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자유롭던 '평평한 세계' 끝났다.. 각국 정상들 기업 유턴에 올인

류정 기자 2020. 6.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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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빅뱅, 위기와 기회] [4] 세계는 지금 리쇼어링 전쟁

미국 자동차 '빅 3' 중 하나인 포드는 2014년 멕시코 픽업트럭 생산 라인을 미국 오하이오주로 옮겼다. 중국에서 만들던 상업용 밴은 미국 미주리주에서 만들기로 했다. 당시 투자 금액은 160억달러(약 20조원). 포드는 2017년에도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을 취소하고 미국에 자율주행·전기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대규모 유턴(U-turn)을 단행했다. 포드가 2010~2018년 미국에서 만든 추가 일자리는 4200개에 달한다.

당시 포드가 멕시코·중국의 값싼 인건비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배경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정부의 법인세 파격 인하, 이전 비용 지원 등 대대적인 리쇼어링(기업 본국 회귀) 정책이 물론 작용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노조가 허용한 '이중 임금' 체제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신규 노동자가 기존 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만 받는 데 협조하면서, 자동차 기업들의 본국 회귀뿐 아니라 빠른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트럼프 정부가 추진 중인 '리쇼어링 정책'은 이런 오바마 정부의 기업 유치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법인세 추가 인하로 지난 10년 사이 법인세율은 38%에서 21%로 17%포인트 내려갔다. 장기적인 기업 유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애플·GM 등 자국 기업뿐 아니라 SK·LG 등 한국 기업들도 미국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래리 커들로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최근 "이전 비용을 100% 지원해야 한다"고 발언, 더 강력한 리쇼어링 대책을 예고했다. 글로벌화로 투자가 국경을 넘나들며 '평평해진 세계'는 코로나 사태 이후 각국이 쌓아 올리는 장벽으로 울퉁불퉁해지고 있다. 각국이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생존을 위한 기업 유치 전쟁을 벌이는데, 한국의 대응은 안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도 정부, 제주도 2배 땅 마련

인도 정부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탈(脫)중국' 움직임을 '천재일우'의 기회로 삼고 대대적인 기업 유인책을 마련 중이다. 인도 정부는 전국의 총 46만1589헥타르(약 4600㎢)의 토지를 기업 유치에 할당했다. 제주도 면적의 2.5배 규모다. 이어 해외 공관을 통해 중국에 사업장을 둔 미국 기업 1000곳 이상과 접촉, "인도로 오라"고 적극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정부는 토지 매입 절차가 복잡하고 임대료가 매우 높아 기존 토지 소유주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토지 거래법,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관행과 노동법, 그리고 조세 제도까지 모두 개정하겠다는 의지도 전달했다. 연락한 기업들은 의료 기기, 섬유·가죽, 자동차 부품 등 제조업에 집중됐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인도가 코로나 사태를 기회로 제조업 강국 '메이커 인디아'로 부상하겠다는 셈법이 깔려 있다.

일본 아베 정부는 '공급망 재구축' 비전을 밝히며 2조원에 달하는 리쇼어링 기금을 마련했다. 본국 이전 비용의 67%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파격 지원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일본의 가전 기업 아이리스오야마는 중국에서 생산하던 마스크를 자국 공장으로 이전, 8월부터 매달 1억5000만장 양산하기로 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일본은 지역별로 물가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어 우리보다 낮은 곳도 많은 데다, 2008년 30%였던 법인세율을 아베 정부 때인 2016년 23.4%까지 낮췄다"고 말했다.

거대 시장, 싼 노동력 둘 다 없는데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물건을 팔 시장이 있거나, 인건비·세금 등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 열악하다.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함께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굳이 기업이 돌아올 이유가 없다.

지난 1일 정부가 발표한 '유턴 정책'에는 이런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턴 기업을 수도권에 우선 배정해주겠다는 내용이 추가됐지만, 현재 수도권 공장총량제에 따른 부지 소진 비율은 2018~2020년(4월 기준) 50%에 그치고 있다. 부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업 환경이 좋지 않아 오지 않는 것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한국은 리쇼어링 전쟁에서 필패할 것"이라며 "지엽적인 정책에만 몰두하지 말고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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