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아파트 관리비 꼼짝마"..회계 투명한 '전자입찰' 확산

송진식 기자 2020. 6. 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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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집행사례 '수두룩'..입주민들 관심 늘자 잇따라 도입
시행 4년 입찰률 16.5% 그쳐..수의계약률 높아 분쟁 소지 여전

[경향신문]

지역에 따라 아파트 거주 비율이 많게는 80%에 달하는 국내 상황에서 입주민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아파트 관리비 문제다. 21일 한국감정원이 추산한 연간 국내 아파트 관리비 지출 규모는 무려 20조원. 이에 비해 관리비 지출의 회계투명성은 여전히 낙후돼있다. 경기도가 2018년 10~11월 5000만원 이상 관리비로 공사계약을 맺거나 분쟁이 발생한 49개 단지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47개 단지에서 282건의 부적절한 집행사례가 적발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관리비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관리비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관리비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권장하는 방법은 전자입찰 방식을 통해 관리비를 지출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감정원이 운영하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아파트)’, 조달청의 전자입찰시스템인 ‘나라장터’ 등 총 4곳(민간운영 2곳 포함)에서 관리비에 대한 전자입찰제를 운영 중이다. 관리비 의혹이 제기되고 있거나 분쟁이 끊이지 않는 아파트에 거주 중인 입주민이라면 전자입찰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 16.5%에 그치는 전자입찰

지난해 기준 연간 20조원 규모의 관리비 중 개별 가구가 내는 각종 공과금, 단지 차원에서 납부하는 세금 등을 제외한 실제 ‘공동주택관리비용’은 6조6605억원이다. 관리비로 발주된 각종 공사 등의 낙찰금액을 합산한 결과다.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의 관리비 사용내역 공개가 의무화되면서 이 비용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추세에 있다. 2015년 2조7714억원에서 2017년 3조9456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6조원을 넘어섰다. 앞으로도 3시 신도시 건설 등 굵직한 개발사업이 예정돼있어 관리비 규모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300가구 이상 거주하는 단지, 150가구 이상이면서 승강기가 있거나 중앙·지역난방을 하는 단지, 150가구 이상의 주상복합단지 등은 K아파트를 통해 의무적으로 관리비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이 같은 의무관리대상 주택이 아니더라도 공동주택 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을 경우 K아파트에 관리비 사용 내역을 등록해 공개할 수 있다.

관리비의 온라인 공개는 사용 내역을 입주민들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리비 회계의 투명성을 높인 조치로 평가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K아파트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6조6605억원의 관리비 중 전자입찰을 통한 지출은 1조997억원으로 전체의 16.51%에 그쳤다. 대부분의 관리비는 전자입찰을 통하지 않은 적격심사제(3조2869억원, 49.35%)나 수의계약(2조2739억원, 34.14%)을 통해 집행됐다. 비(非)전자입찰에 의한 방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적격심사제는 관리비로 공사를 발주해 사업자를 선정할 때 사업목적에 맞게 항목별 평가기준을 만들고 최고점을 받은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공정한 심사와 투명한 절차를 거쳐 사업자를 선정한다면 가장 합리적인 제도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관리감독이 어려워 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는 게 문제다. 심사에 참여한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 등을 놓고 입주민들의 비리의혹 제기 등 민원이 빈번하고, 각종 소송 문제가 얽히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통상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적격심사는 7인 이상이 평가를 하는데 항목별 배점을 잘못 계산해 엉뚱한 낙찰자가 선정되거나, 연필로 점수를 적은 뒤 지우고 조작하는 등의 사례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일부 단지에서는 심사과정 감시를 위해 CCTV를 설치해보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특정 사업자를 지정해 계약을 맺는 수의계약의 경우 발주할 공사를 수행할 업체가 한 곳밖에 없는 상황 또는 일정 수준의 공사품질을 담보해야 하는 상황 등에 주로 이용된다.

■ ‘적격심사제’ 투명하게 개선

정부는 관리비 지출 시 전자입찰 이용을 독려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비전자입찰이 많은 점을 감안해 가장 비중이 높은 적격심사제를 온라인을 통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K아파트 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적격심사 과정에서 평가위원별로 어떤 업체에 몇 점을 줬는지, 입찰한 업체들이 각 몇 점을 받았는지 등을 입주민들이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온라인 심사를 한다 해서 비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기록’이 남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적격심사제를 포함해 K아파트 시스템 운영이 가능하도록 시스템 개선 예산으로 올해 5억원가량을 배정한 상태다.

관리비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차원에서 지출내역에 대한 일명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도 추진된다. 현재 아파트 관리비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 통상 무작위 방식으로 아파트 단지를 선정해 조사하는 기획조사로 관리감독이 이뤄진다. 지자체가 변호사·회계사·주택관리사 등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팀을 꾸린 뒤 현장에 방문해 조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K아파트에 등록된 아파트단지가 1만7000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무작위 선정 방식의 기획조사가 효율성이 떨어지고 비리 예방효과도 적다는 지적이 많다.

관리비 조기경보시스템은 K아파트 등을 통해 전국 아파트단지의 관리비 내역을 총취합한 뒤 부정사용 가능성이 있는 단지를 골라내 해당 지자체로 통보하는 방식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예컨대 ㄱ아파트의 장기수선충당금이 지난해엔 1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별다른 사용 내역 없이 5억원으로 줄어있다면 비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단지로 추정돼 지자체에 조사를 요청하는 방식의 운영도 가능하다.

제도 개선과 함께 가장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입주민들의 ‘의지’다. K아파트의 전자입찰만 해도 직접적으로 관리비 지출에 관여하는 일부 입주민이나 관리사무소를 제외하면 입주민 대부분이 존재 사실을 모르는 게 현실이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전자입찰을 통한 관리비 지출이 늘어날수록 비리발생 가능성이 낮아지고, 회계 투명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며 “평소 관리비 문제로 다툼이 있거나 의혹을 가지고 있는 단지가 있다면 입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전자입찰 제도를 활용해 관리비 지출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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