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보도연맹 배상 시도, 무엇이 발목 잡았나 보니

박원경 기자 입력 2020. 6. 24. 20:57 수정 2020. 6. 2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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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런데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서는 왜 특별법을 통한 배상이나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을까요? 긴 세월 동안 관련 논의가 아예 없던 건 아닙니다.   

사실은 코너 박원경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6·25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에 대해 배상이나 보상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지난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이렇게 권고했지만 국회는 법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과거 국회에서 배상이나 보상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6월 21일, 6·25 전쟁 전후 양민학살의 가해자 조사와 피해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5·16 쿠데타로 이 논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진상규명을 주장한 유족 중 일부는 북한에 동조했다는 등의 이유로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보도연맹이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한참 뒤인 지난 2009년 이후에야 배상과 보상을 포함한 14건의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재정 부담 우려 등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특히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에 정부의 배상 의무를 둔 조항이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기재부와 현 야당의 반대로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제주 4·3 추념식에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과 보상 실현 노력을 약속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 학살사건이라지만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도 없는 상황.

대부분 일흔을 넘긴 유족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영상편집 : 원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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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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