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해제 두고 기재부-국토부 이견..공급대책 진통 예고
박선호 국토1차관은 "검토 한 바 없어" 부인
부처 이해관계 따른 힘 겨루기 '서막' 우려도
추가대책 실효성 없으면, 그린벨트 또 위협
[서울=뉴시스] 이인준 기자 = 정부 부처 간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비치면서 이르면 이달 말 주택공급 확대방안 발표 직전까지 진통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15일 박선호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한 바 없다. 집을 짓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그린벨트를 활용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언은 전날 저녁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필요하다면 그린벨트 문제를 점검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고 말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현재 "발굴을 해서라도 공급물량을 추가로 늘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홍 부총리 주재 '주택공급확대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중이다.
사실상 도심 내 주택 공급 방안 마련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홍 부총리가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을 언급하자, 날이 밝자 마자 주무부처인 국토부에서 부인한 셈이다. 정부는 이날 오후께 서울시청에서 국토부 1차관이 주재하는 첫 실무기획단회의를 개최한다.
문제는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도 실효성 있는 공급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여부다.
정부 TF는 현재 ▲도심 고밀 개발을 위한 도시계획 규제 개선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도시 주변 유휴부지·도시 내 국가시설 부지 등 신규택지 추가 발굴 ▲공공 재개발·재건축 방식으로 사업시행 시, 도시규제를 완화해 청년·신혼부부용 공공임대 및 분양아파트 공급 ▲도심 내 공실 상가·오피스 등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현재 검토 중인 대안 만으로 도심 공급 물량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다면, 양 부처간의 의견 차이는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홍 부총리도 전날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이라고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에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도심 내 주택 공급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양 부처 고위 관계자들의 상충된 발언은 부처 이해관계에 따른 힘 겨루기로 시장에서 해석되고 있다.
공급 물량 발굴도 순탄치 않겠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 차관은 특히 정부 TF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도심 고밀 개발'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이다.
그는 "용적률을 높이면 지을 수 있는 집의 양이 많아지지만 교통이 복잡해지고 환경이 오염되고 주거환경이 떨어진다"면서 개발 밀도를 무작정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인구 대비 수도권 인구 비중은 50.002%를 기록해, 오히려 수도권 과밀화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국토부는 또 '공급물량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물량 발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박 차관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투기 목적의 수요를 완충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지금도 실수요자에 필요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한 물량은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4기 신도시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공급 물량이 극적으로 늘어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결국 추가 공급대책을 나올 때까지 양 부처의 협의가 엇박자를 낼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달 말 추가 공급대책 발표에도 집값 안정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최후의 보루'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양 부처 간의 충돌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그린벨트를 둘러싼 갈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 부처를 넘어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으로 외연을 넓혀가고 있어 또 다른 혼란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서울 시내 그린벨트 일부 해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국회에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박원순 서울시장 유고 사태로 그린벨트를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은 구심점을 잃은 상태다. 일부에서 이에 따라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이 언급되는 데 대해 박 차관은 "정치적인 고려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이명박 정부가 2012년 강남권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한 보금자리주택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면서 그린벨트 해제를 공급 대책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다.
'개발과 보전'을 둘러싼 그린벨트를 둘러싼 케케묵은 논쟁이 또다시 가열될 조짐이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개발제한구역 면적은 3837㎢로, 지난 40여 년간 28.9%가 감소했다. 정부가 1971년 수도권을 시작으로 1977년 여수권에 이르기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전국 14개 도시권에 지정한 전국토의 5.4%에 달하는 5397.1㎢의 면적을 지정했고, 이 중 1560.1㎢가 해제된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 위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서울은 약 150㎢다. 올해 1월 기준 시내 19개 자치구에 149.13㎢ 면적의 그린벨트가 분포돼 있다. 서초구가 23.88㎢로 가장 넓고 이어 강서구(18.92㎢) 노원구(15.91㎢) 은평구(15.21㎢) 강북구(11.67㎢) 도봉구(10.2㎢) 순으로 규모가 크다.
한편 국토부는 "그린벨트 해제 관련 정부의 입장은 동일하다"면서 "현재 그린벨트 해제 등에 관해서는 논의된 바 없으나 정부는 향후 '주택공급확대 TF'를 통해 주택 공급을 위한 모든 가능한 대안을 테이블에 놓고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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