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원 들여 바꾸는 미래학교, 교육격차 해소될까?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젓가락 두 짝이 똑같아요~'
제가 과거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복도에 엎드려뻗쳐 있거나 벌점을 받고 선생님께 혼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각을 한 것도, 복장이 불량했던 것도, 비행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별 잘못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누가 선생님들 다니시는 중앙현관으로 다니고 있어!" 라거나, "어디 1층을 뛰어다니고 있어!" 등등의 이유였지요. 한번은 성적대로 수준별 분반 수업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귀를 잡고 쫓아내는 친구를 본 적도 있습니다. 자기가 가야 할 반이 아닌데, 그 교실이 그 교실인 것처럼 다 똑같은 모습이다 보니 교실을 잘못 찾은 거죠. 이따금 축제 때 다른 학교에 놀러 가도 교명이 새겨진 간판만 달랐지 학교란 곳은, 지금 보면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은 젓가락 두 짝 같았습니다.
운동장 중앙 최상단에 구령대가 있고, 중앙 현관을 들어가면 교무실과 행정실, 양호실 그리고 교장실이 있으며, 학년 서열(?)대로 1학년이 2층, 2학년이 3층, 3학년이 4층에 배치됐었죠. 혹은 반대로 선배님들이 무릎이 시원찮으니 저층을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선배님들 층에 가면 무서운 형들(?)에게 불려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획일화된 학교 모습,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 노래 가사처럼 정부가 '싹 다 갈아엎겠다'고 합니다.
'18조 5천억'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오늘(17일) 오후 서울 강서구에 있는 공항고등학교를 찾았습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사업 중 하나인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계획'을 발표하기 위해서인데요.
공항고등학교는 중앙현관이나 중앙제어실을 친환경적으로 꾸렸고, 태양광 패널 등을 설치한 '친환경 그린' 학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럼,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는 무엇일까요.
유은혜 부총리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이란, 한국판 뉴딜의 대표 과제로 미래교육으로의 전환을 견인할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오늘 말했습니다.
지금의 학교 모습을 ▲저탄소 제로에너지를 지향하는 그린학교 ▲미래형 교수학습이 가능한 첨단 ICT 기반 스마트교실 ▲학생 중심의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한 공간혁신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생활 SOC 학교시설 복합화로 만든다는 건데요.
용어도 다소 생소하고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지 언뜻 와 닿지는 않을 수 있는데요. 쉽게 설명해 드리면, 일단 전국에 지은 지 40년이 넘은 학교 건물 7,980동 중에서 2,835동의 내외부를 싹 뜯어고치겠다는 겁니다. 우선 내년부터 5년간 18조 5천억 원의 사업비를 들일 계획인데요.
세부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먼저, 획일화된 지금의 학교 내부 구조를 학교마다 특색있게 바꿔주겠다는 건데요. 실제로 학교를 사용하는 학생과 교직원이 필요한 공간을 요구할 수 있도록 설계에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합니다. 공간이 바뀌어야 바뀌는 미래교육 과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고요.
두 번째로 기존 연료 소비가 거의 들지 않고, 여기에 친환경적인 학교로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태양광 패널을 건물 옥상뿐 아니라 외벽에까지 전면 도입해서 전기를 사용하고 지열 시스템을 활용해 난방에 대비하는 등의 방식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온라인 개학 이후 등교수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학교 가지 않는 날도 많은 학생을 위해 여전히 원격수업이 등교수업과 병행되고 있죠? 그만큼 세 번째로 추진하는 방향은 첨단 정보통신 장비가 갖춰진 스마트 교실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가령, 전자칠판을 설치하거나 이동형 모니터를 설치하고 모든 교실에 고성능 무선인터넷(와이파이) 장비를 설치해서 과목 간 융합수업이나 학교 간 공동 온라인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바꾼다는 거고요.
교육부 관계자는 "미래학교를 모든 아이들의 안전과 학습권을 보호하면서 유연한 교수학습이 가능하고, 또 휴식과 놀이가 균형을 이루는 삶 중심의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요.
"취지는 이해하지만, 중요한 알맹이가 빠져"
일부 교원 단체에서도 학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노후화된 교실과 건물을 개선하고, 미래 교실이 지향해야 하는 학습환경 조성을 위해 스마트 환경을 조성하는 건 바람직하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입장만 있는 건 아닌데요.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KBS에 "해당 사업 계획은 기존에도 하기로 했고, 또 현재 진행해 나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보긴 어렵고, 새로운 내용이 아닌걸 '그린 스마트 뉴딜' 이런 용어를 붙여서 마치 새로운 것처럼 포장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또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잘 감안해서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해서 추진할 것이냐가 관건인데, 그런 부분에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예산으로 인해 다른 더 중요한 '학생 교육활동'이나 '교사학습 지원'같은 예산이 잠식당하는 부분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산 확충 방안이 구체적이지 못한데요. 만약 이 사업이 지금도 재정상황이 열악한 시도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조건이라든지, 국회 차원에서 특별회계를 설치해서 국비를 더 확충해야 한다는 식의 예산 확충 방안이라면 유동적이고 안정적인 재원 확충으로서의 방안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게 안 됐을 경우에 풍선만 띄우고 일부 학교 개선으로 흐지부지되는 과거의 사례를 되풀이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산 확충방안이 충분히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린 스마트 교실 사업 내용이 너무 한정되다 보니 비정규직, 그러니까 기간제 교사가 점점 느는 걸 지양하고 정규교사를 더 확충하는 쪽의 방안도 이번 사업 계획에 나왔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런 점 없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일부 교육 관련 단체에서는 디지털 인프라 조성보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나 교육환경 개선과 교육격차 해소가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했는데요. 시설, 장비 멋지게 바뀌면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예산도 수십 조가 조달되는 만큼 허투루 해선 안 되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계속 끌고 나가겠다고 교육당국이 제시한, 그리고 코로나19나 향후 또다시 다가올 어떤 감염병에 대비해서라도 '온라인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 마련이 절실해 보입니다.
원격수업으로 분명 집중력이 떨어지고 학습 능률이 예전 같지 않은 학생도 많습니다. 부족한 만큼을 또 사교육에 의존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고요. 실습이 중요한 실습형 학교의 경우는 또 어떤가요?
과감한 투자만큼 학급당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전문적인 교원 수급도 늘려야 할 겁니다. 또 앞으로 어떤 감염병 등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과연 원활하고 효과적인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지, 시설의 변화가 디지털 격차로 인한 교육격차까지 과연 해소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 시설 진짜 좋아!'
앞으로 시설자랑만 하는 학생이 아니라, 그래서 그 안에서 무엇을 익히고 배웠고 성취했는지를 자랑하는 학생들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김용준 기자 (ok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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