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가 된 과학도.. 뉴욕 필 만나 날개 펼칩니다
한 번도 목표를 정해놓고 나아간 적 없었다. '지금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를 염두에 두고 늘 한 발짝 앞선 계획을 세워 한 뼘씩 이뤘다. 미국 뉴욕 필이 찜한 작곡가 김택수(40) 얘기다.
서울과학고 3학년 때인 1998년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나가 은메달을 걸고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한 과학도, 그러나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나는 화학에 뜻이 없구나' 깨닫고 작곡으로 과감하게 방향키를 돌린 그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지난 3일 예술의전당에서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로 '더부산조'를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다시 번진 코로나로 취소됐다.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건 작곡이었다.서울대 작곡과에 편입해 작곡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작곡가 진은숙의 제자가 됐다. 미국 인디애나 음대에서 박사가 된 뒤 포틀랜드 주립대와 시러큐스대에서 작곡을 가르쳤다.

클래식, 특히 베토벤 등 독일 음악에서 음악은 아름다움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거고 감정의 과잉은 경계해야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가 듣고 자란 음악은 그렇지 않았다.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덕분에 찬송가를 열심히 들었고, 네댓 살 무렵엔 여러 곡이 '짬뽕'된 음반에서 러시아 작곡가 하차투리안의 '칼의 춤'을 반복해 들으며 춤을 췄다. 초등학교 3학년 땐 팝가수 스팅의 곡을 8비트 컴퓨터에 넣어 새로운 선율을 뽑아냈다.
"내 살갗에만 배어 있어 나만 할 수 있는 일상의 음악"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아이디어를 건졌다. 물풍선을 던지고 놀던 옛 추억을 되살려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스플래시'(2009)를, 커피 원두 가는 소리를 넣은 '셰이크 잇'(2013)을 썼다. 테너가 낭랑한 목청으로 "찹쌀떡! 메밀묵!"을 부르는 합창곡 '찹쌀떡'(2013), 국민체조 구령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가락이 불쑥 튀어나오는 '국민학교 환상곡'(2013)도 내놨다. 3년 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선 '평창을 위한 팡파르'를 선보였다. 물론 바탕은 클래식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작품을 위촉받는 경우가 급격히 늘었다. 지난 1월 뉴욕 필과 '스핀―플립'을 연주했고, 오는 11월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12월 뉴욕 필과는 8분짜리 '더부산조'를 할 예정이다. 관현악으로 가야금 산조를 그린 '더부산조'에선 그동안 서양 오케스트라에서 들어보지 못한 사운드가 낭만적으로 흐른다. '한국을 알리는 젊은 작곡가들의 긍지'로 김택수가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셈이다. "뉴욕 필과의 연주는 꿈도 꿔보지 못한 일! 인생 소원을 다 풀었어요."
보름 전, 암 투병 중이던 부친을 여의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코로나 사태와 맞물리면서 "사람이 죽는다는 건 똑같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요즘은 일상을 벗어나 좀 더 심오한 사랑의 차원으로 확장한 '소나타 아마빌레(Amabile)'를 쓰고 있다. 기생, 무녀(巫女),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그린다.
내년 1월 부산시향과 초연할 작품은 '짠!!'이다. 부산에 대한 걸 써달라고 했는데, 서울 토박이인 그가 부산에 대해 아는 거라곤 갈매기뿐. 그러다 시원소주를 떠올리곤 "한 잔에 정(情)도 한(恨)도 풀어주는 술에 대한 음악을 써보자" 다짐했다. "이건 비밀인데요" 하고 그가 속삭였다. "뽕짝을 섞고, 악기로 소주병도 쓸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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