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 침 뱉은' 마크롱의 개각 카드
프랑스 집권 여당 ‘전진하는 공화국(LREM)’의 지방선거 참패가 개각을 불렀다. 마크롱 대통령은 내각 수장 절반 이상을 교체했다. 8명은 새 얼굴로 임명하고 9명은 부서를 바꿨다. 유임은 13명이었다. 하지만 개각에 대한 여론은 뜨뜻미지근하다. 7월7일 일간지 〈르피가로〉가 보도한 조사(7월6일부터 이틀간 성인 1002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 81%가 ‘마크롱 대통령이 개각 이후에도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유럽생태녹색당(EELV) 서기장 상드라 르골은 새 내각 발표 다음 날인 7월7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새 내각) 임명을 통해 확실시한 현 정부의 전체적 노선은 여전히 아주 우파 성향이고 현상 유지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에두아르 필리프의 후임으로 7월3일 임명된 장 카스텍스 신임 총리는 ‘깜짝 인사’에 가깝다. 현지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유럽생태녹색당이 약진한 점을 감안해 ‘좌파 총리가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카스텍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서 수석보좌관을 지냈던 공화당(LR) 출신 의원으로, 최근에는 ‘이동제한령 해제 담당자(Monsieur déconfinement)’라는 별칭을 얻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령과 상점 폐쇄, 국경통제 조치를 해제할 방안을 제시한 자문위원으로 일해서다.
카스텍스 신임 총리는 7월3일 프랑스 TV채널 TF1과의 인터뷰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과를 얻기 위해 (총리 자리에) 왔다. 유일한 관심사는 프랑스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제 활성화를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취임 뒤 첫 외부 일정이 에손주 공장 방문이었다. 최근 현지에서 뜨거운 화두인 환경 문제도 빼놓지 않았다. 카스텍스 총리는 “환경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대통령이 맡긴 우선 과제의 중심이 환경이다”라고 말했다.
총리 인사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정치권에 없지는 않다. 7월3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 정부 자문위원이었던 레몽 수비는 “(카스텍스가) 정치 경력도 없고 여론에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총리직을 수행하기에 필요한 자격은 다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카스텍스 총리에 대해 “솔직함, 능력과 기량을 높이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판은 더 거세다. ‘인지도가 낮다’는 의구심과 ‘신선하지 않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알렉시스 코르비에르 의원은 “프랑스 국민 95%는 장 카스텍스를 모른다.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가 오로지 대통령의 호의에 따라 총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염려스럽다”라고 말했다. 라디오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연합(RN) 대변인 로랑 자코벨리는 “신임 총리는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의 완벽한 복제인간이다”라고 말했다. 7월4일 같은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유럽생태녹색당 의원이자 리옹 시장으로 당선된 브뤼노 베르나르는 “원래도 우파 총리였는데 새로운 우파 총리를 얻었다. (…) 여당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신임 총리보다 더 뜨거운 것은 새 장관들의 도덕성 논란이다. 핵심 부처인 법무부·내무부 장관의 성차별 발언과 성폭행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신임 법무장관 에리크 뒤퐁모레티와 내무장관 제랄드 다르마냉이 주인공이다.
에리크 뒤퐁모레티는 유명 형사 변호사 출신이다. 재판 승소율이 높아 ‘무죄선고자(acquittator)’ ‘북부의 괴물(ogre du nord)’ 같은 별명을 지닌 인물이다. 축구선수 마티외 발뷔에나의 성관계 동영상 협박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은 카림 벤제마, 위키리크스 최고책임자 줄리안 어산지 등을 변호한 바 있다.
“합의하의 성관계였다” 주장
그런데 2년 전 뒤퐁모레티는 방송에서 성평등장관 마를렌 시아파가 제안한 ‘캣콜링 금지법(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휘파람을 부는 등의 성희롱을 처벌하는 법)’을 비판한 바 있다. 2018년 11월 BFM TV 방송에서 그는 이 법안에 대해 “정부가 완전히 바보 같은 짓을 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나이 든 여성 한 분이 제게 ‘이제 더 이상 (내게) 휘파람을 불지 않는 게 아쉽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뒤퐁모레티 장관은 2019년 1월 잡지 〈GQ〉와 인터뷰하면서 “미투(me too) 운동이 말할 자유를 주는 건 좋다. 하지만 (고발 과정에서) 어리석은 말을 하는 ‘머리가 돈 여자들’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르마냉 신임 내무장관은 성폭행 피소 이력이 문제가 됐다. 2009년 우파 정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법률 담당으로 재직하던 그는, 도움을 청한 여성에게 법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보장하며 성폭행한 혐의로 고발됐다. 2017년 검찰이 조사에 나섰지만 해당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2018년 불기소 처분됐다. 다르마냉 장관은 “합의하의 성관계였다”라고 주장하며 해당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했다. 지난 6월 파리 항소법원이 검찰의 재수사 요청을 받아들여 수사가 재개된 상태다.
애초 내각의 멤버였던 다르마냉 장관의 사건이 새삼 입길에 오른 까닭은 내무부의 성격 때문이다. 프랑스 내무부는 산하에 경찰청 등 수사기관을 두고 있다. 7월7일 라디오 프랑스앵포는 “다르마냉은 자신의 사건을 전문적으로 수사할 기관의 우두머리가 된 셈이다”라고 평했다. 유럽생태녹색당의 전 대표 상드린 루소는 7월7일 같은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다르마냉은 경찰의 우두머리기 때문에 이해충돌이 있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유럽생태녹색당 소속 의원이자 유럽의회 의원인 다비드 코르망은 7월7일 일간지 〈CNEWS〉와의 인터뷰에서 “한때는 고발당하면 정부를 지키기 위해 직을 떠났다. 지금은 도리어 승진한다. (이는) 피해를 고발한 이들 전체에게 절망적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파리 8구 마들렌 광장에서는 페미니스트 단체가 항의 시위를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 시위 참가자는 “이번 개각은 피해자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며 성폭력 피해자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정부 입장은 달랐다. 신임 정부 대변인 가브리엘 아탈은 7월11일 첫 국무회의 후 브리핑에서 “(다르마냉 장관이)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라며 내무장관 임명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7월14일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옹호했다. 그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믿음”을 언급하며 다르마냉 장관 유임 의사를 밝혔다.
7월18일 〈일요신문(JDD)〉이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 내각에 만족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55%이다. 이는 같은 조사에서 에두아르 필리프 내각 출범 때와 동일한 비율이다. 한편 필리프 내각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의견은 24%였던 데 비해 카스텍스 내각에 대한 부정 의견은 40%에 달했다.
파리∙이유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