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렇게는 대학 등록금을 돌려주지 마세요"
● 석차 확인 직전 느닷없이 "성적 장학금 없다" 공지
공대생들의 등록금은 500만 원에 육박합니다. 부모님의 지원 없이 그리고 대출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1년에 두 번씩 500만 원 되는 등록금을 내려면 매달 80만 원씩 꼬박꼬박 모아야 가능합니다. 한 달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매달 100만 원 이상 되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학기 등록금을 한 달 안에 해결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요?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에 재학 중인 A씨에게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올해 3학년으로 등록금 부담을 덜고자 코로나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고, 장학금 수혜 대상이 될 수 있을 만큼 상당히 높은 학점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번 학기는 '학점 인플레 현상'이 두드러져 중요한 건 석차였습니다. 그리고 그 석차는 지난 14일 발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석차 발표 직전 학교 측은 등록금 반환의 명목으로 '코로나19 특별장학금'을 지급한다는 공지를 발표했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었지만 공지 내용을 자세히 보니, 특별장학금에는 40억 원 정도 예산이 들어가는데 다름 아닌 성적장학금에 쓸 돈도 사용된단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좀 어이가 없었고 당장 다음 학기 등록까지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저희 같은 경우는 한 학기 등록금이 거의 500만 원이거든요. '당장 그 돈 마련을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고, 다시 공지를 읽어보니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더라고요, 학교의 논리가. 이해할 수 없어서 화가 많이 났죠." - A씨 인터뷰 중-
그렇습니다. 이제 한 달 안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합니다. 당장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휴학을 해야 하거나 아니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둘 모두 원치 않는 선택지입니다. 누군가는 "모두가 어떻게 원하는 대로만 사냐?"라며 한 말씀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학교 측에서 학기 중이라도 미리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라도 공지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다른 가능성을 준비할 수 있었다면 최악의 가능성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미리 사전에 알았다면 제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겠죠? 어떤 선택의 경우의 수가 조금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다음 학기 등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A씨 인터뷰 중-
● "장학금은 더 많아졌다"…할 말 많은 대학
대학 측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직접 명지대 측에 의견을 들었습니다. 먼저 성적장학금 폐지 결정을 내렸던 것에 대해선 "절대 평가에 가깝게 학점 평가가 이뤄진 가운데 상위권 학생들의 순위를 매겨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명지대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평가 방식을 예년과 달리 A 학점을 줄 수 있는 비율을 담당 교수의 재량에 맡겼고 그 결과 지나친 학점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상황에서 성적장학금을 지급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명지대 측은 학생들의 반발이 있자 성적 우수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결정을 번복한 겁니다. 지급 금액에는 차이가 있는데, 등록금 100%만큼 장학금을 주던 걸 30%만큼 주기로 하는 등 장학금 규모는 기존의 1/3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물론 재학생들은 이 정도 수준으로는 대학 측이 처음에 내린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기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명지대 관계자는 "오히려 학생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학교 측이 더 많은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지원하게 됐다"라며 다르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즉, 기존에 없던 코로나19 특별장학금(40억 원 규모)은 물론, 규모는 줄었지만 성적장학금(7~8억 원 규모)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장학금을 편성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돌려주게 된 것이며, 이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결정이란 겁니다.
● 장학금 크기보다 더 우선됐어야 할 것은?
사립대 가운데 가장 먼저 등록금 반환 움직임을 보인 건국대도 성적장학금에 들어갈 돈을 등록금 반환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했습니다. 다만, 절차상 큰 차이는 있었습니다.
먼저, 건국대 측은 학생들이 절대 평가 등 평가 방식 변화를 요구할 당시부터 학생 측에 한계점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이후 학교와 학생 간 등록금 반환 논의 과정에서 대학 측은 성작 장학금을 등록금 반환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고, 학생 측도 내부 논의 결과 그 방안이 최선은 아닐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선 최선이란 점에 동의해 결과에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얼마를 돌려주기로 한 '결과'가 아니라 그런 결정을 내린 '과정'에 있습니다. 평가 방식을 바꿀 때부터 성작 장학금 지급이 어려울 수 있단 점을 알리고, 이후 논의 과정에서 성적장학금을 코로나19 특별장학금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능성에 대해 학생 측과 꾸준히 소통했냐는 겁니다. 건국대 관계자는 "(평가 방식을 바꾼 대학에 한해) 갑작스럽게 수십억을 마련하기 위해 성적장학금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이런 방향성에 대해 학생 측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다면 갈등 역시 불가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해법 : 과정도, 결과도 공정하게
명지대는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지원하게 됐습니다. 학교가 당초 예상한 것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맸을 것이고, 더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했을 것입니다. 학생들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단 점에서 분명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총학생회 등 학생들은 애초에 거부 의사를 밝혀왔고, 그럼에도 학교가 강행한 끝에 제가 만난 학생들은 대출 아니면 학기 포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를 두고 괴로워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만약, 절차상의 공정함이 지켜졌다면 어땠을까. 학교 측에서 석차 발표 하루 전 총학생회 대표들에게 성적장학금을 코로나19 특별장학금의 재원으로 쓰는 방안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전부터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학생들이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면 말이죠. 지금보다 더 적은 장학금을 받게 되더라도 부당함이 아닌 공정함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근 우리는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그 가치가 외면될 때 얼마나 분노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 함께 공감했습니다. <인국공 사태>에서도 결과적으로 정규직이 더 많아졌음에도 온당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더 값어치가 있는 건 '다른 학교보다 몇 % 더 돌려받았다'는 결과가 아닐 겁니다. 대신, 직접 참여해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를 고민해 결정하고 그 결정이 왜곡 없이 반영돼 나타나는 현실일 겁니다.
안상우 기자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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