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시화기행>心淵 위에.. 수련을 띄우다





(39) 佛 지베르니
모네, 빛의 굴절·파장 집중
일렁이는 물빛 화폭에 담아
미술품 수집가 부부와 동거
수집가 파산후 부인만 남아
아내 사망이후 재혼하게 돼
세상과 절연하듯 파리 근교로
지베르니서 연못·정원 만들고
道人처럼 수련 그리고 또 그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장자(莊子)‘호접몽’에 나오는 이야기다). 만년의 클로드 모네도 그렇게 중얼거렸음 직하다. 내가 수련인가, 수련이 나인가. 그만큼 그와 수련은 주체와 객체로 나눌 수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물아일체(物我一體)다. 그의 수련은 파리에도 뉴욕에도 런던에도 베를린에도 그리고 멕시코시티에도 도쿄(東京)에도 사시사철 동시다발적으로 그 꽃을 피운다.
두 종류의 예술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최고다’라고 입으로 말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최곤데…’라고 마음으로 말하는 사람. 그런데 철학적 화가 폴 세잔은 모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신(神)의 눈을 한 화가다. 나에게는 없는.” 빛에 색채를 녹여 대상과 배경을 ‘일별’로 경계 없이 잡아내는 법, 사물을 순간적으로 낚아채듯 빛의 미묘한 밸런스와 움직임을 포착해내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한 말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 기발한 법, 법, 법을 그는 어린시절 야외에 이젤을 들고 나가 몸으로 익혔다고 전해진다. 예컨대 자연으로부터 배웠던 것. 그 위에 미술사에서는 무명이지만 한 재능 있는 초야의 화가에게 전수받다시피 그런 기법들을 배웠다는 것이다.
‘꽃보다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만 모네는 ‘자연의 학교’에서 ‘사람보다 풍경’에 눈과 마음이 꽂혀 있었다. 많은 화가가 실내에서 인공조명에 따라 고착된 명암의 그림 그리기에 길드는 동안 그는 자연 속에서 빛의 굴절과 파장에 따라 색채의 변화가 얼마나 다양하게 일어나는가, 그리고 그 다양한 변화가 얼마나 풍성하게 사물의 모습을 변모시키는가에 빠져 있었다. 소년시절의 어느 날 들판에서 만난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Johan Bartold Jongkind)라는 네덜란드 풍경화가를 통해 어떻게 색채로 빛을 포착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던 것이다. 그는 훗날 용킨트야말로 위대하고 위대한 화가였다고 술회한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 내가 만난 ‘함양사람’ ‘용운 이자형’이 그러했다. 그는 상여의 머리에 올리는 봉황을 나무로 깎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봉황 조각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생생하게 만들어내곤 했다. 실로 눈부신 솜씨였다. 가끔은 한가한 시간에 뒹구는 나무로 소나 말 같은 것을 조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달리는 말 조각이 하도 신기해 넋을 놓고 바라보노라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슥, 신기하나? 이기 뭐가 어렵겠노. 나무에서 말 아닌 것만 떼버리면 되는 긴데.” 말하자면 그도 용킨트처럼 독특한 목조기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용킨트 전에 모네에게는 또 한 사람의 멘토가 있었다. 외젠 부댕(Eugene Boudin)이라는, 역시 무명의 풍경 화가였다. 그를 통해 그는 사물이 직광과 반사광만으로 입체를 드러낸다는 루틴 미술기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미술이 사실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는 거의 생득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시야를 열어주고 생각을 교정시켜주는 멘토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유년기나 소년기에 누구를 만났는가에 따라 평생의 길이 결정되기도 할 만큼 어린 시절의 미적 체험이나 인연은 중요하다.
13∼14세 때 만난 두 사람을 통해 화가 모네의 눈과 세계관이 열린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살롱에 내었던 그림 ‘인상, 일출’이 미술사에서 소위 인상파 계열의 첫 장을 열게 될 줄은 그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 위에 함께 햇빛 쏟아지는 밖으로 나가 그리기 시작했던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 프레데리크 바지유(Frederic Bazille),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등과 어울리면서 ‘개체’는 ‘운동’이 된다.
28세가 되던 1867년에 모델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와 결혼해 아들을 낳고 영국에 건너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같은 영국 풍경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다시 풍경화를 눈공부하고 돌아오는데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 터너의 경쾌한 붓질과 색채 경계 없이 분산되는 화풍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다 한 부부와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 부부가 모네에게 작품을 의뢰하기 위해 아르장퇴유 집에 왔다가 함께 눌러살게 된 것. 당대의 거부였던 수집가 에르네스트 오세데와 그의 아내 알리스였다. 모네에게 작품을 의뢰하면서 시작된 인연이었는데 어느 날 에르네스트가 그만 파산을 하면서 모네의 집에 아내를 남겨두고 홀로 종적을 감춰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 아내가 사망하게 되고 결국 에르네스트의 아내 알리스는 모네의 아내가 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모네와 새 아내는 세상과 절연하듯 파리 근교 지베르니로 이사한다. 여기서 숲과 야생화로 뒤덮인 거대한 크기의 땅을 사고 연못을 파는 대대적인 공사를 한다. 그리고 연못에는 동양풍의(정확히 말하면 일본풍의) 아치 다리를 올린다. 그러면서 어린시절 조응했던 물, 햇빛, 바람, 그리고 나무와 꽃을 마주한다.
프랑스 화가 마조렐이 식민지 모로코로 가서 평생 꿈꾸던 마조렐의 정원을 만들었듯이 모네는 지베르니의 거대한 정원을 공사·감독하며 가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에게는 아무래도 전통시장의 우키요에(浮世繪) 그림을 통해 만난 일본이 닿을 수 없는 신비의 나라쯤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일본의 ‘이끼정원’을 따라 수로를 내고 연못을 파서 거기에 수련을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익어가는 그 정원에서 도인(道人)처럼 햇빛에 일렁이는 물빛과 손질하지 않은 나무며 야생화를 그리고 물 위에 둥둥 떠가는 듯한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다.
세잔은 백 개가 넘는 사과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지지만 모네는 물경 천 점을 훌쩍 넘는 수련을 그렸다고 한다. 가끔은 중국의 옛 두루마리 그림처럼 옆으로 한없이 긴 수련 그림을 그려 그것이 마치 공간을 뚫고 나가다 못해 우주로까지 이어질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모네의 이 대작 수련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들은 그림을 따라 둥그렇게 지어진 경우가 많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은 그 자체가 지붕 있는 수련 정원이라 할 만하다. 전 세계 저명 미술관에 그의 수련 그림이 없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지만, 일본의 미술관들이 특히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나오시마의 지추(地中)미술관이나 시코쿠(四國)의 오하라 미술관에 가면 마치 수묵채색화 같은 그의 수성(水性) 느낌이 나는 수련 초대작들을 만나게 된다. 물과 하늘의 아스라한 경계와 둥둥 떠 있는 수련. 그의 수련은 외광에서부터 점점 내면화되면서 명상과 관조의 오브제가 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만년의 수련 연작들은 유채로 그린 동양화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클로드 모네
자연 공간에 열린 시각
초대형 작품 많이 남겨
‘인상, 일출’에서부터 인상주의라는 말이 생겨났을 만큼 클로드 모네(사진)는 인상주의의 대표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오브제의 연작을 통해 빛의 미묘한 반사와 파장을 집중해서 회화로 구현하려 노력했다.
소년시절을 항구도시 르아브르에서 보내면서 물의 색채와 거기에 반사되는 빛과 색의 체험을 하게 된다. 청년시절 네덜란드 풍경화가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Johan Bartold Jongkind)로부터 대기 중의 빛을 색채로 표현하는 기법을 익히게 되고 대상과 배경의 경계선을 흐리면서 사물이 빛을 흡수하며 일으키는 파장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미술사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용킨트를 자신의 눈을 열어준 진정한 대가라고 예찬한 바 있다. 훗날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 등과 함께 일종의 외광파 미술활동을 함께하면서 본격적인 인상파의 길을 걷게 된다.
1879년 아내 카미유 동시외가 사망한 후 이듬해 한 집에 함께 기거하던 후원자 에르네스트 오세데의 아내 알리스와 재혼해 1883년 노르망디 지역의 지베르니로 이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넓은 대지를 구입해 대대적으로 수련 연못을 만들고 일본풍의 아치형 다리를 설치하며 지금까지의 제한된 오브제와 공간이 아닌 전 우주적 열린시각으로 마치 중국의 두루마리 그림인 권화(卷畵) 같은 횡폭 대작을 많이 그렸다.
나오시마의 지추(地中)미술관, 시코쿠(四國)의 오하라미술관 등 특히 일본에 모네의 수련 초대형 작품이 많고 같은 계열의 거대한 작품들이 거의 전 세계 유명미술관에 소장돼 있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수련작품을 제작했는데, 유채(油彩)로 마치 수채화와 수묵담채화 같은 느낌의 작품들을 그림으로써 대표적 동양풍 화가로 알려지게 된다. 인생 후반기를 지베르니에서 마치 은둔의 옛 산수 화가들처럼 칩거하며 수련연작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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