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대표회의, 경비원 사용자로 인정돼야"

이하늬 기자 2020. 8. 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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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 최희석씨가 일한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에 그가 작성한 근무일지가 놓여 있다. / 권도현 기자


2014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이모씨가 주민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분신했다. 2016년 광주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담뱃불로 경비노동자 얼굴을 지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5월에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던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폭언·폭행을 고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경비노동자에 대한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5년간 공공임대주택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원에게 입주민이 가한 폭언·폭행은 무려 2996건에 달했다.

경비노동자들은 입주민 중에서도 ‘입주자대표회의(입대회)’의 갑질이 가장 심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비노동자들은 관리주체(관리사무소)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데, 이 관리주체를 결정하는 게 입대위다. 즉 입대회에 밉보이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까지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경비노동자들은 입대회 구성원인 동대표들의 지시가 부당하더라도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서울지역 아파트 곳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A씨(60)는 “어떤 아파트는 입대회 회의가 있을 때마다 경비들에게 간식을 사오라고 시켰다. 또 다른 아파트는 택배보관함이 있음에도 동대표 택배는 자기네 현관 앞으로 갖다 놓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씨도 책에 “자치회장은 아파트라는 왕국의 제왕이다. 그의 별명은 ‘주상 전하 납시오’였다”라고 썼다. 실제 조씨는 호스가 아닌 양동이로 화단에 물을 줬다는 이유로 경위서를 써야 했다. 회장이 관리사무소에 “화단에 물을 주라고 했는데 그 지시에 반항해 물을 퍼부었다”고 말한 탓이다.

동대표들의 부당한 지시 거부 힘들어
짧은 계약 기간은 이런 현실을 더욱 악화시킨다. 지난해 11월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노사관계 지원사업 공동사업단(공동사업단)’이 경비노동자 33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4.1%가 ‘1년 이하’ 계약을 맺었다고 답했다. 3개월짜리 계약을 한다는 응답도 21.7%에 달한다. A씨도 3개월, 6개월, 11개월 단위 계약을 주로 한다. 11개월짜리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하는 계약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고하려면 경위서, 징계위원회 등 절차가 복잡하지만 초단기 계약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때도 계약당사자는 관리사무소와 용역업체이기에 입대회는 책임에서 비켜나 있다.

따라서 입대회에 사용자성을 부과해야 한다고 지적이 나온다. 입대회가 사용자성을 갖게 되면 근로기준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감정노동자 보호 조항을 적용받는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경비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고 있는 입대회는 9.4%에 불과하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내용이 담긴 공동주택관리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또 공동사업단은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요건에 ‘근로계약기간을 1년 미만으로 하는 경우’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단기 계약은 일자리안정자금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공동사업단은 “이런 정책변화는 추가적인 예산소요 없이도 아파트의 단기계약을 근절하는 데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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