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궁극의 가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LWB
-랜드로버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SUV
-부드러운 승차감, 개선된 안전 기능 인상적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구입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플래그십 제품을 바라보는 인식도 바뀌고 있다. 여기에 나만의 차를 원하는 개성 가득한 소비자도 늘어나는 상황. 일찌감치 소비자 요구를 파악한 랜드로버는 최적화된 초호화 SUV 만들기에 들어갔다. 검증받은 강력한 험로 주행 실력을 바탕으로 세단의 안락함과 고급감을 높이는 데에 초점을 뒀다. 플래그십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탄생한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래피 롱휠베이스(LWB)가 대표적이다. 우람한 덩치에 껑충한 SUV가 세단만큼의 고급감을 구현할 수 있을까? 궁금증을 갖고 차를 마주했다.
시승차는 지난 5월 출시한 2020년형 레인지로버다. 신차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제품과 큰 차이를 경험하기 힘들다. 앞뒤 모습을 비롯해 차를 꾸미는 세부 요소들도 전부 그대로다. 랜드로버 마니아가 직접 찾아도 바뀐 부분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실제로 레인지로버는 50년 역사 동안 완전변경 횟수가 고작 4번에 불과하다. 현행 제품은 2013년에 데뷔한 4세대로 2018년 부분변경을 거쳤다. 그만큼 레인지로버는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오랜 시간 변함없는 자세로 차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눈에 익숙한 형태이지만 존재감은 여전히 상당하다. 각진 차체와 커다란 그릴, 사각형 램프류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단정하면서도 깊은 주름을 넣은 앞범퍼 공기흡입구와 보닛에 붙은 두꺼운 레인지로버 알파벳도 시선을 자극한다. 옆은 롱휠베이스답게 기다란 차체가 인상적이다.
길이는 5,200㎜에 이르고 휠베이스도 3,100㎜를 훌쩍 넘긴다.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 제네시스 G90과 비슷한 수치다. 여기에 1,840㎜의 높이까지 더해져 도로 위 주변 차를 압도한다. 이 외에 도어 손잡이를 흐르는 직선 캐릭터라인과 팬더에 자리 잡은 은색 장식이 눈에 띈다. 뒤태도 큰 변화는 없다. 반듯한 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유리창과 두 개의 네모난 테일램프, 직선을 강조한 트렁크 형상까지 전부 그대로다.
철컥 소리를 들으며 묵직한 문짝을 열면 광활한 실내가 펼쳐진다. 수직과 수평 구조를 강조한 센터페시아 형상은 기존과 같지만 각 기능을 다루는 소프트웨어 구성은 폭넓게 개선했다. 먼저 스마트 디바이스를 터치스크린과 무선으로 연결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애플 카플레이가 적용돼 티맵과 카카오내비 등 국내 내비게이션 사용 환경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전화, 문자, 이메일, 지도, 음악, 일정 등의 스마트폰 어플도 사용할 수 있다. 와이드 디지털 계기판은 안전 주행장치 활성화 상황과 속도계, 내비게이션 화면을 분할해 한 번에 보여주며 헤드업디스플레이 구현 그래픽도 훨씬 다양해졌다.
가운데 위치한 전동식 센터 콘솔은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뒤에는 활용도 높은 수납함이 마련돼 있고 좌석 두 개와 자연스럽게 통합돼 4시트 환경을 구성하도록 설계했다. 또 원터치 방식으로 작동하는 조수석 시트 이동 장치를 이용해 1열 조수석을 앞으로 최대한 밀어 뒷좌석 탑승자의 공간과 전방 시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리어 시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USB 3.0 (충전 기능 포함), HDMI, HDMI/MHL 포트 등 다양한 외부 연결을 지원한다. 리어 스크린을 통해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하는 등 독립적인 원격 조정도 가능하다.
▲성능
보닛 안에는 V8 5.0ℓ 슈퍼차저 가솔린 엔진이 들어있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최고출력 525마력, 최대토크 63.8㎏·m를 발휘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시간은 5.4초가 걸리고 최고속도는 시속 225㎞다.
여기에는 높은 정숙성이 큰 역할을 한다. 공기 저항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풍절음과 바닥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랜드로버는 경량 알루미늄 구조를 적용하고 엔진의 경우 내부 마찰을 최소화해 진동과 소음을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흡차음재 범위를 넓혀 불필요한 소리가 들어올 수 있는 부분을 철저히 막았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수치로 얼마만큼 좋아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주행 중 탑승자가 느끼는 체감 정숙성은 웬만한 대형 세단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랜드로버의 장기인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은 총 8가지로 나뉜다. 컴포트와 다이내믹의 가장 큰 차이는 댐퍼의 반응이다. 이 외에 자갈, 모래, 진흙과 같은 험로 주행 모드는 기어비와 스로틀 반응이 한층 차분해진다. 기본적으로 차가 높고 토크가 강하기 때문에 웬만한 오프로드에서는 문제없이 주행이 가능하다. 여기에 브랜드 노하우가 깃든 탈출 능력이 더해져 거친 자연 속에서도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다. 물론 레인지로버를 가지고 굳이 험한 길을 찾아 들어가는 운전자는 많지 않으리라 본다.
레인지로버는 굽이치는 고갯길보다는 고속 크루징에서 제 능력을 발휘한다. 여유로운 성능과 함께 안정적인 주행감과 높은 정숙성, 미끄러지듯이 질주하는 승차감 덕분이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는 안전장비의 힘이 크다. 차간거리가 기본으로 들어간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은 스티어링 어시스트 기능을 추가해 주행 완성도를 높였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효율이다. 시승차인 5.0SC 오토바이오그래피 LWB의 효율을 복합 기준 ℓ당 5.6㎞(도심: 4.7㎞/ℓ, 고속도로: 7.5㎞/ℓ)다. 조금만 가속페달을 밟아도 기름바늘은 아래로 털썩 내려온다. 트립컴퓨터 숫자도 좀처럼 오를 기미가 없다. 다행히 연료통이 104ℓ나 되기 때문에 주유소를 자주 들어갈 필요는 없겠다. 수 억원에 이르는 대배기량 500마력 차를 모는 사람들에게 효율은 큰 단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조금만 더 높은 효율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는 고급스러운 소재로 꾸민 덩치 큰 호화 SUV다. 그 속에는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브랜드가 지켜온 오프로드 DNA와 50년 세월의 레인지로버 개발 노하우가 담겨있다. 몸집을 키우고 높이만 올린 다른 SUV들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주중에는 도심 속 최고급 비즈니스용으로 사용하고 주말에는 자연 속에서 뒹굴며 극한 상황을 즐겨도 무리가 없다. 장소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을 200% 발휘한다.
레인지로버는 모양을 뜯어고쳐 파격적인 변화로 시선을 사로잡지 않는다.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한결같은 감동을 주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물 흐르듯이 사람들 기억 속에 플래그십의 정의를 새롭게 심어준다. 새 차의 판매가격은 스탠더드 휠베이스 기준 1억9,137만 원~ 2억2,577만 원, 롱휠베이스 2억2,397만 원~ 3억1,467만 원이다. 시승차인 5.0SC 오토바이오그래피 LWB는 2억4,427만 원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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