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월권' 논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어떤 법이 어떻게 바뀌었나?

계현우 2020. 6. 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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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가 개원 열흘이 지나도록 원 구성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장은 뽑았으니 이제 상임위별로 의원을 배분하고 상임위원장을 정해야 하는데 아직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습니다.

쟁점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누가 맡느냐입니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서로 이 자리를 자기 당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힘겨루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중재로 오늘(11일)도 협상을 벌였지만,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 법사위의 막강한 권한 '체계·자구 심사'

법사위, 정확히 법사위 위원장 자리가 뭐길래 이렇게 원 구성이 파행을 빚을 정도일까요? 핵심은 법사위가 가지고 있는 '체계·자구 심사' 권한입니다. 법사위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체계와 자구 심사라는 명목으로 심사하는데 법안은 이 심사를 통과해야 본회의로 넘어가 투표에 부쳐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법사위를 보면 이 권한을 남용해 정쟁의 도구로 삼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관행적으로 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맡아 야당이 여당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돼 왔습니다.

20대 국회의 경우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에 막혀 본회의에 가지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 91건입니다. 이 가운데 19건은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이 안 돼 거론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폐기되진 않았지만 법사위에서 지연돼 수백 일이란 시간이 지난 후 20대 국회 막바지에야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도 있습니다.

■ 여야, 엇갈린 입장…과거에 어땠나?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에 대해 현재 여야는 말들이 다릅니다.

민주당은 정당이 이해관계에 따라 법사위의 월권을 남용해 입법을 지연시켰다면서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법사위에서 떼어내자고 주장합니다.

통합당은 상임위보다 비교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법사위가 법안을 조율해 왔다면서 그대로 두자고 주장합니다. 여당 견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입장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 실제 어떤 식으로 운영돼 왔는지 법사위 단계에서 폐기된 법안, 그리고 지연된 법안들을 중심으로 의안심사 정보와 국회 회의록을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연관 기사]
필요하지만 악용되는 '체계·자구 심사'…개념 규정부터 해야 (KBS 뉴스9/2020.06.10.)
때로는 순기능도 있어…'상임위' 내실화 전제돼야 (KBS 뉴스9/2020.06.10.)

■ 법사위에 발목 잡힌 상임위 통과 법안들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이유를 내세우며 발목을 잡은 법안들은 여럿 존재했습니다. 체계·자구 심사권 월권 논란 사례인데요.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혹은 정부 부처의 집요한 방해로 이뤄져 왔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① '김관홍법' 입법 지연 (2018년 3월 29일 법사위 전체회의)

2016년 6월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구조활동으로 피해를 본 민간 잠수사에 대한 보상을 담은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이른바 '김관홍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발의 후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 2차례, 법안소위 3차례 등 활발한 논의를 거쳐 1년 9개월 만에 농해수위를 통과했습니다.

그런 어렵사리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이 법은 2018년 3월 열린 법사위에서 다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이 잠수사 사망 및 부상은 세월호 침몰하고 직접 관련이 없다고 반대한 겁니다.


당시 윤 의원의 발언은 법안의 실질적인 내용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체계·자구 심사'라는 법사위의 권한을 넘어섰다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김관홍법'은 이후 800일 넘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가 2020년 5월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야 가까스로 통과됐습니다.

② 법안 통과 거부로 예산안까지 지연 (2014년 1월 1일 법사위 전체회의)

19대 국회 법사위원장은 당시 야당인 민주당 소속의 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었습니다. 여야는 협상 끝에 외국인투자촉진법 처리에 합의했지만, 당시 박영선 법사위원장은 자신의 소신을 꺾을 수 없다며 끝까지 본회의 상정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법사위 사회봉을 간사에게 넘겨서야 여야는 간신히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본회의로 올릴 수 있었고, 법사위 심사가 지연되면서 2014년 예산안까지 해를 넘겨 처리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③ 야당 법사위원도 월권 인정 (2019년 11월 27일 법사위 전체회의)

상임위 통과 법안에 대해 정부부처가 법사위에서 이견을 내고 통과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한부모가족에 대한 지원 강화 법안은 2019년 6월 여가위 심의를 마쳤지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예산이 과하다는 기재부 의견이 거론되면서 가로막혔고 폐기됐습니다.

당시 법사위 소속 의원조차도 해당 논의가 월권임을 인정했습니다. 주광덕 당시 법사위원은 "물론 이게 체계․자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입법 정책적인 사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의 역설…순기능 발휘하기도

그런데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를 둘러싼 역설적인 상황도 있었습니다. 법사위가 순기능을 발휘해 사회적으로 잘못됐다고 비판받은 법안의 통과를 막는 경우였습니다.

④ 논란의 상임위 법안 게이트 키핑 (2019년 4월 4일 법사위 회의장)

종교인의 퇴직금에 매기는 세금을 2018년 이후 재직분에 한정한다는 소득세법 일부 개정안은 2019년 3월 29일 발의한 지 두 달도 안 돼서 순조롭게 기재위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종교인 특혜에다 조세 평등주의에 어긋난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2019년 4월 4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박주민, 채이배 당시 법사위원들이 해당 법안에 제기되는 논란을 강력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다가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까지 거친 뒤 2020년 3월 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다시 올라왔지만, 논란에 부딪혀 본회의로 가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월권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상임위가 이익단체나 정부 부처에 휘둘려 통과시킨 법안을 법사위가 걸러내는 역할을 한 겁니다.

■ "체계·자구 심사 정확한 규정부터…상임위 내실화도 전제돼야"

법사위의 월권 논란은 바로 이 '체계·자구 심사'라는 법 조문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견해차가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심사에서 법의 실질적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해석하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통합당 김웅 의원은 "당연히 헌법적인 가치와 질서에 맞는지 그리고 다른 법들과의 균형이 맞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내용은 당연히 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진짜 (말 그대로) 체계·자구 심사를 해야 하는데 체계·자구심사를 오히려 안 한다든지 또는 체계·자구 심사를 해서도 아무 문제없는 법을 그냥 발목을 잡는다든지 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회 입법지원 편람에는 법사위의 권한을 체계 자구 심사에 국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국회법에 구체적인 내용 없습니다. '체계, 자구 심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규정부터 필요해 보입니다.


법사위 운영에 대한 논의는 상임위를 어떻게 내실화할 것인가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관상임위에서 체계 자구심사를 엄격히 하되, 이해관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클 경우 소관상임위의 독주를 막기 위해 전원위원회에 회부하거나 관계 상임위 연석회의를 여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심사 자체의 순기능은 살리되, 입법 지연과 같은 법사위의 악의적 월권 논란은 없어야 한다는 건데, 상임위 내실화가 전제하면서 적절한 견제장치도 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두고 민주당은 국회의장 직속의 별도 기구에서, 통합당은 법사위를 사법위와 법제위로 나눠 법제위에서 맡게 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야의 상임위 협상 타결 결과에 따라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권한의 운명도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계현우 기자 (ky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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