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붐도 학범슨도 '지도사 2급 자격증' 있어야 올림픽 이끈다?

임성일 기자 2020. 6. 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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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국대 감독 '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 의무화 추진
앞으로는 '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 이상이 있는 축구 감독만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때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대한체육회가 '모든 종목' 대표팀 지도자들의 공인 자격증 소지 의무화를 추진한다. 규정이 바뀌면 오는 2023년부터는 '스포츠지도사 2급 이상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만이 (체육회 주관으로 참가하는 국제대회의)대표팀을 지도할 수 있다.

이미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 지도자를 관리하고 있는 축구계는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10년 가까이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해 P급 라이선스를 획득한 지도자들도 새로운 자격이 필요하다. 차범근도 홍명보도, 김학범도 황선홍도 국가를 위해 봉사하려면 '기초 학습'부터 다시 해야 한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3일 "보류됐던 국가대표 선발·운영규정과 관련한 개정안을 오는 5일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라면서 "한 번 연기됐으니 이번에는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애초 대한체육회는 지난달 6일 이 문제를 놓고 이미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었다. 논의의 골자는 프로선수 중심의 축구, 야구대표팀 지도자에게도 기존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었다.

현행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강화훈련 참가 지도자 선발 기준' 조항에 따르면 국제대회에 한국 선수단으로 참가하는 각 종목 대표팀 지도자는 '2급 이상 전문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소지해야 한다. 하지만 야구와 축구는 그간 자격증 소지 여부와 관계없이 종목 내부의 검증 과정을 거쳐 대표팀 감독을 선임했다.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선보일 수 있는 야구와 축구에 대한 내공이 우선이었는데 이젠 '2급 스포츠지도사 자격증'도 갖춰야한다.

관련해 체육회 관계자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 야구 종목에서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문제가 있었고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규정 개정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또 다른 스포츠 관계자는 "체육 지도자들의 문제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특히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 심각한 일까지 발생하면서 스포츠지도사 리더십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는 반성이 제기됐다"면서 "자격증 시험을 통해 지도자를 관리하고자 하는 와중 야구와 축구도 포함시키려 하는 것 같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종목단체의 반발이 심하고 여론까지 좋지 않자 '보류'를 외친 공정위는 한달가량 추이를 지켜봤다. 야구 쪽은 체육회 규정 개정을 따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여러모로 입장이 다른 축구계는 현실을 보지 않고 책상 위에서 결정한 것 아니냐고 답답함을 외치고 있다.

다른 종목들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로 지도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의 결정에 한숨을 짓고 있다. © News1 민경석 기자

축구협회 관계자는 "U-20 대표팀 이상은 P급 라이선스 소유자만 팀을 맡을 수 있다. C-B-A-P급 자격증을 차례차례 따려면 못해도 8~9년이 걸린다"면서 "체육회 역시 축구의 자격증 획득 절차가 까다롭고 또 국제적으로 공인된다는 사실을 안다. 심지어 한번 따면 끝이 아니라 계속 보수교육을 받아야 자격이 유지된다. 더 엄중한 잣대로 지도자를 관리하고 있는데, 형평성만 앞세워 '다 같이 따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지도자의 비위 행위나 도덕적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직위해제할 수 있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고 있다. 이미 대표팀 지도자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면서 "체계적으로 지도자를 관리하는 종목은 축구뿐이다. 1999년부터 틀을 잡고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다. 종목단체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좋은 예'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똑같이 족쇄를 채우려하니 지금껏 협회의 가이드를 따라 준 우리 지도자들을 다시 설득하는 것도 괴롭다"고 한숨을 보였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관하는 스포츠지도사 시험은 1급과 2급으로 나뉜다. 2급은 필기, 실기, 구술, 연수 4단계로 이뤄지는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하는 프로스포츠단체(축구·야구·농구·배구·골프)에 등록된 현직 프로 선수나 프로 선수로 3년 이상 선수 경력이 있는 사람은 구술 시험과 연수로 가능하다.

또 국가대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종목별 국제연맹(IF), 종목별 아시아연맹에서 주최하는 국제대회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구술 시험만 보면 된다. 대한체육회가 "그리 까다로운 과정이 아니다"고 말하는 이유인데, 축구계의 토로는 시험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스포츠지도자 2급'이라고만 쳐도 관련된 내용들이 길게 펼쳐진다. 각종 미사여구와 함께 합격을 보장하는 길라잡이가 되겠다는 광고부터 앞선 선배들의 성공담까지, 훑어보면 축구계 한숨도 이해가 된다. 원론적이고 개론에 가까운 이 시험을 최용수나 정정용이 통과해야 (올림픽)대표팀을 이끌 수 있다.

시험은 1년에 한 번뿐이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서 국위 선양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이나 박항서 감독은, 시험 기간에 맞춰 고국을 찾는 열정이 없다면 차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사령탑 후보 대상에서 아예 제외돼야 한다. 가뜩이나 지도자 풀이 넉넉하지 않은데 더 좁아질 수 있다. 외국인은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외국인 지도자는 괜찮다 한다. 국내 지도자들이 역차별을 당할 수도 있다.

똑같은 수영 지도자라도 자유형을 가르치는 지도자와 아티스틱 스위밍(수중발레) 대표팀 감독은 전문성이 달라야한다. 그런데 '모든 종목'을 함께 적용하고 있다. 스포츠 지도자를 대상으로 국가가 똑같은 시험을 본다는 것도 예를 찾기 힘든 일이다.

바람직하게 가고 있는 쪽을 쫓아가야 하는 게 상식적이다. 새출발하려니 똑같이 가자고 끄집어 내리려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아 보인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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