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부의 적자는 국민의 소득"..화폐는 '공짜점심'인가?
● 사상 최대 규모의 3차 추경…재정적자 증가에 논란 가열
코로나19 위기 속에 35조3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지난해 말 확정된 올해 본 예산은 512조3천억 원으로 사상 최대다. 여기에 사상 처음으로 3차례에 걸쳐 예산 규모를 늘리는 것으로, 1차와 2차, 3차를 합하면 올해 추경 규모는 59조2천억 원에 달한다.
3차 추가경정예산안의 재원은 지출 구조조정 10조1천억 원, 기금 자체 재원 1조4천억 원, 국채 발행 23조8천억 원으로, 3차 추경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올해 정부의 관리재정수지는 112조2천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이럴 경우 국가 채무는 840조2천억 원으로 늘어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5%로 상승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6월 26일 발표한 '3회 추경 예산안 분석' 자료에서 "3차 추경 실시로 관리재정수지가 악화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처해 나가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관리해나갈 수 있는 재정운용이 절실한 시점이다"라고 밝혔다. 추경에서 계획하는 일부 사업의 효과와 타당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30명은 "예산처의 본래 기능이 정부 견제라고 하지만, 작은 문제를 침소봉대하거나 '지적을 위한 지적'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례적으로 예산정책처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빠르고 강한 대책이 절실하니 예산정책처도 협조하라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코로나19발 경기침체를 맞아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유례없는 규모의 정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국민 개개인에게 생계비를 지급하는 이례적인 대책도 동반했다. 재정 상황을 걱정하지 말고 우선 국민들의 생계를 안정시키고, 경제가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선제적인 대책을 취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화폐의 비밀과 현대 화폐 이론'은 이런 각국 정부의 재정투입을 통한 경제 살리기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미주리대학교 경제학과 랜덜 레이(L. Randall Wray) 교수가 쓴 'MMT(Modern Money Theory') 개정판을 번역한 '균형재정론은 틀렸다'는 '주권 국가가 발행한 화폐는 지급불능에 빠질 수 없다'며 '부채와 인플레이션 걱정은 하지 말고,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가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MMT, "정부는 지급불능에 빠지지 않는다"
전통 경제학에서 화폐는 상품과 상품을 맞교환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교환의 매개체'로 생겨났다. 여기에 '가치를 재는 척도',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자리매김하면서 화폐는 간편하고 거래비용을 줄여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1등 공신이 됐다. 순서로 따지면 실물경제가 먼저 탄생한 뒤 이를 뒷받침 하는 화폐가 생겨난 것이다.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Money Theory)은 "화폐는 주권국가가 세금을 걷는 수단으로 발행한 '계산화폐(Money of Account)'"라고 정의한다. 랜덜 레이는 '주권 정부가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권력의 하나는 조세(벌금과 수수료 등 정부에 지불하는 항목을 포함)를 부과하고 징수할 수 있는 권위이다. 조세는 그 나라의 계산화폐로 부과된다'고 주장한다. 화폐는 조세를 부과하고 징수하는 계산단위로 정부가 세금을 걷기 위해 미리 지급하는 채무증서라는 것이다.
MMT는 '조세가 화폐를 추동한다'며 '국가가 조세를 부과하고 징수할 수 있는 권위를 갖는 한 그 화폐는 지급불능에 빠질 수 없다'고 말한다. 화폐를 많이 발행하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지만, '통화량이 너무 많아지면 한 달에 50%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세금을 올리거나 지출을 줄여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이나 짐바브웨, 1차 세계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 등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통화량이 늘어 나서가 아니라 사회 정치적인 대혼란, 생산능력의 붕괴, 약한 정부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랜덜 레이가 설파하는 현대화폐이론(MMT)은 '재정적자는 화폐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표현한다. 정부의 재정적자는 민간부문의 소득이므로 정부가 먼저 지출을 하고 민간부문이 이를 바탕으로 소득을 창출해야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한 국가의 경제가 정부와 민간부분, 대외부문으로 나눠지고, 이 세 부문의 합은 제로(0)가 되는 회계 항등식에 근거하고 있다[국내총생산(Y) = 민간소비(C) + 기업투자(I) + 정부지출(G) + 순수출(NX)]. 정부가 흑자를 내면 민간부문과 대외부문의 합은 적자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MMT는 "'정부는 세금을 얻어야만 지출을 할 수 있다', '은행은 예금이 있어야만 대출을 할 수 있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세나 예금의 수취는 모두 부채의 상환을 의미하는 것이고, 부채의 상환이 있으려면 부채가 먼저 창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부채의 창조'가 먼저이고 '상환'은 나중이라는 말한다. '먼저 죄를 짓고 나야, 속죄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따라서 정부가 부채비율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부채비율이라는 제약을 없애기 위해 정부가 예산 규모를 책정해 의회의 승인을 받고, 그 예산을 토대로 채권을 발행해 재정을 집행하는 현재의 재정지출 방식도 바꿀 것을 제안한다.
우선, 정부가 보증서를 발행해 중앙은행에 주고, 이 보증서를 바탕으로 통화를 창출하되 정부의 보증은 부채에서 제외하자고 제안한다. 둘째 방법으로는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는 화폐 발행권을 정부에 넘겨줘 정부가 고액권을 발행하고, 이 고액권으로 재정을 집행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는 부채비율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국가부채 비율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중앙은행이 예금 없이 통화를 창출할 수 있으니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랜덜 레이는 '대부분 개발도상국들은 주권 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국내 통화로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살 여력이 있음을 뜻한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에는 일자리가 없는 노동도 포함된다'고 쓰고 있다. 또 정부는 '최종 고용의 책임자'로서 국민들이 모두 원하는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완전고용에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완전고용 달성에는 수출보다는 수입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수출은 국내 근로자들이 생산한 재화를 외국인들이 소비한다는 점에서 비용이고, 수입은 편익'이라는 것이다.
랜덜 레이는 "정부가 돈이 떨어지는 상황은 있을 수가 없다. 정부는 우리 모두를 돌볼 재정적 여력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를 굳건히 하여 정치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현대의 통화시스템은 정말로 놀라운 창조물이다. 이는 개인들에게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정의로운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정부가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해 준다"고 글을 맺고 있다.
● 엔터키만 치면 통화 창출 가능…화폐는 '공짜 점심'인가?
현대화폐이론(MMT)에서 랜덜 레이는 1971년 8월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 금본위제도가 폐지된 이후에 나타난 법정화폐(Fiat Money) 제도하에서 정부는 지급불능에 빠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의 엔터키를 쳐서 막대한 통화를 창출하는 것을 죄악시하고 있지만, "그저 엔터키를 때려서 '공짜 점심'을 얻는 것은 모든 주권 정부들이 항상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권 정부는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돈을 찍어 내면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현대화폐이론의 주장은 정부가 집행하는 재정정책(Fiscal Policy)과 중앙은행이 집행하는 통화정책(Monetary Policy)을 혼동하고, 재정정책우위(Fiscal Dominance)를 당연시하는 것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통화 공급을 늘리고 줄이는 것은 통화정책으로, 정부가 수행하는 재정정책과 분리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는 끊임없이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돼 있고, 중앙은행이 독립된 통화정책으로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지 않으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화폐가치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경제 성장률은 추락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화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나타나지 않도록 화폐를 찍어내 경기부양에 나서자는 MMT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돈을 마구 찍어내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인플레이션과 환율상승을 유발할 뿐 개방경제는 물론 폐쇄경제에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함준호 교수는 "세금을 투입했든 부채를 투입했든 쓴 돈은 다시 갚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돈이 제대로 쓰여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실물경제가 성장해 투입한 돈을 되갚을 수 있는가이다. 실물경제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화폐가 해결할 수는 없다. 화폐는 경제활동의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위기 시 안정 수단이다.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민간의 투자라는 게 주류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장기 불황 문제를 다룬 리차드 쿠의 책 '대침체의 교훈(Lessons from Japan's Great Recession)'을 번역한 김석중 현대해상화재 자문은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라는 금융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맞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재정을 지출하는 가이다. 소비성 지출, 단기 일자리 창출보다는 성장동력을 확충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입해야 한다. 도로나 항만 등 전통적인 인프라보다는 교육인프라나, 수출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해외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이 유례없는 규모의 돈을 투입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각국의 봉쇄조치 완화 움직임과 맞물려 코로나19는 다시 확산하고, 세계경제에 2차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막대한 규모로 투입되는 돈이 우량기업의 회사채 매입에도 사용되고, 투기적인 자산시장에 유입되는 등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차별적인 지원이 좀비 기업을 양산하는 만큼 선별적인 지원과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가 경기 진작 효과는 적었던 반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을 부풀려 부의 양극화를 심화했다는 점에서 현대화폐이론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재정 투입과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는 나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한 번 생긴 부채는 대차대조표에서 지울 수 없고 누군가 갚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 랜덜 레이가 현대화폐론에서 주장하듯 단기적으로는 '균형재정론은 틀렸다'고 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균형재정을 지향'해야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들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철 기자yc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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