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후폭풍' 시민단체 큰 '충격'..정의당은 탈당 '러시'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오전 고인이 일하던 서울시청에서 엄수됐다. 박 시장이 이제껏 걸어온 길을 대변하듯 지난 닷새동안 수많은 논란거리가 생산됐고 특히 진보 진영에는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열린행정가로 한 평생 살아온 그였지만 마지막에는 성추행 의혹 피고소 직후 비극적 선택을 하면서 진보 진영 내부에도 갈등이 일었다.
공과 과를 나눠서 평가해야 한다는 여론과 마지막 선택이 떳떳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이다. 이같은 갈등은 앞으로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의 죽음과 장례로 암묵적으로 일시 침묵했던 상황이 해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가장 많은 충격과 안타까움, 분노 등을 표출하고 있는 곳은 시민단체 쪽이다. 시민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박 시장이기에 그 충격을 배로 받는 형국이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대부분 답변을 거절했지만 일부 활동가는 현 시민운동 자체가 위기를 맞았다며 씁쓸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한 중견 활동가는 "지금도 이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피해자와 유가족 모두에게 앞으로 상처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한 활동가는 "박 시장이 힘겹게 걸어온 길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면서도 "다만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박 시장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옹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반응은 실제로 시민단체들이 공개적으로 내놓은 성명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참여연대는 박 시장의 사망 소식에 "황망하고 안타까운 소식에 슬픔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고 박원순 시장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는 짧은 성명을 내놓았다 반면, 한국여성의전화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 선 우리 사회의 일면에 분노한다"며 "우리는 피해자가 바라왔던 대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가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지역 단체 한 활동가는 "박 시장의 마지막 선택을 놓고 시민단체 마다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며 "다양한 갈래로 갈라진 시민운동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로간 더 등을 돌릴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죽음은 정치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인에 대한 추모가 우선이라며 이해찬 대표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성계를 의식, 공식적인 추모 메시지는 자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론을 의식한 듯 성추행 의혹 고소 당사자의 신상을 보호해야 한다며 '2차 가해'에 대해서는 제동을 거는 논평을 내놨다.
내부에서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곳은 정의당이다. 류호정·장혜영 의원 등은 박 시장을 조문하지 않기로 한 반면, 심상정 대표와 배진교 원내대표 등은 2차 가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이를 두고 정의당은 주말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당원 게시판에는 류호정·장혜영 의원을 비판하며 탈당한다는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왔고 이에 반발, 일부 당원은 탈당 거부 운동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박 시장은 내부 갈등을 떠나 자신의 대표적인 정책과 관련해서도 숙제를 남겼다. 당장 서울시는 구심점을 잃은 그린벨트 정책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심에 빠졌다.
주택 공급확대를 위해 여권 마저 그린벨트 해제 압박을 가해도 이를 온 몸으로 막았던 것이 박 시장인데 이제 이같은 울타리 마저 사라진 만큼 장기간 이어져온 박원순표 정책이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여권도 박 시장이 갑작스럽게 떠남에 따라 다가오는 대선과 이를 통한 재집권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박 시장 마저 잃은 여권은 대선 경선 흥행을 위한 재정비는 물론, 이탈한 지역 민심을 어떤 식으로 되돌릴지 고심에 빠진 모습이다.
sanghw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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