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완전 이전" 운 띄운 與.. "외면 못할 숙제" 野 충청권 호응
헌재 결정으로부터 16년이 지난 2020년, 176석 거대 여당으로 거듭난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내들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행정수도를 세종으로 명시하는 개헌에서부터 행정수도법 발의, 국민투표 등 다양한 방안이 나온다. 여기에 미래통합당 지도부는 행정수도 이전을 ‘정략용’이라고 치부하면서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의원들은 “우리도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16년 만에 다시 불붙은 정치권의 행정수도론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 與 내부에서도 “2004년 트라우마 있는데…”
행정수도 논의의 포문을 연 건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다. 그는 지난달 20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을 줄이려면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아울러 더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서울 등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원내대표는 당내에 ‘행정수도 완성 추진 태스크포스(TF)’ 구성까지 밀어붙였다.
원내 제2당인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김 원내대표의 연설 직후 곧바로 “이미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고 응수했다. 불가능한 논의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통합당의 내부 상황은 복잡하다. 통합당 몫의 국회 부의장으로 거론됐던 5선의 정진석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은) 여당의 국면 전환용 꼼수가 분명하지만 어차피 마주하게 될 수도 이전 논의를 애써 외면하는 것도 상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 의원의 지역구는 충남 공주-부여-청양이다. 통합당 대전시당도 “진정성을 바탕으로 행정수도 이전 논의를 공론화하는 것은 대한민국 백년대계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했다.
입법부의 수장인 박병석 국회의장도 적극적이다. 박 의장은 31일 취임 후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세종의사당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큰 방향이 됐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대전에서만 내리 6선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라며 “통합당이 대선을 안 치를 것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현재 통합당 지도부는 반발하지만 2022년 5월 대선이 다가올수록 지방 여론 등을 신경 써야 하는 통합당도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 靑은 침묵, 與는 개헌·국민투표 고려
국회와 더불어 행정수도 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청와대는 일단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굳이 청와대가 나서기보다는 국회가 의견 수렴에 나서는 것이 맞다”는 판단에서다.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개헌, 국민투표 모두 국회의 결정 권한이다. 청와대를 대신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은 개헌과 국민투표, 행정수도법 제정을 검토해 연말까지는 한 가지를 구체적인 방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개헌과 국민투표가 거론된 것은 당시 헌재가 결정문에 판시한 내용 때문이다. 2004년 10월 헌재는 결정문에서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우리의 제정헌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해 온 헌법적 관습”이라면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이를 폐지하려면 “헌법 개정의 방법에 의하여만 개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민주당은 행정수도법을 통과시키더라도 헌법소원이 제기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24일 세종시청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당시 헌재 재판관이 다 바뀌었다. 지금은 새로운 분들이 하기 때문에 이분들이 당시 결정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헌법재판관 구성은 9명 가운데 6명이 문 대통령과 민주당,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명 및 추천으로 임명돼 2004년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 결정이 내려졌을 때에 비해 진보적 색채가 강해졌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또 2004년 위헌 결정이 당시 만들어진 신행정수도특별법에만 미치고 현재의 행정중심복합도시법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위헌 결정 당시와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도 이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04년에는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만들면 서울의 인구가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수도권이 공동화되고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한 여당 의원은 “하지만 세종 이전 경험을 통해 일부 부처가 빠져나가도 서울이 전혀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걸 국민도 알게 됐다”며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처럼 행정수도 이전 반대 목소리를 높일 야권의 수도권 대선 주자도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헌법 개정 의석수(200석)에 육박하는 범여권이 일부 야권의 충청권 의원들을 끌어들일 경우 개헌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행정수도 이전이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또 부동산 관련 법안 처리 과정에서 거대 여당의 위력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민주당 내에서는 “이러다 22대 국회 개원식은 세종에서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각종 예산, 후유증이 불거지면 여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나는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어떻게 부동산값 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서울을 떠나 세종시로, 전국 각지로 떠난 중앙정부기구와 공공기관이 이미 수도 없이 많지만 서울의 부동산값은 최근 3년 사이에 폭등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TF 관계자는 “지금이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주목도가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논의 속도를 높이려 하는 것도 관심이 커졌을 때 뭔가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혜령 herstory@donga.com·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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