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심장 쐈다던 김재규..10·26, 반역인가 혁명인가
<앵커>
10·26 사건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사형당한 지 올해로 40년이 됐습니다. 유족들은 10·26 사건은 반역이 아닌 혁명이었다며 최근 재심을 청구했는데, 재심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정국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김재규/당시 중앙정보부장 : 각하, 대국적으로 좀 정치하십시오.]
김재규가 쏜 권총 두 발을 맞은 박 전 대통령은 숨을 거뒀습니다.
[전두환/당시 합동수사본부장 (1979년 10월 28일) :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허욕이 빚은 내란 목적의 살인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이 이끄는 합동수사본부는 이렇게 결론짓고 범행 직후 내려진 비상계엄령에 따라서 김재규를 군법회의에 넘겼습니다.
[김재규/법정 진술 :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혁명을 한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계시는 한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각하가 계시는 한 유신 체제는 계속됩니다.]
군사 법정에서 내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다고 거듭 진술했지만 김재규는 1심과 2심에서 내란 목적 살인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곧 이은 대법원 확정판결 뒤 이례적으로 3일 만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강신옥/당시 김재규 변호인 : 완전히 억울한 재판을 받은 거지. 군법회의 받을 이유가 없는데 민간 재판을 받아야 되는데, 비상 군법회의를 통해서 재판받았고….]
당시 대법원은 내란죄 여부를 놓고 8대 6으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신군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법복을 벗기도 했습니다.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단순 살인을 내란죄로 과장하려고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옵니다.
[조영선/재심청구 변호사 : 보안 사령관인 당시 전두환, 기획실장이었던 이학봉이 계속 왔다 갔다, 거기(법정) 뒷방에 와서 격려하고 지침을 내렸다는 증언들이 있거든요.]
숨죽이며 살아오던 유족들이 40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조영선/재심청구 변호사 : 내란 목적을 무죄로 하려는 것이거든요. 살인죄를 무죄로 한다는 것은 아니고요.]
민간인에 대한 군사 재판과 신군부의 재판 개입 등이 문제였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상희/건국대 법학과 교수 : 지금의 법리로 보면 잘못 적용된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결론을 정해놓고 결론에 맞춰서 조합된 이런 느낌들을 강하게 주는 사건들이거든요.]
당시 수사와 재판 과정 모두 다시 봐야 할 부분이 많다며 일부 전문가들은 재심 개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재심에 따라 김재규와 10·26 사건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VJ : 윤 택)
이정국 기자jungkook@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햄버거병' 모른채 유치원 보낸 엄마들 "문자에는.."
- "멀쩡했던 아이 신장 투석 얘기에 그저 눈물만 나죠"
- "더 배웠다고 임금 2배 불공정" 의원 글에 달린 댓글
- [영상] 경찰차 유리 마구 깨부순 뒤 "경찰은 멍청해"
- [영상] 죽은 새끼 놓지 못한 어미 돌고래 '업고 빙빙'
- 몰래 버리고 간 폐기물 1,500톤..아직도 불타고 있다
- 새벽 3시 날아온 문자, 내 계좌서 850만 원이 빠져나갔다
- '미성년 성폭행 혐의' 왕기춘, 첫 공판 출석해 한 말
- 정부가 매달 '공짜 월급'을 준다?
- 스테파니와 열애설..'23세 연상' 메이저리거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