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이 된 정부, 분노·불신 뒤얽힌 부동산 시장 부추겼다

김원진 기자 2020. 7. 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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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용산구 한남3재정비촉진구역 / 연합뉴스


조회수만 17만4605회, 댓글은 211개가 달렸다.(7월 9일 기준)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17일 내놓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 보도자료에 쏠린 관심은 숫자로 드러났다.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정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도자료 조회수는 대개 1000회 안팎이다. 댓글이 달리는 게시물은 드물다. “집 사는 거 포기하렵니다, 제길…” 등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을 지배하는 감정은 ‘분노’다. 주택 수요자가 느낀 분노의 줄기는 여러 갈래다. 집값은 못 잡고 ‘내 집 마련’ 기회를 차단한 정부, 그런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은 다주택자인 현실에 분노가 치미는 상황이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설마, 설마 하던 시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주택 수요자들은 보금자리이면서 값이 오를 만한 집을 원하고 있는데, 이런 집을 살 기회가 점점 사라져간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젠 정부 말을 들으면 다 손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임계점에 다다른 시민의 분노
분노가 주택 매수로 이어지는 모습도 나타난다. 정부가 추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려 하니 ‘지금이라도 안 사면 늦는다’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7월 9일 기준 지난 6월 서울의 부동산 거래 건수는 1만555건이다. 부동산 거래 신고 기한은 매매계약 체결일에서 한 달이다. 아직 신고 기한이 남은 점을 감안하면, 역대 최다 거래치인 1만2564건(2018년 1월)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메시지는 줄곧 ‘부동산은 잡겠다’였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부동산 가격 잡아주면 피자 한 판씩 쏘겠다”(2017년 7월·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부동산 가격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확신”(2017년 8월), “더 강력한 수단 강구해서라도 (부동산 가격) 잡겠다”(2019년 11월)고 말했다.

정작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여론은 ‘부동산은 안 잡히겠는데?’ ‘더 오르기 전에 빨리 사야겠는데?’로 굳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일관성을 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주택 수요자들의 불안 심리를 불렀다고 본다. 정준호 교수는 1979~1987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폴 볼커의 사례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교했다. 볼커는 1980년 전후로 매년 10%가 넘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던 미국의 물가를 잡은 인물이다.

시장에 혼란 키운 잦은 정책 발표
정 교수는 볼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시장에 선제적으로 던진 명확한 신호 ▲흔들리지 않는 정책 추진을 꼽았다. 그는 “볼커는 선제적으로 물가를 잡겠다고 시장에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시장 상황 변동에 준비할 시간을 줬다. 이후 그는 기준금리를 21%까지 올리기도 했다. 볼커는 정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일관되게 물가를 잡는 정책을 추진했다. 경기침체가 우려됐지만 시장은 환경에 맞게 적응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부동산은 잡겠다’는 메시지만 내세웠을 뿐, 세부 정책은 오락가락했다. 정책이 일관성을 상실하면서 ‘부동산은 잡겠다’는 신호도 의미를 잃었다.

종합부동산세는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종부세를 올리겠다며 다주택자를 압박했다. 일부 언론에서 ‘종부세 폭탄론’을 지폈지만, 정작 정부는 제스처만 요란했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2018년 7월 세수 1조1000억원을 더 걷는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기존 종부세액(1조5000억원)에 재정개혁특위안인 1조1000억원을 더해도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거둔 2조7671억원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같은 해 9월 발표된 종부세 개편안으로 더 걷는 추가 세수도 1조150억원에 그쳤다. 당시 정부가 추산한 종부세 대상 34만9000명도 2007년(48만2622명)보다 적었다. 표면적으로 최고세율(3.2%)만 참여정부(3.0%)보다 올라갔을 뿐이었다. 시장에는 ‘정부가 변죽만 울린다’는 신호를 줬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해지자 추가 종부세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2019년 12월에는 최고 세율 4% 인상안을 확정했다. 당정은 최근 다시 종부세 최고 세율을 6%까지 인상하는 안을 꺼내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요동친 뒤에야 뒤늦게 종부세 추가 인상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임대사업자 등록 혜택도 정부가 입장을 바꾼 부동산 정책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는 임대사업자에게 종부세·재산세·양도세 면제 내지는 감면 혜택을 줬다. 이 때문에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정은 현재 정책 실패는 인정하지 않은 채 임대사업자 등록 혜택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잦은 부동산 정책 발표(22번)도 시장에 불신을 심어줬다.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세법과 대출 요건은 복잡해졌고, 선의의 피해자들이 나왔다. 정책 발표가 거듭될수록 주택 수요자들 사이 ‘부동산이 더 오를 것’이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 ‘정부가 부동산 시장 폭락은 막는다’, ‘진보 정권에서 부동산 가격은 오른다’는 심리적 저지선이 이미 깔려 있는 점도 현 정부의 걸림돌이다. 각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무현 정부 이후에 생긴 일종의 기대심리다.

정 교수는 “5년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정부가 경제 정책을 펼칠 때 선제적 신호를 보내더라도 한계가 뚜렷하다. 시장이 ‘5년 뒤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 새로운 정책에 적응하기보단 버티기 때문”이라며 “그렇다면 정책 추진의 일관성이라도 유지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정부가 양치기 소년이 돼버렸다. 아무도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당국자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 / 연합뉴스

‘내로남불’이 초래한 불신
코로나19 여파로 경기는 침체돼 있지만 부동산 시장의 심리는 예외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의도대로 작용하지 않는데다 시중에 3000조원이 넘는 유동성까지 풀려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지난 6월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 주택가격 전망은 112였다. 소비자 동향조사는 100을 기준으로 100보다 높으면 가격이 오르거나 호황으로 본다.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의 지난 5월 부동산 시장 소비자 심리조사’를 보면 지난 5월 서울의 주택매매시장 소비자 심리지수는 121.5였다. 전월(105)보다 16.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국토연구원은 지수가 115에서 200 사이일 때를 상승 국면으로 본다.

부동산 시장 상승 국면에서 정부 불신을 더한 건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처신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집을 팔라”며 다주택자를 압박했다. 재건축·재개발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개발 사업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부동산을 이용한 자산 증식은 해서는 안 될 행위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정작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처신은 정부의 메시지와 달랐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9년 12월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에게 “수도권 다주택자는 한 채만 남기고 팔라”고 권고했다. 정작 다주택자였던 노 비서실장은 최근에야 서울 서초구 반포 아파트 대신 자신의 지역구였던 충북 청주 흥덕구 아파트를 매도하려다 비판을 받았다. 노 비서실장은 비판이 쏟아진 뒤에야 시세 11억원 안팎의 반포 아파트도 내놓겠다고 밝혔다. 노 비서실장은 반포 아파트를 2006년 2억8000만원에 매입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서울 동작구 흑석동 상가 매입도 정부 인사들의 위선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김 전 대변인이 2018년 7월 25억7000만원에 매입한 흑석동 상가는 재개발 인가가 나 수십억원의 차익을 얻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정부의 추가 규제가 20~30대의 부동산 시장을 막는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불만이 올라온다. 국토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청와대에 다주택자가 수두룩한데 다주택자를 옥죄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는 게 설득력이 있느냐”는 푸념도 나온다.

최근에는 정부가 숫자에 집착하다 불신을 더한 일도 벌어졌다. 국토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6월 23일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이 50% 넘게 급등했다”고 주장하자 반박자료를 냈다. 국토부는 한국감정원 통계상 “서울 아파트 가격 변동률은 14.2%”라고 주장했다. 시민이 느끼는 가격 상승 체감과는 괴리되는 반론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숫자 논란은 국회에서도 나왔다. 이용호 의원(무소속)이 지난 6월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부동산 대책이 22번째라고 하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언론이 주거복지 정책까지 다 더해 만든 숫자다. 4번째 부동산 정책이 맞다”고 답했다.

정부의 논란을 부르는 해명은 끊이지 않았다. 국토부는 임대사업자 등록 혜택 철회가 기정사실화되자 지난 7월 9일 해명자료를 내놨다. 국토부는 “역대 정부에서 마련된 기존 혜택 연계, 장기임대 유도를 위한 요건 강화 등이 주된 내용이다. 현 정부에서 신설한 혜택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예전 정부에서도 존재했던 정책이었다는 취지의 해명이다.

국토부의 이 같은 해명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발언과 배치된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직접 홍보영상에 나와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면 세제·금융 혜택을 드린다”고 알렸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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