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새로운 음악 시도.. 영화를 듣게 하다

사실 영화음악 거장이란 말로는 모리코네의 업적을 평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1961년 데뷔해 반세기 가까이 500편이 넘는 영화의 음악을 만드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며 동시대 영화음악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영화음악 수집가인 문상윤 영화음악 칼럼니스트는 “모리코네는 영화음악의 신이자 영화음악 그 자체”라며 “워낙 다작을 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경향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문 칼럼니스트의 도움으로 모리코네의 영화음악 세계를 시대별로 짚어 본다.
◆1960년대… 세르조 레오네와 손잡다=모리코네는 1961년 영화 ‘파시스트’의 사운드트랙을 맡으면서 영화음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1960년대엔 이탈리아 서부극 창시자인 세르조 레오네(1929∼1989) 감독과 주로 작업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일명 무법자 3부작, ‘황야의 무법자’(1964)와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 또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까지 네 편을 함께하며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특히 무법자 3부작에서 다양한 소리를 과감하게 사용해 영화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휘파람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채찍과 피리 소리, 종소리, 코러스 등을 곁들였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하모니카 선율이 두드러진다. 이에 대해 문 칼럼니스트는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의 스승인 고프레도 페트라시가 전위음악 작곡가였다”며 “모리코네도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아방가르드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고 모리코네의 복합적인 음악적 성향을 설명했다.





거장은 무대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당시 “음악에 영감을 주는 훌륭한 영화 없이는 훌륭한 음악은 없다”면서 쿠엔틴 타란티노(57)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그만의 작곡 비법이 있는 걸까. 모리코네는 ‘엔니오 모리코네와의 대화’(작은씨앗, 2014)란 책에서 “작곡 기술이 하나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음악을 만들면서도 영화의 성공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건 제게 많은 부분을 단순화시켜야 한다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탈출구를 모색해야만 했어요. 음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작곡가로서 만족할 수 있는 뭔가를 항상 찾았습니다. 물론 공부한다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었죠. 저를 진정한 작곡가로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던 거예요. 어떤 때에는 영화 자체가 너무 저질이어서 그런 걸 바랄 수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프레스코발디의 6음과 바흐의 4음을 두고 고민하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감독들은 모리코네의 음악적 범위, 침묵의 독창성에 감탄했다”면서 “모리코네는 (영화 속) 너무 많은 음악으로 인한 감정 과잉을 경계했다”고 평가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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