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유배지 강진에 활짝 핀 수국, 형님 평안하신지요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0. 7. 1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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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뿌리의 길... 시대 앞서간 다산의 정신 같구나/다산초당 가는 길 소나무·삼나무 뿌리 얽히고 설켜/신비로운 예술 작품 빚어놓은 듯/수국 흐드러진 사의재 주모상 모녀 “쉬어가라” 손짓/모란꽃 피고 지는 영랑 생가 그의 시만큼 서정적

사의재 마당 연못과 수국
6∼7월 탐스럽게 피는 수국의 꽃말은 ‘변심’. 색이 자유자재로 변하기 때문이다. 녹색이 섞인 흰꽃으로 피어 밝은 푸른색에서 분홍빛을 거쳐 바이올렛으로 물든다. 강한 산성 토양에서는 푸른색,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붉은색이 강하다. 마당에 심은 수국이 지난해 푸른색으로 피었다 올해는 붉은색으로 바뀌는 풍경은 신비롭다. 그런데 ‘변심’이 다가 아니다. 색만큼 꽃말이 다양하다. 흰색은 변덕·변심, 푸른색은 냉정·거만, 분홍은 소녀의 꿈, 보라색은 진심이다. 다산 정약용이 먼 길을 떠나 도착한 유배지 전남 강진 사의재 앞에 섰다. 앞마당에 보라색 수국이 한창이다. 18년 동안의 고된 강진 유배생활. 그럼에도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친 그의 진심은 보라빛 수국으로 활짝 피어 여행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의재 수국
#수국으로 물든 강진, 형님 편안하신지요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내용은 잘 몰라도 초등학교 시절 달달 외워 다산 정약용하면 떠오르는 3대 저서다.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고의 개혁가, 다산의 삶을 따라가는 강진 여행은 사의재에서 시작한다. 일생이 파란만장하다. 조선후기 문예부흥을 이끌던 임금 정조는 “그대를 능가할 자 없고, 100년만의 재상 재목 그대밖에 없다”며 다산을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모셨다. 하지만 정조가 죽자 조정은 핏빛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결국 신유사옥과 황사영백서 사건으로 다산의 셋째형 정약종과 형수, 매형과 조카, 조카사위 황사영이 하루아침에 몰살당한다.
사의재 수국
목숨만 겨우 건진 다산과 둘째형 정약전은 머나먼 귀양길에 나섰고 나주에서의 생이별이 서로의 마지막 모습이다. 다산이 1801년 11월 23일 지친 몸을 끌고 도착한 곳은 강진의 허름한 주막 동문매반가. 주막집 할머니는 지친 나그네에게 골방 하나를 내어줬고 다산은 학당을 세워 진심을 다해 후학을 가르치며 다시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 다산은 이곳을 사의재(四宜齋)로 불렀는데 생각, 용모, 언어, 행동 4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이다.
사의재
사의재 주모상
초가로 꾸민 사의재 앞에는 다산을 4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학문의 길을 열어준 할머니와 외동딸이 술병을 들고 선 ‘주모상’이 세워져 여행자들에게 쉬어가라 손짓한다. 따뜻한 인심이 표정에 잘 느껴진다. 강진군에서 오랜 고증을 거쳐 2007년 우물가 주막 집터를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2018년 12월에는 한옥으로 꾸민 사의재 저잣거리도 문을 열어 한과·공방 등 강진의 전통을 체험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인기다. 지금 사의재 마당 연못가에는 분홍과 보라색 수국이 만개해 오두막과 어우러지면 운치를 더한다.
보은산 수국길
제철 수국을 좀 더 즐기고 싶어 다산이 사의재를 떠나 1년 동안 머문 강진읍 보은산 고성사의 보은산방으로 향한다. 도로 양옆이 수국으로 덮여 그야말로 꽃길만 걷는 기분이다. 길 전체가 자연스러운 포토존이라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서 멈춰 셔터를 누르면 된다. 다산은 보은산방에서 차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주옥같은 시 52편을 남긴다.
브이래드 연꽃단지
브이래드 연꽃단지
돌아 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브이랜드 연꽃단지에는 기다리던 하얗고 빨간 연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드넓게 펼쳐진 초록의 물결과 파란하늘, 순수함 가득한 하얀 연꽃이 어우러지며 여름 여행의 싱그러움을 더한다.
다산초당 뿌리의 길
다산초당 뿌리의 길
#다산초당으로 안내하는 신비한 뿌리의 길

여름 강진을 수국과 연꽃으로 머릿속에 저장하며 남쪽으로 길을 잡으면 정약용의 숨결 가득한 다산초당이다. 다산명가찻집 앞에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닿는다. 수백년된 소나무와 삼나무가 대화하듯 어우러지며 길을 안내하는데, 오랜 시간 서로 뒤엉킨 뿌리가 흙 거죽을 뚫고 나와 근육질 사내 팔뚝의 불거진 핏줄처럼 신비로운 예술작품을 빚어 놓았다. 시인 정호승이 이곳을 ‘뿌리의 길’이라고 노래한 이유를 알겠다.

다산초당 뿌리의 길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는 깊은 산속 언덕에 도착하면 다산초당이다. 연못에 커다란 잉어가 헤엄치고 연못을 통과한 물줄기는 아래로 졸졸졸 흐른다. 다산초당 왼쪽은 제자 18명이 기거하던 서암, 오른쪽은 동암이다. 저술에 필요한 책 2000여권을 갖췄던 ‘도서관’ 송풍루가 다산의 거처다. 나무는 이끼로 가득 덮여 태고의 순수함이 가득하고 높은 나무 틈으로 햇살이 어렵게 비집고 들어와 다산초당을 비춘다. 아주 고요하니 학문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다산과 제자들이 학문을 연마하며 토론하는 속삭임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다산초당
원래 해남윤씨 소유 다산서옥이었다. 다산은 1808년 봄 이곳에 놀러갔다 고요함과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시를 지어 전했고 윤씨 집안이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다산은 11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집필했고 다산학단으로 불리는 제자 18명을 길러냈다.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으로 불리는 곳에 사는 자신을 스스로 ‘다산초부’라 불렀는데, 자연스레 그의 호가 됐다.
다산초당 천일각
동암을 지나 천일각에 오르면 강진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늘 끝 한 모퉁’이란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을 줄인 이름으로 다산 유배시절에는 없었고 나중에 지어졌다. 다산은 흑산도에서 유배하는 형 정약전이 그리울 때마다 이 언덕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형의 안부를 하늘에 묻고 슬픔을 달랬다. 다산은 1816년 형의 사망소식을 다산초당에서 듣는다.

천일각 가기 직전 왼쪽 오솔길은 백련사로 이어진다. 야생 차나무가 가득하고 동백꽃이 아름답다. 외롭던 시절 유일한 벗이 돼 준 백련사 혜장 스님은 깊은 밤 기약도 없이 이 길을 따라 다산을 찾아와 학문을 논했고 다산은 그를 위해 밤늦도록 문을 열어놓았다고 한다. ‘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에 속하며 전체 구간은 15km로 5시간가량 걸린다. 다산수련원∼다산초당∼백련사∼철새도래지∼남포마을∼목리마을∼이학래생가∼강진 5일시장∼사의재∼영랑생가로 이어진다.

영랑 생가 입구
영랑생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
#모란이 피기까지 기다리고 있을테요

강진여행에 빼놓을 수 있는 이가 시인 김영랑이다. 사의재 근처에 영랑 생가가 있으니 함께 묶어서 둘러보기 좋다. 모란을 너무나도 사랑한 시인은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며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한다. 그는 순수 서정시의 대가로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음악성 넘치는 시어로 풀어내는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휘문의숙에서 공부하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강진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주도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영랑 김윤식 동상
생가는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1985년 강진군이 매입해 철거됐던 문간채를 다시 세우는 등 유족들의 고증을 통해 원형대로 복원했다. 초가지붕으로 꾸민 생가는 영랑의 시만큼 서정적이다. 문간채를 거쳐 안채로 들어서니 여행자들이 고즈넉한 툇마루에 앉아 여유롭게 담소를 나눈다. 방에는 영랑의 초상화가 놓여있다. 장독대, 샘물, 수령 300년이 넘는 동백나무 등 시의 소재가 됐던 대상들이 가득하다.
영랑생가 장독대
영랑생가 안채 초상화
5월이면 곳곳에서 모란이 화려하게 수놓는다고 한다. 영랑은 1950년 유탄에 맞아 숨질 때까지 시 86편을 발표했는데 60여편을 일제강점기 생가에서 집필했다. 안채 왼쪽 대나무숲길로 오르면 세계모란공원으로 영랑의 동상을 만난다. 유리온실에서 사계절 전세계의 모란을 감상할 수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 입구
강진만 생태공원 데크길
강진만생태공원은 노을이 근사한 추억을 남긴다. 20만평의 갈대군락지가 장관을 이루며 3km가량의 생태탐방로가 잘 조성돼 시원한 강진만의 바람을 즐길 수 있다. 손바닥만 한 짱둥어가 펄쩍펄쩍 튀어 오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칠게,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1131종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강진=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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