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06] 코로나19 계기 '지구 위협하는 인간'에 대한 뼈아픈 자각..인류세를 아시나요?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을 줄였던 지난 몇 달 간, 답답하고 지치는 일상 가운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차량과 항공 교통이 일시 통제되고 산업 활동이 감소하면서 유럽 지역의 대기질이 크게 개선된 모습이 관측된 겁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AAlJE_aYiyw ]
네덜란드왕립기상연구소(KNMI)와 유럽우주국(ESA)은 대기오염 감시 위성의 관측 자료를 공개하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이산화질소 농도가 크게 감소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유럽까지 갈 것까지도 없이 우리도 최근 부쩍 파란 하늘, 예쁜 노을, 맑은 공기 경험하고 있는데요. 누군가는 이를 ‘코로나의 역설’이라고 불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들의 활동이 그 동안 지구 환경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 코로나의 역설로 본 ‘인류세(世)’
‘인류세’라는 개념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인류가 내는 세금인가? 인류가 사는 세상이라는 건가? 처음 듣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란 인류를 뜻하는 ‘Anthropo-’에 지질시대 한 단위인 세를 뜻하는 ‘-cene’을 붙인 것으로, 45억 년의 지구 지질연대기 중 최초로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변화가 발생한 지질시대를 제시한 것입니다. 그만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의미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pTk11idmTUA&feature=youtu.be ]
▲ 홀로세 가고 인류세(世) 왔다?
기존 학계에선 약 1만1천여 년 전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가리켜 신생대 제4기 '홀로세(Holocene)'로 구분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구시스템 과학자들이 산업혁명 이후 탄소 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등 인류의 활동으로 지구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자 현 시기를 다른 '세'로 구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지구 대기 오존층이 사라질 가능성을 경고한 업적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던 네덜란드의 화학자 폴 크뤼천(Paul Crutzen), 그리고 생태학자인 유진 스토머(ugene F. Stoermer)가 지난 2000년 인류세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 인류세(世) 시작은?
[ https://www.youtube.com/watch?v=wJAbHssn0GI&t=1189s ]
학계에서는 여전히 인류세 공식화 문제에 대해 논의 중에 있습니다. 인류세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이 가운데 전 지구적으로 산업화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1950년 초반이 유력한 후보로 언급되는데요, 호주의 기후학자이자 화학자인 윌 스테판 등은 지난 50여 년간 인구 증가, 도시화, 에너지, 비료 사용과 같은 등 인류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급증했고, 같은 시기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해양 산성화, 오존층 파괴 등 지구시스템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른바 ‘급가속(Great Acceleration)’으로 인한 인류 활동 증가가 현재의 지구 위기를 직접적으로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 ‘닭 뼈’가 왜 거기서 나와?
공룡 뼈가 중생대를 대표하는 화석이 된 것처럼 그럼 어떤 지표 화석이 인류세를 상징하게 될까요? 많은 과학자들이 1945년 등장한 핵폭탄에 의한 방사성 낙진과 콘크리트, 플라스틱 등을 염두에 두고 연구 중인데요. 영국 레스터 대얀 잘라시에비치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닭 뼈’를 후보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가축도 소 · 돼지 ·닭 ·양의 네 가지로 대량 생산 시스템이 본격화돼 생물의 다양성에 영향을 미쳤는데요. 그 가운데서도 인류가 가장 많이 잡아먹는 동물이 닭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매해 200억 마리가 도축되고, 산소가 적은 쓰레기장에 매립돼 화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100만 년 후 인류는 지금 이 시대를 ‘닭’의 시대로 기록할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인류가 지구 환경 변화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진단은 인간 사회와 자연환경이 분리돼 별도로 존재한다는 근대적 자연-사회 이분법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자연’과 ‘인류’의 역사가 하나로 섞이는 과정에 있는 것인데요. 이렇게 되면 과학 지식과 기술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고 경제 발전을 전개해 온 근대의 역사는, 동시에 생명을 파괴하고 지구 시스템을 교란한 자기 파괴의 역사가 됩니다. 우리가 ‘인간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신장했다고 보는 근 250여 년이, 행성적 차원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행성 파괴’가 일어난 기간인 것입니다.
▲ ‘인간이 깨워놓은 힘’ 인류를 위협하다
최근 들어 인류의 멸절이 임박했고, 되돌릴 수 없으며, 지금이 응급 상황이라는 위기의식은 긴급한 환경 논의와 실천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실제 2019년 북극권 지역 산불, 슈퍼 허리케인과 극심한 홍수, 미세먼지, 아마존 대형 산불에 이어 올해 호주 대형 산불과 동아프리카, 중동의 메뚜기 떼 재앙, 그리고 코로나19까지. '인간이 깨워놓은 힘'이 지속적으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입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두고 생물학적 존재(biological being)다, 사회적 존재(social being)다, 실천적 존재(practical being)다, 여러 주장이 있었습니다. 인류세는 지질학적 존재(geological being)로서 인간이 지구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늘날의 환경 재앙을 만든 존재가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이를 극복해 나갈 열쇠를 쥔 것 역시 우리, ‘인류’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의 생존과 관련한 책임이 바로 우리한테 있다는 것을 인지한 첫 세대입니다. 코로나19로 단 몇 달 만에 맑은 공기를 만난 것처럼, 지금 우리의 결심과 행동의 변화는 지구를, 우리의 인류를 지속가능하고 건강하게 되돌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류세가 제기한 질문들과 관련해,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엔 어떤 것이 있을까요?
**KAIST 인류세연구센터의 최명애 연구교수와 박범순 센터장이 쓰신 <인류세 연구와 한국 환경사회학 : 새로운 질문들>을 인용했습니다.
하대석 기자bigston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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