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취타》가 쏘아올린 작은 공, 국악의 재발견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0. 6. 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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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호흡하기 시작한 국악..대중적 장르들과 크로스오버도 활발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K팝이 글로벌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국악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국악의 변신은 '과연 그것이 국악이 맞나'라고 물어봐야 할 정도로 놀랍다. 이제는 "K팝이라 불러 달라"는 국악의 변신은 과연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걸까.

'Agust D'라는 이름으로 방탄소년단 슈가가 낸 《대취타》의 뮤직비디오는 한 편의 퓨전사극을 연상시킨다. 그 위로 울려 퍼지는 "대취타! 대취타! 자 울려라 대취타!"라는 반복적인 가사. 머릿속에 콕콕 박히는 폭발적인 이 랩을 우리네 전통음악 대취타 연주가 감싸안는다.

대취타는 우리네 군악의 한 가지로 왕이나 신하가 행차할 때 또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연주하던 행진곡이다. 하지만 《대취타》라는 곡은 그 뮤직비디오가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폭군에 의해 이제 죽을 위기에 처한 천민이 오히려 상황을 뒤집는 혁명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묶인 채 끌려 나와 망나니의 칼에 죽을 것처럼 보이던 천민은 목이 날아가는 대신 묶였던 줄이 풀리고 망나니로부터 받은 총으로 폭군을 쏜다. 왕의 승리가 아닌 민중의 승리로서 대취타라는 군악을 울려 퍼지게 한다는 메시지가 흥미롭다.

'Agust D'라는 이름으로 방탄소년단 슈가가 낸 《대취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bts diary 홈페이지

해외 팝 차트에서 울려 퍼지는 국악

놀라운 건 지난 5월22일 발표한 이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에 오르고 영국 오피셜 차트에도 올랐다는 사실이다. 방탄소년단의 팬덤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뜻도 되지만, 우리의 국악이 글로벌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과 확장 가능성의 발견은 국내 국악계도 반색하게 만들었다. 대취타의 음원을 제공한 국립국악원에는 순식간에 대취타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4년 전 올라왔던 오리지널 풀버전은 몇백에 머무르던 조회 수가 17만 뷰를 기록했다. 국립국악원은 부랴부랴 영어 자막을 넣었다.

방탄소년단이 국악을 활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발표한 《Idol》에는 '덩기덕 쿵더러러러' 같은 굿거리장단과 '얼쑤' 같은 추임새가 들어갔다. 《Idol》의 뮤직비디오에도 개량한복을 입고 봉산탈춤 특유의 어깨춤을 추는 방탄소년단의 모습이 등장해 해외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은 바 있다.

사실 국내 가요계에서 최정상에 오른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국악을 모티브로 활용한 음악을 발표했다. 가왕 조용필이 그랬고, 작은 거인 김수철이 그랬다. 가깝게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에 태평소 가락을 넣기도 했고, 지드래곤도 《늴리리야》 같은 곡에 국악의 흥겨운 추임새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만큼 국악은 K팝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어떤 면에서는 K팝 특유의 흥과 한이 국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서적 밑바탕을 제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네 대중문화에서 국악은 가요의 본류 중 하나였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들 중 상당수가 민요를 불렀다. 국보급 민요가수로 불린 김세레나가 대표적이다. 주말 시간대에 국악 방송이 편성될 정도로 국악은 인기가 있었고 조상현 명창은 당대의 스타였다. 코미디언 김병조가 "지구를 떠나거라~" 같은 유행어에 국악 창법을 더해 넣을 정도로 국악은 대중들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국악계의 완고한 보수성은 시대의 변화에 국악이 적응하지 못한 이유가 됐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 들어 국악계에서도 적극적으로 국악의 무한 변신을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재즈와 판소리가 만나고, 민요가 얼터너티브 팝처럼 재해석되고 있는 국악에 대중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경기민요 전수자 이희문은 대표적인 국악 크로스오버를 이끄는 인물이다. 그가 만들었던 씽씽밴드는 2017년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의 간판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s)》에서 민요 메들리를 펑키한 리듬에 맞춰 부름으로써 현지의 충격적인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그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500만 뷰의 조회 수를 넘길 정도로 글로벌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희문이 일찍이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만든 국악 크로스오버 《한국남자》 역시 최근 2집이 발표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스스로를 국악이라 부르지 않고 얼터너티브 팝 밴드라 부르는 이날치 역시 주목할 만한 국악의 변신이 아닐 수 없다. 정규 1집으로 낸 수궁가에서의 《Tiger is coming(범 내려온다)》 같은 곡은 민요의 원곡이 베이스, 드럼과 만나면서 세련된 느낌으로 재탄생했다. 우리는 민요가락으로 들리지만 외국인이 듣는다면 독특한 리듬의 춤곡처럼 들릴 수 있는 그런 곡이다.

크로스오버, 얼터너티브…국악의 무한 변신

JTBC 《팬텀싱어》에서도 국악은 단연 도드라진다. 첫 등장 때 피아노 반주에 얹어진 《사랑가》를 불러 이목을 집중시킨 고영열이 바로 그 진원지다. 그는 이후 탁월한 프로듀싱 능력을 발휘해 쿠바, 그리스, 스페인 같은 월드뮤직에 국악 특유의 창법과 정서를 더해 넣어 독특한 크로스오버를 선보였다. 국악이 가진 한과 흥의 정서가 낯선 이국땅의 민속음악들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로써 《팬텀싱어》는 'K크로스오버'라는 지칭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악, 뮤지컬, 팝을 섞는 크로스오버에 국악이 더해지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그런데 고영열은 본래부터 국악 크로스오버를 시도해 왔던 국악인이다. 그가 2018년에 발표한 앨범 '상사곡'이나, 2016년 두 번째 달이라는 크로스오버 퓨전밴드와 함께 낸 '판소리 춘향가'는 국악 크로스오버에서는 이미 유명해진 앨범이다. 절제된 재즈풍 연주 위에 때론 폭풍처럼 때론 가랑비처럼 밀고 당기며 쏟아내는 고영열의 노래는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조차 매료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방탄소년단 같은 글로벌 아이돌이 국악을 모티브로 K팝을 알리고, 국악 본연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팝이나 재즈 같은 대중적 장르들과 크로스오버되고 있는 국악은 이제 더 이상 과거로 박제되는 걸 거부하고 있다. 결국 고전도 현재에 맞게 재해석되거나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야 명맥이 이어질 수 있다. 또 그렇게 옷을 갈아입는다고 본모습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걸 국악계도 공감하고 있는 눈치다.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K팝에 의해 국악의 존재감 역시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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