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같은 호텔 다른 객실..가족과 떨어져 2주간 격리

7월 1일 자로 베이징 특파원 발령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베이징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선양에서 2주간의 강제격리를 거쳐야 하기에 일정을 앞당겨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면 음성으로 기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news.sbs.co.kr/d/?id=N1005888906 ]


선양공항에 도착하자 승객들을 맞이한 건 방호복을 입은 세관 직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승객들이 내리기 전에 비행기에 올라와 지시에 따를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격리는 시작됐습니다.

공항에서 나가는 데 3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먼저 휴대전화 앱을 이용해 자신의 건강 상태, 최근 14일간의 행적 등을 자세히 기입하게 했습니다. 중국에 오는 외국인이 드물어서인지 입국 심사도 까다로웠습니다. 혹시라도 격리 기간 도중 연락이 두절될까, 중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지인의 연락처를 요구했고, 차례차례 코로나19 핵산 검사를 받았습니다.
입국장을 나오자 일행을 기다린 건 전용 버스였습니다. 세관 요원들의 엄격한 통제 속에 여러 대의 버스에 나눠 탔습니다. 버스는 뿔뿔이 흩어졌고, 제가 탄 버스는 1시간여 만에 어느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코로나19 격리 전용 호텔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방호장비로 중무장한 선양시 검역 직원들이 일행을 맞았습니다.
또 다른 어플을 휴대전화에 설치한 뒤에야 방 배정을 받았습니다. 가족이라도 한 방을 배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성인의 경우 한 방에서 격리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게 방역 원칙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미성년자는 부모 중 한 명과 같은 방을 쓰게 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 13살 난 딸은 원치 않은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아내와 딸이 한 방을 쓰기로 했고, 저는 다른 방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호텔 격리는 말 그대로 '격리'였습니다. 2주일 동안 방문 밖을 나설 수도, 호텔 직원이 방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와의 접촉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방호복을 입은 호텔 직원들이 문밖에 도시락을 놓고 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시락이 왔다는 걸 알리면 방문을 열고 도시락을 가져다 먹는 식이었습니다.


2주일간 객실 청소는 엄두도 못 냅니다. 다만 수건이나 욕실용품 등은 카운터에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도 문밖에 놓고 가면서 초인종을 눌러 알리면, 문을 열고 들여왔습니다.
14일 동안 객실 밖을 나설 수 있는 건 딱 두 차례입니다.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채혈과 핵산 검사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이때가 가족과 조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입니다. 이때도 검역관들의 지시에 따라 차례차례 방을 나와 채혈을 하고 핵산 검사를 받는데, 운이 좋아 같은 시간에 나오면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나마도 시간 차이가 나면 만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14일간 한 번 가족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지시에 따라 검사를 받고, 검사가 끝나면 역시 차례차례 객실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엘리베이터에 두 명이 동시에 타는 것도 허용이 안 됩니다.
검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본인의 객실키로 방문을 열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호텔 직원의 특수키로만 방을 열 수 있었습니다. 임의로 방문 밖을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허락 없이 방문을 나섰다가는 방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2주일 동안 매일 두 차례씩 체온을 재서 미리 휴대전화에 설치한 앱에 올려야 했습니다.


긴장의 시간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열이 오르면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길이 한없이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온계 사진을 찍어서 올려야 하는 만큼, 허위로 올리는 것도 용납이 안 됐습니다. 에어컨을 켤 때도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맨손체조와 팔굽혀펴기 등으로 부족한 운동량을 채워야 했습니다.

호텔에 격리된 지 꼭 2주째가 되던 날, 호텔 앞에는 격리에서 풀린 승객들을 공항 등으로 태워 나르기 위한 택시들이 미리 와서 줄을 섰습니다. '드디어 격리에서 벗어나는구나' 실감이 났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에 가고 싶어도 비자를 받지 못하거나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가족을 타국에 두고도 만날 수 없는 '생이별'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렇게라도 중국에 간 것이, 베이징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제 친구 소희는요.." 한소희 오랜 친구의 '뭉클 증언'
- 술 취한 유아인, 할머니 품에서 어리광 "그런 날이 있지"
- [현장] 아파트 주차장 난간 뚫고 '쿵'..대낮의 추락 사고
- "장난으로 만들었는데"..美 휩쓴 '초현실주의' 마스크
- 안정사 새 주지에 전과 7범?..'천년고찰'에 무슨 일이
- 7차 감염→구속 부른 "무직" 거짓말..인천 학원강사의 변
- "이태원 좀 살려주라"..자영업자 홍석천의 절박한 호소
- "또래 여중생에 구타 · 가혹행위..무릎 꿇고 빌게 해"
- "국회-청와대를 세종시로" 여당 원내대표 제안한 이유
- "장사꾼도 신뢰 중요한데.." 이재명, 서울시장 공천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