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사무총장 입후보 마감 8명 격돌.."유명희 승산은 있다"
유명희 '중립' 역할 강점 첫 韓 수장 탄생 관심
(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출사표를 던진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8명의 후보가 격돌한다.
지난 5월 호베르투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임기 1년을 남기고 전격 사임을 발표하면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등록 마감일에 도전장을 내민 영국의 리엄 폭스 전 국제통상부 장관과 일찌감치 등록을 마친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전 재무장관이다.
다만 선거가 다득표 방식이 아닌 WTO 164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의사결정 구조임을 감안할 때 유럽(선진국)-아프리카(개발도상국) 대결 구도 속 양쪽 모두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한국(중견국)의 선전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외신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WTO는 다음 달 31일로 사퇴하는 호베르투 아제베두 사무총장의 뒤를 이을 차기 WTO 사무총장 후보 접수를 8일(현지시간) 마감했다. 접수 결과 한국을 비롯해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나이지리아, 이집트, 케냐, 몰도바 등 8개국 출신 후보가 지원했다.
후보별로 유명희 본부장, 영국의 리엄 폭스 전 장관, 사우디의 무함마드 마지아드 알투와이즈리 전 경제기획부 장관, 멕시코의 헤수스 세아데 WTO 초대 사무차장,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전 재무장관, 이집트의 압델-하미드 맘두 전 WTO 서비스국 국장, 케냐의 아미나 모하메드 전 WTO 의장, 몰도바의 투도르 울리아노브스키 전 주제네바 대사 등이다.
선진국을 대표할 영국 출신의 폭스 전 장관이 막판 입후보하면서 유 본부장의 당선 가능성은 다소 낮아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WTO 사무총장직은 관례상 선진국과 개도국이 번갈아 맡아왔기 때문에 브라질 출신의 현 사무총장에 이어 이번엔 선진국 출신 후보자에게 힘이 실릴 수 있어서다. 또 WTO에서 가장 입김이 센 미국이 폭스 전 장관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지지를 받고있는 아프리카 후보의 선전도 유 본부장에겐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아프리카는 WTO 164개 회원국 중 54개국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현재까지 사무총장을 배출한 적이 없어 이번 기회를 노리고 있다.
특히 나이지리아 출신 오콘조이웰라 전 장관은 자국 재무장관, 세계은행(WB) 전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사무총장을 역임한 경제 전문가이고, 현재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어 개도국을 대표할 후보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다만 아프리카연합(AU)의 후보 단일화 노력에도 이집트, 케냐 등 다른 아프리카 후보들이 출마해 혼전이 예상된다. 물론 WTO 사무총장 선출 방식이 회원국들의 지지도가 낮은 후보를 하나씩 탈락시켜 최종 1명의 후보를 가려내는 절차를 밟는 만큼 이 중에 마지막에 살아남은 후보에 표를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판세 속에 유명희 본부장의 주목도는 상대적으로 높지는 않다. 유 본부장은 국제기구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적이 없는 '국내파'인데다 8명의 도전자 중 느지막이 후보등록을 한 경우여서 그렇다. 특히 정치·외교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이 한국 출신 WTO 사무총장 선출에 일찌감치 반대 입장을 드러낸 것도 큰 부담이다.
당선 가능성을 낙관하기는 쉽지 않지만 정부는 그래도 승산이 있다고 보고 산업부와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 범부처 선거지원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선거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당장 오는 15~17일로 예정된 WTO 일반이사회의 사무총장 후보 정견발표부터 지원팀이 가동된다.
학계 한 인사는 "영국 출신 폭스 전 장관이 출마했지만 그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찬성파로 EU의 지지를 얻기 힘들고, 아프리카 역시 미국 지지를 얻어내기 힘들고 후보 난립으로 혼전 상황이어서 표 결집이 힘들 것"이라며 "25년 외길 통상 전문가로 뛰어난 리더십,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유 본부장이 사무총장이 되기엔 판세가 전혀 불리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WTO 사무총장 선거에 관련 "다자주의가 후퇴하면서 각자도생의 시대가 됐는데 WTO라는 국제 무역기구의 위상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이냐에 대해 미국과 중국, 유럽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고 그 중 가장 중립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나라의 후보가 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유 본부장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봤다.
WTO 사무총장은 1995년 출범 후 현재까지 총 6명이 배출됐다. 이 가운데 3명은 유럽 출신, 나머지 3명은 오세아니아, 남미, 아시아에서 나왔고 이들 6명 모두 남성이다. 만약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에 당선되면 한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여성 WTO 사무총장이 된다. 한국은 2012년 박태호 당시 통상교섭본부장, 1994년 김철수 상공부 장관이 WTO 사무총장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jep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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