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온건파는 어디에?

윤호우 선임기자 입력 2020. 7. 4. 11:10 수정 2020. 7. 4.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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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6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 계단에서 미래통합당 의원에 대한 강제 상임위 배정과 상임위원장 일방 선출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가 강경파냐?”

지난 6월 29일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여야 원내대표의 가합의안을 인정하지 않자, 국회에서는 협상 결렬의 주체를 놓고 온갖 말이 오갔다. 민주당에서는 결렬의 책임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돌렸다. 통합당 안팎에서는 “다선 의원들이 가협상안을 틀었다”, “초선 의원들이 더 강경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원내의 한 핵심 관계자는 “누가 강경파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면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의원총회의 다수가 민주당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형식이든 통합당 내의 기류가 강경파 일색이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민주당이 제시한 상임위원장 7개를 받고, 상임위로 들어가자는 의원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며 29일 의총의 가합의안 결렬 결정을 평가했다. 통합당은 6월 28일 여야 원내대표의 가합의안을 단지 민주당의 제안일 뿐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통합당 소장파 제 목소리 못 내
통합당 대다수 의원이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누가 더 강경한 입장이냐는 물음에는 서로 이야기가 달랐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강경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통합당 관계자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만 강경 기류의 중심이 다선이냐, 아니면 초선이냐라는 주장은 엇갈렸다. 한 초선 의원은 “처음 배지를 단 만큼 누군들 상임위에서 멋있게 활동하고 싶지 않겠느냐”며 “하지만 이렇게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선뜻 상임위로 들어가자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제1야당인 통합당 몫 국회부의장 후보인 정진석 의원은 최근 국회 상황을 비판하며 부의장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7개 상임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던 3선급 통합당 의원들도 대부분 7개 상임위를 받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 초선 의원은 “다선 의원들이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의연한 대처를 주문하는데, 초선 의원들이 다른 이야기(상임위 복귀)를 꺼낼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 다선 의원은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간 상황에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또다시 협상장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초선 의원들이 더 강경하다’는 주장에는 ‘초선뿐만 아니라 전체 기류가 강경하다’는 해석이 깔려 있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실제로 초선 의원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상임위에 그냥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개원 당시보다는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개원 당시에는 여야 협상으로 개원하자는 온건 기류가 많았으나, 민주당의 법사위원장 선출 이후 강경 기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최근 몇 년간의 흐름을 강경파 일색 분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친박(친박근혜) 대 비박의 당내 싸움에서 초·재선 의원 소장파들의 개성 있는 발언이 사라졌다. 17·18대 국회까지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전 의원)’이라는 당내 소장파가 제 목소리를 냈지만, 이제는 그런 발언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제3차 추경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는 가운데 미래통합당 의석이 비어 있다.


한 인사는 “일부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재선·3선급 이상 온건파 의원들이 의총에서 협상이 기본이라고 설득에 나서야 하는데, 그럴 의원이 이제는 없다”면서 “오로지 원내대표에게만 짐을 떠맡기니, 원내대표가 감당할 힘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양보만 기다리는 형국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재선)이 민주당 초선 의원에게 계파에 소속돼 중진의 ‘가방모찌’가 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 기사를 읽고 소름이 돋았다”며 “우리 당에도 당 지도부에 맞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재선급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인사는 “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 때 국회 로텐더홀에는 황교안 전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앞에 서고, 다른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둘러섰다”면서 “지금은 황교안·나경원 전 대표 대신 김종인 위원장·주호영 원내대표가 앞에 선 것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친문계가 주도권 잡아
온건파 의원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법사위원장 차지-18개 상임위 위원장 선출-추경 원칙대로 통과’라는 일련의 강경 수순에서 온건파 의원들의 쓴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 의원은 “물론 통합당의 강경한 입장을 비판해야 하지만, 아무리 나쁜 협상안이라고 할지라도 여당 단독 강행안보다는 낫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협의’가 무엇보다 앞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19·20대 국회 때 민주당에서는 친문(친문재인)계 주류가 대부분 강경파로 분류됐고, 비문인 비주류가 온건파에 속했다. 하지만 지난 4월 21대 총선에서 비주류는 대부분 배지를 달지 못했다. 총선 직후 실시된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주류인 정성호 후보는 전체 163표 중 9표를 받는 데 그쳤다. 친문 주류였던 김태년 원내대표가 82표, 역시 친문직계인 전해철 후보는 72표를 받았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제 민주당에서는 ‘온건파’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면서 “‘계파’를 형성할 만큼의 의원들이 없고, 그냥 온건 성향 일부 의원이 있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진보와 보수가 양 진영으로 나뉘어 이념 낙인을 찍고 있어 대화하고 협상할 공간이 크게 줄어들었다”면서 “서로 세력이 비슷하면 대화라도 하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협상 정치’보다 ‘책임 정치’가 선호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도 ‘강(强) 대 강의 대치’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여야의 강경 대치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21대 국회 개원 협상을 보면 민주당은 2022년 대선에서 지면 안 되는 선택을 했고, 통합당은 다음 대선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덤벼들 것”이라고 말했다. 장 소장은 “양당은 21대 국회에서 20대 국회보다 더 치열한 투쟁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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