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5% 내는 양도세에 95% 개미는 왜 분노할까 [머니톡]

김은성 기자 2020. 7. 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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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터뷰]한투연 정의정 대표 “주식 양도세, 기울어진 운동장 심화시키는 불공정 과세”

개인투자자들의 꾸준한 매수세로 코스피가 7월7일 장중 2206.79까지 올랐으나 2200선 안착에 실패했다.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머니톡] 소소한 재테크와 생활경제 정보를 전합니다.』

“금융시장 시스템부터 선진화한 뒤 금융세제 선진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대로 두고 세금만 걷겠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입니다. 양도소득세는 개인투자자에게만 도입되고, 증권거래세는 내리기 때문에, (초단타매매 등을 하는)기관과 외국인이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구조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개인투자자 권리보호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의 정의정 대표(62)는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대명제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양도세 도입 유예’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정 대표는 지난 9일 경향신문과 만나 “정부가 선진국처럼 불공정행위 등 증권 범죄에 대해선 엄벌에 처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정하게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한다”며 “(그게 어렵다면)코로나19가 진정되고 부동산 광풍이 잠잠해질 때까지 현상 유지를 해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습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입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을 놓고 개인들의 반발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투연은 한 일간지 1면에 광고를 냈고, 개인들은 청와대에 10여 건의 국민청원을 잇따라 올렸습니다. 이번 방안은 2023년부터 연간 2000만원이상 금융투자 수익을 올리는 개인투자자에게(상위 5%) 양도소득세(20~25%)를 부과하는 대신 증권거래세율을 낮추는(0.25%->0.15%) 것이 골자입니다(펀드과세는 2022년 시행).

양도세 대신 법인세를 내는 기관과 조세조약에 따라 자국에 양도세를 내는 외국인은 이번 개편안에 따라 거래세 인하 혜택을 봅니다. 개인들도 거래세 인하 효과를 보지만, 인공지능(AI) 등을 통해 대규모 초단타매매를 하는 기관과 외국인이 더 큰 혜택을 누리는 구조입니다. 증권사 노조가 모인 사무금융서비스노조 증권업종본부가 “세금을 걷기 위해 개인들에게만 부담을 전가하는 이번 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입장문을 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외국인의 놀이터는 놔두고, 개인투자자에게 세금만 징수?”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한국 주식시장 뒤에는 ‘외국인들의 놀이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정보와 자본으로 무장한 기관과 외국인들이 알고리즘 매매 등의 신종 매매기법과 작전으로 돈을 버는 동안 대부분의 개인은 ‘자판기’ 역할을 해왔습니다. 개인들은 신용 문제로 주식을 빌리기 어려워, 공매도조차 외국인과 기관의 전유물이 됐습니다.

불법(무차입) 공매도는 사전에 막을 장치도 없고, 사후 제재도 솜방망이에 그쳐 매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불법 공매도에 맞서 금융당국이 형사처벌과 과징금을 신설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논의조차 없이 폐기됐습니다. 선진국에서는 불법 공매도 적발시 60억 이하 벌금 또는 20년 이하 징역, 공매도로 얻은 이익의 10배 벌금 부과 및 영업정치 등으로 엄격히 다루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10여년간 ‘부동산 불패’ 신화가 이어져 오는 동안 증시가 박스피(2100선)에 묶인 것은 정부의 책임도 있었다”면서 “초저금리 등에 따른 개인들의 유입으로 간신히 침체를 벗어나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는데 갑자기 찬물을 끼얹으려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상위 5%만 양도세를 내고, 나머지 95%는 거래세 인하로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양도세를 내고 거래세를 내린 만큼 거둬들일 세수가 같은 것으로 추산돼 증세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연구용역)는 개인정보보호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용역조차 공개하지 않고 공청회에서도 개인을 대변하는 전문가가 없다 보니 정 대표는 “세금만 내는 도구가 돼 우매한 백성 취급을 당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수를 걷기 위함이 아니라면 왜 이 시기에 개편안을 던져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지 의문”이라며 “부동산 광풍을 잡으려면 부동자금 1100조원이 증시로 와야하는데, 개편안을 강행하면 성장성이 더 큰 해외주식으로 나가거나 부동산으로 더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600만명의 개인투자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국내 유일의 비영리 단체로 지난해 10월 설립됐다. 정의정 대표(사진)에 따르면, 한투연에는 현재 1만1000여명이 가입해 공매도 제도 개선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경실련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투연 제공.


5%가 낼 양도세에 95% 개인들이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선 “5대 95는 불변이 아니다”라며 “지금 같은 장이라면 주식 특성상 95%에 있던 사람이 언제든 5%로 갈 수 있고 또 대다수가 그런 꿈을 갖고 투자를 하는데, 정부가 꿈을 꺾어버린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주식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것으로 1~2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며 “장기투자하는 사람은 2000만원이 아닌 2억을 벌기 위해 베팅하는데, 투자심리나 시장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한투연과 정부 입장이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거래세 폐지 불가’입니다.

금투업계는 ‘이중 과세’라며 폐지를 주장하지만, 정부는 폐지 불가 입장을 재차 밝혔습니다. 정부는 한국보다 시장이 더 발달한 영국·홍콩·싱가포르 등도 거래세를 내는 것을 예로 들며 “거래세 폐지 시 프로그램을 통한 초단타 및 고빈도 매매, 자전거래 등으로 가격이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거래세가 시장 교란 행위를 제어하는 장치가 될 수 있어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정 대표도 “지난해 메릴린치증권의 초단타매매 사건에서 봤듯 거래세를 폐지하면 첨단 단타기법이 고도화돼 개인들 계좌는 쑥대밭이 될 공산이 크다”고 주장합니다. 메릴린치 사건은 알고리즘을 통한 초단타매매와 허수성 주문으로 증시를 교란해 2200억원대의 부당한 이익을 얻고도 제재금이 1억7500만원에 그쳐 공분을 샀던 사건입니다. 허수성 매수인지 알 방법이 없어 추격매수를 한 개인들은 큰 피해를 봤습니다. 게다가 해외 헤지펀드 등은 선진국의 높은 규제를 피해 제재 수위와 거래 비용이 낮은 한국 같은 신흥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추세입니다. 한투연이 거래세 유지를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거래세 ‘안전핀’ 역할, 개편안 강행시 조세저항 불가피”

정부는 세제 개편 목적이 금융투자 활성화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재도 대주주에게는 양도세가 부과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주주 요건을 2017년 코스피 종목당 25억원, 코스닥 20억원, 2018년에는 각각 15억원, 지난해 말에는 10억원으로 낮춰 양도세를 걷고 있습니다. 올해 말에는 또다시 3억원(직계존비속·배우자 합산)으로 줄어듭니다. 이로 인해 매년 연말이면 대주주 요건 회피를 위해 큰손들이 4조원 가량의 ‘매물 폭탄’을 쏟아내며 세금을 내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개편안이 시행되도 이런 매물 폭탄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막기 위해 순이익에만 세금을 매기는 ‘손익통산’과 ‘손실 이월공제’(3년) 같은 개혁적인 안도 함께 내놨습니다. 하지만 분산·간접투자를 장려해온 정책을 뒤집는 원칙없는 세부안(펀드 역차별, 양도세 월단위 징수 등)으로 투자자들의 이탈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편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이중과세’라며 거래세 폐지 법안을 제출해 당정협의에서 개편안이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당정협의를 통해 확정된 안은 이달 말 발표되는 세법개정안에 담길 예정입니다.

정 대표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정부인만큼 세금을 내는 당사자인 개인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한다”며 “개편안을 강행한다면 조세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투연은 당정협의에 맞춰 여의도 민주당사 앞 1인 시위 등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최근 공청회에서 기재부 측은 개편안에 대해 “역사에 남을 만한 개정”이라며 “국민의사를 반영해 최종안을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개정안이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는’ 현재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개인들에게 달려있는 만큼 불공정한 운동장을 바로 잡는 정부의 ‘의무’도 함께 논의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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