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 틀어쥔 입주자 대표회의 횡령·비방·추행 천태만상
[경향신문]
횡령, 폭행, 모욕, 감금, 명예훼손, 문서위조, 강제추행….
2013년 1월 1일에서 올 7월 29일 사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얽힌 법적 분쟁에서 적용된 주요 혐의다. 같은 기간 입주자대표회의를 둘러싼 사건 중 확정판결 사례만 4849건이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주요 도시에서 입주자대표회의 안팎의 다툼은 흔한 풍경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돈(관리비)과 각종 용역사업 발주권 등을 쥐고 있어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범위를 좁혀 2018년 7월 30일에서 올 7월 29일 사이 2년간 확정판결이 난 입주자대표회의 분쟁 사례 617건을 들여다봤다. 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에서 ‘입주자대표회의’로 검색해 나온 판결문을 분석했다. 일부 사건은 입주자대표회의와 직접적 관련이 없어서 분석에서 제외했다.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252건)에서 가장 많은 판결이 나왔다. 부산(88건), 인천(48건), 수원(41건), 대구(32건)가 뒤를 이었다.
상당수 사건이 모욕, 비방(명예훼손)처럼 쟁점이 복잡하지 않다. 애초에 감정싸움에서 비화돼 법원까지 오지 않았어도 될 사안이었다. 법원 선고는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으로 이뤄졌다. 벌금 100만원 안팎으로 선고된 사건이 많았다. 전체 617건 중 대법원까지 간 사건은 단 1건이었다.
공고문 뜯어내고 육두문자 난무하고
지난 2년간 확정판결이 난 사건 617건 중 명예훼손이 101건으로 가장 많았다. 모욕(45건)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34건)도 적지 않았다. 갈등이 무고(18건)로 번지기도 했다.
판결문을 보면 입주자대표회의 도중 서로 주고받은 욕설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비방을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온라인에 올리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는 사례가 많았다. 공고문 형태로 아파트단지 내에 허위 사실을 게시해 처벌받은 입주자대표회의 간부들도 적지 않았다.
“아파트 공사업자와 결탁한 뒤 부실공사를 해 아파트에 6억원 이상의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허위 주장을 하거나 “8공주들과 동대표들과 (중략) 같이 사이좋게 나눠먹으면서 주말이면 수행비서 끌고 바람 쐬러 가고”(2018년 7월·서울 도봉구), “아파트 동대표 선거 시 허위학력을 기재하고 학력을 위조해 공정한 선거를 방해했다”(2018년 4월·서울 중랑구)며 허위 비방을 한 사례가 처벌을 받았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거나 중요한 회의가 열릴 때면 물리적 충돌과 감금이 발생하기도 했다. 폭행(32건), 상해(24건), 특수감금(2건), 감금(1건) 혐의가 적용된 사건이 많았다. 회의 진행이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출 선거 등을 막는 사례에서 적용된 업무방해(57건)도 대부분 입주자대표회의 세력 간 충돌에서 빚어졌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난 장소는 대부분 입주자대표회의 회의 장소였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의장에서) 들고 있는 서류를보여줄 것을 요구하다가 안 보여주자 폭행”(2016년 9월·서울 영등포구), “비상대책위원장이 동대표 해임건의 안 하자 12분간 회의실에서 나가지 못하게 함”(경기 수원·2019년 9월) 등이 대표 사례다.
입주자대표회의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문서 훼손이나 위조 사건도 빈번히 발생했다. 재물손괴(53건)·문서손괴(15건)나 회의록 등 사문서 위조(8건)·사문서 변조(9건), 공문서 위·변조(2건), 위조(3건)는 세력 간 다툼에서 일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공고문 훼손과 서명 위조다.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단지에서는 2018년 2월 입주자대표회의 간부들 사이에 ‘부회장이 명예훼손으로 회장 고소건 법의 판결에 따르기로 함’이라는 내용이 담긴 공고문 훼손이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 법원은 공고문을 뗀 간부들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쓴 공고문에 ‘허위사실 유포금지-비대위’라고 써 문서손괴로 처벌(2019년 7월 부산 북구)받기도 했다. 경남 진주에서는 2018년 1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입주민 서명서’에 서명 102개를 위조한 사례가 처벌(벌금 100만원)로 이어졌다.
서명 등을 받으면서 아파트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하거나 동의 없이 공개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16건)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주민 안전과 직결되는 ‘부패’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사무소 선정이나 보수·유지 용역업체를 고를 때 입김을 넣을 수 있다. 형식은 공개입찰이더라도 암암리에 청탁과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로 쓰는 관리비에 손댈 여지도 있다.
혐의별로 보면 업무상 횡령(58건)이 많았다. 업무상 배임(12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5건), 배임수재(5건), 배임중재(2건), 사기(13건)도 모두 금전을 둘러싼 사건이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 연루되진 않았지만 아파트 공사를 둘러싼 입찰 방해(3건), 공정거래법 위반(3건) 사건도 나왔다.
입주자대표회의 간부들이 관리비나 관리비에서 일정 금액 쓸 수 있는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2014년부터 3년간 관리비 1억6300만원을 빼돌려 썼다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2012년 4월부터 2년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956만원가량을 접대비용으로 사용”(울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동대표들 사기 진작 차원에서 노래방 비용과 동대표 선물 비용을 회의 운영 경비에서 사용”(2016년·인천)한 사건도 있었다. 법원은 업무상 횡령이나 업무상 배임을 인정했다.
입주자대표회의 간부들의 휴대전화 비용조차 관리비에서 전용하기도 했다. 서울의 32개동, 3002가구가 있는 대단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간부들은 2013년 100만원이 넘는 휴대전화 비용을 관리비로 납부했다. 관리소장에게 요금 청구서를 지급해 비용을 보전받는 방식이었다.
입주자대표회의 간부들은 이권 청탁이나 공사 시공사에서 뒷돈을 받기도 했다. 경기 구리에서는 2016년 9월 7일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인 동대표가 한 통닭집에서 아파트 노후 수도배관 교체 공사 수주를 위해 300만원이 필요하다고 언질을 준 뒤 돈을 챙겼다. 공사업자에게 인건비·경비원 식대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챙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경기 수원·2018년), 재도장·균열보수 공사의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600만원을 받은 입주자대표회의 감사(경기 안산·2017년)도 처벌받았다.
입주자대표회의 간부의 비리가 주민들 안전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발견됐다.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사례(4건) 중 하나였다. 한 유지·보수업체에서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자대표회의 간부들에게 1000만원을 건넨 사건이었다. 부실공사를 무마해달라는 부탁이 따라붙었다. 부실공사 무마는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판결문을 보면 청탁은 “균열보수 및 재도장 공사에 대하여 입주민들이 공사의 하자 문제로 시비를 걸지 말고 공사가 무사히 마무리되도록 도와달라는 취지”로 이뤄졌다.
입주자대표회의의 ‘권력’
입주자대표회의의 권한이 많다 보니 ‘권력형 범죄’도 발생한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위계를 이용한 범죄에는 강제추행(4건)이나 특수협박(2건), 협박(1건)이 있었다.
서울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A씨는 2018년 여성인 관리사무소 소장과 경리 직원을 강제 추행했다. A씨는 운전하는 관리사무소장의 손을 잡거나 회식 도중 허리를 감싸기도 했다. 직원에게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한 뒤 어깨와 팔을 강제로 껴안았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사무소 업체 선정과 직원 채용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여성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를 강제 추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경비원에게 ‘갑질’을 해 처벌을 받기도 했다.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B씨는 2018년 1월 31일 경비원에게 “내가 당신, 자른다. 죄 없어도 내가 죄짓게 해서 자를 거야”라고 말했다. 해당 아파트단지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었다. 판결문을 보면, 재건축을 반대했던 B씨는 경비원이 재건축조합에 정보를 제공한다고 의심했다. 법원은 B씨의 협박 혐의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근로기준법(12건)과 최저임금법(1건) 위반 혐의로 법원에 온 사건도 발견된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단지의 약 9%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직접 경비원과 고용관계를 맺는다.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2013년 10월부터 4년간 경비원 C씨에게 지급하지 않은 최저임금 미달분 합계가 2616만원을 넘었다. C씨는 2014년 8월에는 최저임금 144만8380원에 한참 못 미치는 90만원만 받았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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