만 관객을 넘기며 단독 주연 최고 흥행작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영화 <오케이 마담>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을 이뤘지만, 이는 되레 짐이 되기도 했다. 그는 “연기 쪽에선 ‘가수 출신’이라는, 음악 쪽에선 ‘배우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어디에서도 인정 못 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한을 풀어준 건 상이었다. 엄정화는 비주류 음악인과의 협업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9집 <프레스티지>로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상을 받았을 때, 또 스릴러 영화 <몽타주>로 2013년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진심으로 감격했다. 그는 “상 자체보다는 음악과 연기, 각 분야에서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점이 특히 기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10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뒤 예전처럼 노래할 수 없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원하는 작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아졌다. 기다림의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는 “나도 이제 이런 나이가 된 건가 조바심도 났지만, 그럴수록 나를 위한 시간을 살자고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 서핑과 요가를 하며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이제는 그런 고민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엄정화는 1~10집까지 활동하며 1990년대~2000년대 가요계 최고 디바로 자리매김했다. 네이버 바이브 엄정화 페이지 갈무리

그는 다시 일어섰다. 2017년 무려 11년 만의 정규앨범인 10집 <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을 발표했다. 엄정화는 “목을 회복해 꼭 다시 노래하고 싶다는 의지로 만든 앨범”이라고 말했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음악을 오래 쉬면서도 앞선 감각을 유지해 세련된 일렉트로 비트와 선명한 멜로디로 근사한 음반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엄정화를 ‘퀸’이라 칭송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극찬했다. 김성환 평론가는 “2000년대 이후의 엄정화는 90년대처럼 히트곡을 많이 내지는 못했지만 음악적 고민과 완성도는 더 깊어지면서 평단의 지지가 탄탄해졌다”고 평가했다.

12일 개봉하는 코믹 액션 영화 <오케이 마담>은 <미쓰 와이프> 이후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엄정화는 테러범에게 공중납치된 비행기에서 활약하는 전직 특수요원을 연기했다. 그는 “전부터 액션물을 꼭 해보고 싶어서 쉽지 않은 도전을 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철하 감독은 “엄정화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성실한 태도다. 여성 액션이 결코 쉽지 않은데, 엄정화는 성실함으로 극복해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엄정화 스스로도 이번 영화가 자기 인생에서 어떤 터닝포인트가 될지 잘 알고 있더라”며 “그와 작업하면서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본 사람이 연기할 때 진짜 짠한 코미디가 나온다는 걸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엄정화는 1~10집까지 활동하며 1990년대~2000년대 가요계 최고 디바로 자리매김했다. 네이버 바이브 엄정화 페이지 갈무리

1969년생으로 올해 만 51살이 된 엄정화는 여전히 배우이자 가수로서 독보적 위상을 지키고 있다. 많은 후배가 그를 롤모델로 삼는다. 이효리는 “서른살이 되면 댄스 가수는 못 할 줄 알았는데, 엄정화 언니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엄정화는 이효리·제시·화사와 ‘센 언니들’의 프로젝트 그룹 ‘환불원정대’를 결성하고 활동을 앞두고 있다.

엄정화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 직접 가사를 쓴 10집 수록곡 ‘시’(She)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시간만큼 내 맘은 빠르질 못해/ 아직 난 이만치 뒤에 있는데/ 안녕하지 못한 내 안의 작은 슬픔이/ 보여선 안 될 비밀이 되는 게 힘들어” 이제 그는 슬픔과 고민을 딛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새 역사다.

“제가 겪은 어려움과 한계를 후배들은 안 겪었으면, 나이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힘을 내보려 해요. 나이 들면 드는 대로 그런 모습을 녹여가며 연기와 음악 모두 오래 하고 싶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