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반대에 '22년만의 대타협' 무산.."큰 결실이었는데"
'강경책 접고' 노사정 힘 모을 위기 대책 명시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는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한국 사회가 배출해낸 '완전한 사회적 합의'가 될 뻔 했다.
노사 갈등이 뿌리깊은 우리나라에서, 노사정 대화에서 늘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에 '함께했다'는 의미가 깊었다.
그러나 합의 타결은 민주노총 내부 갈등에 막혀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에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노사정이 발표하려 했던 합의문은 Δ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Δ상병수당 도입 논의 개시 Δ파견·용역 등 취약 노동자에 대한 고용유지 지원 등 노사정이 코로나19 시기에 뜻을 모을 수 있는 주요 대책들을 담고 있었다.
1일 무산 위기에 놓인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 전문을 보면,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현실적인 진단과 함께 노사정이 위기 극복을 위해 각자 추진해야 할 과업들이 담겼다.
총 10쪽짜리 합의문은 Δ고용유지를 위한 정부 역할 및 노사 협력 Δ기업 살리기 Δ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 확충 Δ국가 방역체계 및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 등 크게 5장으로 나뉜다.
첫장 고용유지의 경우, 정부는 휴업수당의 최대 90%를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지원비율 상향 기간을 기존 6월30일에서 3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고용유지지원금 지원비율이 기존 75% 수준으로 복귀하는 경우, 자금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실업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노사에 모두 도움이 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미끼로 상호 양보를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해당 내용이 고용유지 대책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정부는 또한 특별고용지원업종에 한해 고용유지지원금 지급기간을 추가 60일 한시 연장하는 방안도 약속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추가 지정을 적극 검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 '파견·용역 노동자'에 '협력사' 지원까지 수용
정부는 또한 "파견·용역 및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의 고용유지와 생계안정을 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을 적극 활용토록 지도하고, 노사와 논의를 거쳐 필요한 지원방안을 마련한다"는 민주노총 측 요구를 수용했다.
그간 고용유지지원금 등 정부의 고용유지 대책은 정규직과 같은 고용상태가 비교적 안정된 계층에 집중됐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노동계는 이러한 맹점 보완을 요구했고, 정부가 이를 추상적으로나마 수용한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기업일지라도 노사가 근로단축, 휴업 대신 고용유지에 합의한다면 임금감소분 50%를 최대 6개월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노동계가 그간 강하게 요구해 온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 조건 중 하나인 고용규모 유지와 이를 위한 노사 노력사항, 사내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을 위한 노력사항 등 준수"는 합의문 문구로 수용됐다. 정부는 앞으로 이러한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조건의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시정하기로 했다.
기업 살리기와 관련해선 "노사정은 정부의 재정·금융 상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문구가 적혔다. 정부가 적극적인 거시정책 운용으로 업종·분야 별 유동성 위기 시 즉각 자금 공급에 나서겠다는 약속이다.
여기에 산업 생태계 보전을 위해 제조업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까지 담았다.
◇'전국민 고보' 한뜻 모았는데…'특고' 문제 걸림돌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이 노사 대표단체의 동의를 얻었다는 의미도 클 뻔 했다.
합의문은 "정부는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 연말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수립한다"며 "적용대상 단계적 확대를 위해 소득정보 현행화, 유관기관 정보공유 강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중 문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부분에서 불거졌다.
노사정은 "특고 고용보험 가입을 위한 정부 입법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특고의 특성을 고려하며 노사 및 당사자 의견을 수렴한다"고 적었는데, 노동계 일각에선 '입법 과정서 특고의 특성을 고려한다'는 문구를 굳이 포함시킨 경영계 저의를 의심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에 대한 일반회계 지원 확대를 약속하는 등 유의미한 내용은 여전했다.
특히 "사회적 논의를 거쳐 보험료 인상 검토", "모성보호사업의 일반회계 지원"을 비롯해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한 구체 방안을 적시했단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국가 방역체계와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에 관해서도 "감염병 확산이 쉬운 밀집‧취약사업장에 대한 강화된 방역지침 마련", "보건의료 종사자의 일상복귀 지원 등 보호대책 마련" 등 코로나19 시국에 빠져선 안 될 대책이 포함됐다.
◇상병수당·경사노위도 '발목'…아쉬움만 남은 소신
그러나 노동계 일부에서는 '상병수당 도입'이 적극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데 불만을 제기했다.
합의문은 "노사정은 업무와 연관이 없는 질병 등으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손실로 인한 생계 불안정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재정 여건 등을 종합 고려해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요컨대 상병수당 도입 '논의'를 추진한다는 내용인데, 이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불확실한 사항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합의문 이행을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추진한다는 내용도 문제가 됐다. 경사노위는 공식 노사정 대화 통로지만, 민주노총은 위원회 발족 때부터 불참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참여에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일부 산별노조와 정파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를 이유로 대의원 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지속 부결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문은 기본적으로 노사가 서로 한 발씩 물러서면서 낳은 결과물이다.
경영계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노동계가 임금을 동결·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동계는 해고금지·총고용유지 등 강력한 고용유지를 요구했으나 양측 요구는 모두 합의문에 적히지 않았다.
대신 '경영계가 고용유지에 최대한 노력하고, 노동계는 이에 적극 협력한다'는 미지근한 문구가 담겼다. 모두가 각자의 강경한 요구를 접는 대신, 어렵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았던 셈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합의문의 이러한 점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이에 '위원장 직을 걸고' 직권 서명을 추진했으나 결론적으로 조합원 설득에 실패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이번 사회적 대화 최종안은 의미있다"며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처음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취지에 맞게 주요한 내용이 만들어졌다. 난 그것을 살려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딛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 판단이고 소신"이라고 말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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