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보안법에 언론계도 비상.."기자 기소 시간문제"(종합)
가명·익명 처리 고심..일부 외국인 기자들 '탈 홍콩' 검토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안보처 수장에 강경파를 임명하는 등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에 박차를 가하면서 언론의 자유에 제약이 커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현지 언론들은 취재원들이 인터뷰를 사양해 가명과 익명처리를 고심해야하고, '홍콩 독립' 관련 구호를 보도하면 기소될 수 있는지 긴급자문을 받으면서 일부 구호는 별표로 처리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홍콩이 오랜기간 누려온 언론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당하는 상황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보안법 조항이 워낙 광범위해, 고무줄같이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 언론서 '홍콩 독립' 표현 자취감춰…"가명·익명 요구 커져"
홍콩 민주화 시위를 취재해온 일부 외국 프리랜서 기자들은 홍콩을 떠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홍콩에 본부를 둔 언론기관들은 이제 금지된 '홍콩 독립'과 관련한 구호를 단순히 인용하거나 보도사진을 찍어도 기소가 가능한지 긴급 자문했다.
홍콩 정부의 압박을 받아온 공영방송 RTHK는 이날 트위터에 금지된 구호와 관련한 기사를 소개하면서 '해방'(liberate)이라는 단어를 별표로 처리했다.
톰 그룬디 영자지 홍콩자유언론 편집장은 웹사이트에서 매체의 생존과 취재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조처를 하고 있다.
그는 "체포를 하거나 직접적인 검열을 하기보다는 우리의 자원을 고갈시키기 위한 법적이고, 관료주의적 테러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우려했다.
이 회사는 외국 독자들로부터 기부를 받거나 해외에 백업용 조직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룬디는 일부 취재원이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어 가명과 관련한 현재 가이드라인을 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칼럼을 익명으로 내달라는 요청은 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은 법적 우려가 있는 일부 기사에 대해 간부의 이름을 바이라인(필자이름)으로 다는 게 허용되며, 이미 암호화된 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을 쓰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룬디는 "우리는 그 외에는 새로운 윤리 규범과 국제적 기준을 지킬 것"이라며 "공공장소에서 찍은 사진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취재원을 밝히거나 기사를 쓰는 데 있어 지금까지와 다르게 행동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의 자료제공 요청에 저항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외국인 기자들도 비상…변호사들, SNS계정·대화 내용 삭제
언론인들은 채팅방에서 VPN(가상사설망) 등 네트워크 보안기능과 플랫폼 암호화를 강화하고 해외 라디오 방송국과 안전하게 인터뷰를 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고 있다.
한 언론인은 "미지의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아무도 홍콩보안법이 얼마나 신축적으로 적용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은 홍콩보안법이 언론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와 관련해 긴급히 조언을 구하고 있다. 홍콩보안법 54조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외국 뉴스통신사의 운영과 서비스 강화를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변호사들도 홍콩보안법의 시행에 대해 극도로 우려하면서 적응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홍콩 인권 변호사는 그의 동료들이 국제 언론사나 비정부기구(NGO)에 발언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조항들이 워낙 광범위해서 홍콩보안법과 관련한 피고 측 변호사에 대해 비밀유지특권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대대적인 우려가 있다"면서 "보안법 관련 범죄에 대해 누구나 경찰에 정보를 제공하게 돼 있기 때문에 변호사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VPN이나 암호화된 이메일 등 보호조처를 취하고 있고, 많은 변호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과 대화 기록을 지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라며 "변호사들은 단순히 고객을 변론하는 것만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홍콩보안법 모호해 자기검열 우려…기자 기소 시간문제"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인권·언론 단체들은 홍콩보안법 조항이 모호해 자기검열로 이어질까 우려되며, 기자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소피 리처드슨 중국사무소장은 홍콩보안법의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법은 너무 모호하고 광범위해 어떤 종류의 행동이나 발언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면서 "모든 사람이 '이게 반란죄의 요건이 되나', '이게 공모인가'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게 중국 정부의 목표"라고 지적했다.
국제 언론감시 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 스티븐 버틀러 아시아 본부장은 홍콩보안법의 모호한 특성이 자기검열을 낳을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중국 정부가 정확히 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두 전문가는 홍콩보안법으로 전 세계 180개국 중 언론의 자유가 80위인 홍콩이 177위인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홍콩 당국은 홍콩보안법이 외국인 기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밝힌 바 없다. 지금까지 홍콩의 외국인 기자들은 중국과 달리 '언론인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언론인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 기자를 엄격히 감시하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나 월스트리트저널(WSJ), 워싱턴포스트(WP) 소속 기자 10여명 이상을 추방한 적도 있다.
두 전문가는 기자가 홍콩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는 첫 사례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리처드슨 소장은 "머지않은 미래에 언론인들이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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