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의 지식카페>'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인간..'합리적 심판' 가능한가



■ 김태환의 이야기철학 - ④ 개미에게 물린 남자와 헤르메스
신화속 ‘神의 징벌’은 고대 집단적 처벌의 관행… 제도·법질서 합리적으로 발전해도 비합리적 공격성 극복 안돼
21세기에도 여전한 차별주의적 이데올로기는 특정 집단 개개인을 부당한 심판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한 남자가 배가 침몰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신의 심판은 불공평하다. 단 한 사람의 죄인이 타고 있었을 뿐인데,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하다니.” 그때 그의 발을 개미 한 마리가 물었다. 그는 몹시 화가 나서 닥치는 대로 개미들을 밟아 죽였다. 이때 헤르메스 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봐, 네가 그러고도 신들의 심판을 용납할 수 없다는 거냐?”
세계의 신화에는 신의 징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인간의 타락에 분노한 신이 큰비를 내려 거의 모든 인간과 짐승을 몰살시키는 대홍수 이야기는 구약뿐만 아니라 수메르 신화에서도, 그리스 신화에서도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대표적 소재가 된 친부 살해와 근친상간에 관한 델피의 신탁이나 탄탈로스 가문의 저주 역시 신적 징벌의 이야기다.
신화 속의 신적 징벌은 대부분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인상을 준다. 아담과 이브는 신의 명을 어겼으니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함이 마땅하다고 하더라도, 신의 징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후손들에게까지 계속 영향을 미친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남자는 땀을 흘리고 흙을 파야 곡식을 얻을 수 있으며, 인간은 죽음의 운명을 진 존재가 된다. 기독교 신학은 이에 근거해 원죄의 이론을 수립한다. 인간의 조상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은 이미 죄를 지은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상속되기에, 독일어로는 원죄를 Erbsunde, 상속죄라고 한다. 그런데 죄의 상속이 정당한 논리라고 할 수 있을까? 왜 아담과 이브의 잘못으로 이후의 모든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된 자로 살아야 하는가?
죄의 상속은 창세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라이오스는 펠롭스의 어린 아들 크리시포스를 납치하고 겁탈함으로써 자신을 어려서부터 거둬 길러준 펠롭스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분노한 펠롭스는 라이오스에게 자식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했고, 이는 라이오스가 자식을 낳는다면 자식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내가 그 자식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델피의 신탁으로 발전한다. 라이오스는 테베의 왕이 되고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뒤 아이가 생기지 않게 조심하기는 했으나 뜻하지 않게 오이디푸스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라이오스는 결국 오이디푸스에게 살해됨으로써 죗값을 치른다. 그러나 신탁이 부과한 저주스러운 운명은 라이오스 왕 한 명의 불행에 그치지 않는다. 이오카스테는 무슨 잘못으로 남편을 잃은 뒤에 아들과 결혼하고 결국 자결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는가? 오이디푸스는 또 무슨 잘못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끔찍한 죄를 떠안고 스스로 눈을 찌르고 고국에서 추방당해야 했는가?
탄탈로스 가문의 저주 역시 조상의 잘못이 후손의 삶에 파국을 가져오는 좋은 예다. 탄탈로스는 신들의 전지전능함을 시험해보기 위해 아들 펠롭스를 요리해 신들에게 대접한다. 탄탈로스는 그 교만함 때문에 신들의 분노를 사고 갈증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지만, 신의 징벌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가문 전체에 대한 저주로 이어진다. 수대에 걸쳐 끔찍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숙부가 조카를 죽이고 조카가 숙부를 죽인다. 아버지가 딸을 제물로 바치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며, 아들이 어머니를 죽인다.
노아의 방주는 어떤가? 신은 인간이 얼마나 못됐는지를 알고 대홍수로 지상의 생명을 없애버릴 것을 결심한다. 노아만이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신의 선택을 받아 방주를 짓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노아의 가족 외에 모든 인간이 죽어 마땅한 악덕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갓 태어난 아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아기들까지 모두 홍수로 휩쓸어버려야 했을까? 신은 짐승들도 덩달아 몰살시키기로 한다. 왜 인간의 악덕 때문에 짐승들까지 징벌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대홍수를 가져온 것은 인간의 타락이다. 그런데 신화의 어떤 버전에 따르면 아르카디아의 왕 리카온이 탄탈로스처럼 신의 전능함을 시험하려 했기 때문에 신들의 분노를 사서 대홍수가 촉발됐다고 한다. 한 사람의 불경죄로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를 제외하고) 전 인류가 몰살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지나친 형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자비한 신적 징벌의 신화가 생겨나는 배경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신화는 홍수나 지진, 화산 폭발 같은 자연의 거대한 재앙과 그것이 초래하는 무차별한 파괴, 그 외에도 삶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우연하고 불운한 희생을 인간의 과오에 따른 신적 징벌이라는 유의미한 사태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무자비한 신적 징벌의 신화가 죄와 벌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고대에 (그리고 중세까지도) 집단적 처벌의 관행, 연좌제의 관행이 만연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법적 정의와 복수는 잘 구별되지 않았다. 원한 감정에 따른 응징은 가해자가 속한 씨족, 부족 전체를 대상으로 확장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몇 대에 걸쳐 계속 작용하는 가문에 대한 저주라는 관념은 강렬한 원한 감정과 복수심에 그 기원을 둔다. 탄탈로스 신화에도, 오이디푸스 신화에도, 신적인 징벌의 계기와 인간적 원한과 복수의 계기가 공존한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는 펠롭스가 아들의 가해자 라이오스를 저주하고, 부친 살해와 근친상간에 관한 델피의 신탁은 이러한 인간적 원한과 저주에 대한 신적 승인의 양상을 띤다.
탄탈로스 신화에서 아트레우스 가문에 닥친 저주는 신들을 깔본 탄탈로스의 교만함뿐만 아니라 탄탈로스의 아들 펠롭스가 저지른 죄도 함께 원인으로 작용한다. 신들이 되살려낸 펠롭스는 훗날 신부를 얻는 데 뮈르틸로스의 도움을 받고도 도리어 그를 배신하고 살해하는데, 죽어가는 뮈르틸로스가 펠롭스의 배신에 치를 떨며 펠롭스와 그의 자손들을 저주하는 것이다.
이처럼 죄의 상속과 집단의 죄를 당연시하는 신화적 세계관에는 고대적인 복수의 정의관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죄인 때문에 배에 탄 모든 사람을 익사시킨 신의 처사에 대한 남자의 비판은 신화적 세계관과의 결별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개개인의 죄가 가문 전체, 심지어 전 인류에 대한 형벌로 응징되는 신화적 세계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비판이다. 탈주술적이고 탈신화적인 근대 합리주의가 오직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개인만을 처벌하는 것을 기본적인 법질서의 원리로 삼는다면, 우리는 우화 주인공의 신화 비판에서 근대적 법 정신의 선구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홍수의 신화를 암시하는 듯한 우화의 비판적 목소리는 고대 그리스 정신이 뮈토스에서 로고스로(빌헬름 네슬레), 신화적 정신에서 합리성으로 이행해 갔음을 증언해준다.
그렇다면 우화의 마지막에 등장한 헤르메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이 감히 신의 심판을 두고 평을 하고 있는데 그저 신들의 사자인 헤르메스가 가벼운 타박의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약화될 대로 약화된 신들의 입지를 보여준다. 신의 잘못을 운운하는 건방진 인간도 무자비하게 단죄되지는 않는다. 헤르메스는 자기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인간과 논쟁을 벌일 뿐이다.
헤르메스는 남자가 자기모순에 빠졌음을 지적한다. 남자는 한 사람의 잘못 때문에 배에 탄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신의 부당함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한 마리 개미에 물린 것에 대한 보복으로 수많은 개미를 밟아 죽인 것이다.
헤르메스의 비판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해석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첫째, 개미에 대한 남자의 보복을 근거로 신의 심판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화적 세계관으로의 회귀다. 다만, 고작 개미에게 물린 고통에 분을 못 참고 개미들을 마구 짓밟는 인간을 신에 비유하는 것이 과연 신에 대한 진지한 옹호가 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둘째, 남자에게 더 철저한 합리성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합리적 심판이라는 원칙을 심판받는 자의 입장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심판하는 입장에 있을 때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남자에게 충고한 것이다. 셋째, 헤르메스는 이보다 덜 낙관적이었을 수도 있다. 이 해석에 따르면 헤르메스는 남자가 빠진 자가당착을 헤어나올 수 없는 인간적 딜레마로 보고, 비합리주의를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믿은 남자에게 그 점을 일깨운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역사를 생각할 때 가장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이 마지막 해석, 가장 비관적인 해석이다.
합리주의적 법질서는 특히 심판받는 자의 입장에서 억울함이 없게,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반면에 심판하는 자, 처벌을 원하는 자, 원한을 가진 자의 비합리성은 억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제도와 법질서가 합리적으로 발전하더라도 비합리적 복수심과 공격성은 완전히 극복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이라고 여겨진 집단에 대한 최악의 ‘심판’ 행위(학살 행위)가 근대 문명이 정점에 이른 20세기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집단 학살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21세기 온라인 문화 속에서 여전히 번성하는 인종주의와 국수주의 같은 수많은 차별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상징적인 공격을 통해 특정한 집단에 속한 개개인을 부당한 심판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여기서 우리가 거듭 확인하는 것은 개개인에 대한 부정적 판단에서 곧장 그들이 속한 집단 전체에 대한 심판으로 나아가려는 유혹의 힘이 여전히 얼마나 강력한가이다. 제도적으로 우리는 연좌제와 결별했지만 제도 밖에서 우리는 여전히 연좌제의 그물 속에 살고 있다.
신의 합리적인 심판을 요구한 사람이 즉각 무자비한 복수의 화신으로 돌변하는 위의 우화는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이행이 그렇게 단순한 과정이 아님을, 그리하여 근대가 추구한 철저한 합리화의 과정이 억제된 비합리성의 분출을 폭탄처럼 속에 품은 채 진행되는 과정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 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뮈토스에서 로고스로
뮈토스(Mythos)는 아득한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전해 주는 신화의 언어이며 로고스(Logos)는 이성과 진리의 언어이다. 서구 문명을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뮈토스에서 로고스로(Vom Mythos zum Logos)’는 독일 언어·철학자인 빌헬름 네슬레가 한 말로 1940년대 출간한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네슬레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호메로스에서 말의 힘을 강조한 소피스트, 대화의 기술로 진리를 찾아간 소크라테스에 이르는 그리스 사상의 흐름을 살핀 뒤 옛 그리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무르익어 가는 흐름을 ‘뮈토스에서 로고스로’라고 불렀다. 무의식과 상상력의 힘으로 세계와 인간을 그려낸 신화적 표상에서 벗어나 이성과 진리의 언어로 인간과 세계를 논리적으로 사고할 줄 알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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