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민주당 여성의원 입장문에서도 '피해자'로 하려다 못했다
[경향신문]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들이 발표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입장문에서 ‘피해자’라는 단어를 써야한다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이해찬 당대표의 ‘피해호소인’ 발언 논란에 앞서 당내 여성의원을 중심으로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법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논리가 관철된 것이다.
민주당 여성의원 30명은 지난 14일 입장문을 내고 “피해 호소 여성이 느꼈을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피해 호소인이 ‘서울시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인 당했다’고 하는 만큼 (진상조사는) 꼭 필요한 조치”라며 ‘피해 호소 여성’과 ‘피해 호소인’을 병용했다.
당시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쓴 입장문 초안에 대해 일부 여성의원들은 ‘피해자 또는 피해여성이라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남인순 의원과 몇몇 의원들은 피해 호소 여성을 써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사건 이후 생긴 젠더폭력특별대책위원회에서 ‘법적으로 피의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피해호소인으로 한다’는 내규를 마련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 초선의원은 “피해자라고 호칭하면 그쪽 주장을 다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의원 입장문에 등장한 피해 호소인이 단순히 법적으로 중립적인 용어를 쓴 게 아니라, 피해자 호칭을 사용해선 안된다는 의도가 반영된 용어라는 점을 의미한다.
피해 여성을 지칭하는 호칭 논란은 여성의원들이 입장문이 나온 다음날 이해찬 대표의 사과 발언 이후 본격화 했다. 이 대표가 “피해 호소인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서 다시 한 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처음으로 직접 고개를 숙였다. 남인순 최고위원도 “피해 호소인이 느끼고 있을 두려움과 당혹감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민주당이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을 고집하면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과거에는 피해자라고 지칭했던 민주당이 이번 사안에서만 피해호소인을 강조한다는 지적이다. 상중이라며 피해자를 외면해오다 상을 마치니 피해자와 호소인을 구분하기 시작한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여성의원들이 “법적 판단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호소인’을 고집한 것을 두고 “박 시장 피해호소인은 언제 피해자가 될 수 있냐”는 비판도 나왔다. 박 시장 사망으로 성추행 의혹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가능한 지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민주당은 17일 열린 최고위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호칭을 ‘피해자’로 통일해 부르기로 결정했다. 여성가족부가 전날 ‘고소인을 법상 피해자로 본다’는 입장을 내면서 당의 입장도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김해영 최고위원도 이날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사실만 알려진 상황과는 달리 피해자 측에서 피해여성 지원 단체와 법률대리인을 통해 고소사실의 일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며 “지금부턴 ‘피해호소인’이 아닌 ‘피해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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