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거부 '반공 포로'..북파공작 등 특수부대로 입대
[앵커]
67년 전인 1953년 오늘(27일), 판문점에선 6.25 전쟁을 끝맺는 정전협정이 열렸습니다. 2년 정도를 끌어온 이 협정의 핵심 쟁점은 전쟁 포로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은 포로 가운데 상당수가 우리 군 특수부대로 들어간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봉지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953년 7월 27일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인 판문점 양측 대표가 정전협정서에 사인합니다.
이후 시작된 포로 교환.
중공군과 인민군 포로는 18만여 명.
국군과 미군의 10배가 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인민군 7792명은 북으로 돌아가지 않았는데, 반공 포로라 불렸습니다.
그들의 행적을 담은 영상이 미 국립문서관리청에서 발견됐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를 들고 당당히 행진하는 포로들.
이들의 새로운 이름은 '반공애국청년'이었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열렬히 만세를 외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 신체검사를 꼼꼼히 받고, 군사훈련소에 입소합니다.
국군 장성의 훈시 후 군악대의 연주도 열립니다.
담배를 피우는 편안한 얼굴에서 아직 긴장이 역력한 얼굴 등 가지각색입니다.
당시 군의 포로 정책 문건입니다.
8250부대에 반공포로 만여 명이 장교와 사병으로 입대했다고 적혔습니다.
생포 공비의 역이용, 정보수집 목적이었습니다.
8250부대는 지금 특전사의 원조격 부대로 북파공작, 후방교란, 대북 정보수집 특수부대입니다.
하지만 괴뢰군의 교육을 받은 자들이므로 은밀한 사상 감정 조사가 필요하다고 끝맺습니다.
환영의 꽃다발 뒤에 숨은 목적이 있었던 겁니다.
[전갑생 선임연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 자유 대한민국에 왔다고 하지만,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했지만, 이런 포로들을 북파공작원이라든지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려고 했다는 게 확인이 된 것이죠.]
냉전의 비극이 낳은 전쟁포로.
그들은 남과 북 어디에서도 온전히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자료영상 : 미 국립문서관리청 (NARA))
(영상디자인 : 박지혜·신하림 / 영상그래픽 : 한영주·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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