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기울어진 운동장' 사모펀드, 전수조사로 해결되나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후보자 시절부터 밝혀온 소신이 있습니다. 사모펀드 규제는 완화돼야 한다는 겁니다. 근거는 명료합니다. 시중의 유동성이, 별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부동산에 쏠리기보다 유망한 벤처기업 같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사모펀드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른바 생산적 금융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23일, 은 위원장은 취임 9개월 만에 이 사모펀드를 전수조사 하겠다고 말합니다. 라임자산운용에 이어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까지 불거진 탓입니다. 환매 중단 규모는 각각 1조 6천700억 원과 1천억여 원. 규모도 크지만 단순히 불완전 판매 수준을 넘어, 운용 과정에서 사기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작용했습니다. 때문에 이런 곳들이 더 없는지, 이제라도 금융당국이 하나하나 들춰보겠다고 얘기한 겁니다.
맞는 해법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가 불거진 경위를 다시 살펴봅니다. 라임 사태는 자산운용사가 사전 설명과 달리 부실 자산에 투자한 혐의가 포착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 숨기고 팔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옵티머스자산운용도 비슷합니다. 투자자들에게는 안정적인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설명해놓고, 위험 자산에 투자한 정황들이 발견됐습니다. 한마디로 상품을 만든 운용사들이 고객들을 속였고, 심한 경우 판매사가 공모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운용사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는 이유입니다. 환매가 중단된 라임펀드 판매 수수료 내역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신한금융투자와 우리은행 등 판매사 20곳이 라임펀드를 판 대가로 받아 챙긴 수수료는 514억 원에 달합니다. 조 단위 돈이 묶이고 손실이 나도 운용사와 판매사는 제 몫을 떼어갑니다. 반대로 수익률이 크게 오르면, 운용사는 약정된 추가 인센티브를 더 받아 갑니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이른바 '대박'이 나면 큰 수익을 챙기고, 다 날려도 손해 볼 게 없습니다. 투자자를 속여가면서까지 위험한 투자를 할 유인이 여기서 생깁니다. 걸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사모펀드 운용 내용은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습니다. 상대가 금융당국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걸리기도 어려운 구조입니다. 판매사 이해관계는 온전히 판매액에 달렸습니다. 무슨 상품이든 일단 좋게 포장해 팔고 보자는, 불완전 판매로 이어질 유인이 큽니다. 일이 터지면 '나도 운용사에 속았다'고 책임을 돌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례들을 보면 정말인지 거짓인지 밝히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유인 구조를 깨지 않으면 또 다른 라임, 옵티머스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사모펀드 시장에선 투자자에 비해 운용사가 월등한 정보력을 갖고 있습니다. 투자자 손실이 운용사 손실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기울어진 시장입니다.
오늘(1일) 금융감독원이 라임 무역금융펀드 계약 4건에 대해 처음으로 취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계약 취소, 말 그대로 계약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전액 반환 결정입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입니다. 하지만 지난합니다. 일이 터질 때마다 이런 식의 대응은 어렵습니다. 정책적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두 차례의 사모펀드 개선안에는 이런 유인 구조를 깰 만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모두 다 조사해야 한다"는 말 안에 이미 사모펀드 전반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이번 주 중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조사보다는 더 강력한 정책 대응을 내놓을 때가 된 듯합니다. 한정된 인력으로 1만여 개의 사모펀드를 충실히 검사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문제는 미뤄두더라도 그렇습니다.
박찬근 기자ge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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