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상식을 뒤집어라"..힘 실리는 '재정 확대' 목소리
[경향신문]

저성장 국면서 적극적 양적완화 필요”…증세 주장까지 ‘솔솔’
“국가채무비율 50% 넘으면 문제…미래세대에 빚 부담” 반론도
위기는 상식을 파괴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정부가 3차례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국가채무는 1년 사이 100조원가량 늘어난다. 이렇게 불어난 재정이 다음 세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와 재정이 위기를 막는 방파제나 재건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선다. 과연 재정은 어디까지, 어떻게 확대가 가능할까.
■작고 가벼운 한국 정부, 이대로 괜찮나

지금의 재정을 먼저 들여다보면,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 정부에 비해 몸집이 작고 가볍다. 올해 정부지출은 547조1000억원(3차 추경 포함)이다. 추경 이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은 3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0.6%)보다 낮다.
문제는 앞날이다. 합계출산율(2019년 0.92명)은 세계 최저이고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르다. 재정 규모가 급속하게 불어나고 있으며, 이를 지탱하기에는 인구구조가 불안정하다는 것이 재정당국의 관점이다. 이에 따라 2015년 기획재정부는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62.4%로 맞춰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빚은 갚는 것 아닌 녹이는 것’ 발상 필요

코로나19 국면에서 지출 증가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역할과 재정에 대한 상식이 달라질 것”이라며 “과거의 상식에 얽매여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고용안정’이 정부 역할로 편입된 것이 단적이다. 그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이 100%가 돼도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정부의 2060년 목표치인 ‘국가채무비율 60%’란 기준도 1995년 유럽 국가들의 평균(59%)에 맞춘 기준에 불과하다. 부채 규모보다 어디에 지출할지가 관건인 것이다.
‘작고 가벼운 정부’에 대한 비판도 있다. 무거운 부담을 민간에 떠넘긴 결과라는 것이다. 복지 지출은 보건과 고용을 포함해 2023년 230조원(GDP의 7.5%)까지 늘리는 게 정부 계획인데, OECD의 2018년 평균(GDP 대비 20.1%) 수준보다 100조원 이상 부족하다. 저성장도 이어지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3년 동안 매년 50조원을 교육과 기후대응, 산업혁신에 써서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대응까지 필요해졌다. 종합하면 지금보다 150조원 이상을 늘려 연간 700조원대 지출이 필요하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지출 규모를 100조원 이상 늘리기 위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빚’은 ‘갚는 것’이 아니라 ‘녹이는 것’이라는 발상도 진지하게 논의돼왔다. 성장률이 국채 이자율보다 높으면 빚내서 투자하는 것이 이익이다. 물가가 상승하면 상환 부담도 줄어든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로런스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 등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역사적으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의 채무비율이 줄어든 것은 빚을 갚아서가 아니라 GDP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국채 이자율이 성장률을 넘어서지 않는 수준까지 국채 발행이 가능하며,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해 이자율을 조절할 수 있다. 양적완화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빚을 녹일 수도 있다. 오랜 저성장으로 디플레이션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양적완화에 대한 부담은 덜하다. 다만 원화가치가 하락할 위험이 있다.
최근 경제학계에서 주목받는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MMT)은 더 적극적이다. ‘빚은 부담’이란 명제를 거부한다. 연간 150조원이 더 필요하다면 전액 국채를 발행해 마련하면 된다. MMT에 따르면 민간은행은 국채를 통해 안정적 수익을 얻고, 이를 담보로 각종 금융상품을 사고팔며 신용을 창출한다. 따라서 은행은 정부가 빚을 갚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외채 아닌 자국 화폐로 진 빚으로 정부가 부도날 일은 없다. 전용복 경성대 교수는 “정부 부채는 미래세대의 부담이 아닌 ‘연대의 매개’ ”라며 “정부는 돈이 필요하면 찍어서 쓰면 되고 재정건전성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지출 증가를 걱정하는 쪽에서는 한국 정부는 ‘가벼운 몸집’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이다. 위기 때마다 환율이 계속 급등하며 국내 경제를 흔드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소규모 개방경제국가”라며 “정부와 한은의 부채가 늘어나 장기적으로 정책 역량에 제한이 생기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평가를 의식해야 하며, 이를 감안해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어서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옥 교수는 “재정을 확대하더라도 엄격한 재정준칙하에 공기업 등의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하며, 기축통화국이 아니니 발권력 동원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빚’이 투자라는 개념에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반대 의견을 던졌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이윤율(자본 총액에 대한 잉여 가치의 비율)이 저하되는 상황에서 부채를 늘린다고 성장률이 기대만큼 상승하기 어렵다. 빚은 결국 미래세대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양적완화는 기대만큼 성장이나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지 못했고 자산가격 폭등만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연구원에 따르면 부담을 세대·계급별로 편중되게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과제이다.
기재부는 통일에 대비해 GDP의 10% 수준(약 190조원)의 여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독일의 국가채무비율이 1991년 39%에서 10년 만에 57.9%로 증가한 것을 예로 꼽는다.
■코로나 이후 재정은
정부재정이 커지는 흐름은 당분간 피할 수 없다. IMF는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선진국 국가채무비율이 17.2%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은 재정준칙 일시 해제를 합의했다. 빚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게 더 위험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화는 무너져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상식을 바꿔놓을 발상이 나오기 좋은 환경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코로나 이후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면 플랜B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다양한 상상력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박광연·박상영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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