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아파트는 되레 상승, 서민 내집마련 더 어려워졌다

성유진 기자 2020. 6. 1.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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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집값, 진짜 떨어졌나.. 초고가 아파트만 하락

서울 강서구에 전세로 사는 이모(35)씨 부부는 지난달부터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주 연락하고 있다.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소식에 작년 가격대 매물이 나오면 집을 살 계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가 점찍어 둔 단지는 올 들어 6억원을 넘은 뒤,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씨는 "계속 오르는 전셋값도 부담돼 이번에 집을 장만할 생각이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가격이 내렸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와 코로나발(發) 경기 침체로 서울 아파트 값이 내림세로 돌아섰지만, 정작 실수요자 사이에선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15억원을 훌쩍 넘는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는 수억원씩 떨어지고 있지만, 9억원 아래의 중저가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오르거나 제자리걸음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를 잡겠다고 각종 규제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서민·중산층의 내 집 마련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고가 아파트만 하락, 중저가는 상승

그동안 서울 아파트 값 하락세는 주로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며 확대됐다. 31일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값 상위 20%(5분위) 단지의 평균 가격은 18억320만원으로 지난 3월(18억1304만원)보다 0.55% 떨어졌다. 지난해 12·16 대책으로 15억원 넘는 아파트 대출이 전면 금지되고 보유세 부담도 늘면서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급매물이 쏟아져 나온 영향이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등은 지난 연말 대비 3억~4억원 정도 빠졌다.

/그래픽=박상훈

반면 나머지 하위 80% 아파트 값은 지난 두 달 새 오히려 상승했다.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1분위(하위 20%) 아파트 평균 가격은 5월 3억9776만원으로 두 달 전보다 1.28% 올랐다. 2분위 아파트 값은 6억3773만원으로 3월(6억2939만원) 대비 1.33% 올라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3분위 아파트 값은 8억1294만원으로 1.11%, 4분위 아파트 값은 11억428만원으로 0.44% 올랐다.

실제 6억원 언저리 아파트 중에는 실거래가가 오른 단지가 적지 않다. 강북구 수유동 수유벽산1차(이하 전용면적 85㎡)는 지난 2월 4억9000만원에 팔렸지만, 4월 말에는 같은 층이 5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고준석 동국대 교수는 "올 들어 기준금리가 0%대로 떨어지며 시중 유동자금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중저가 아파트로 수요가 이동했다"며 "5억~6억원대 아파트는 원래 실수요가 꾸준한 데다, 전셋값이 오르는 추세인 점도 중저가 단지 가격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노원구 하계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과 달리 대출 이자나 보유세 부담이 크지 않아 '급매'가 쏟아져 나오긴 어려운 분위기"라고 했다.

9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 아파트 값도 오름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들어 5월 말까지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 1위부터 6위를 이 지역이 차지했다. 이중 노원구는 4월 말부터 가격이 소폭 하락하며, 강남발 집값 하락이 서울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지만, 지난주 다시 보합(0%)으로 돌아서며 내림세가 멈췄다.

◇3년간 6억 이하 아파트 절반 줄어

서울 아파트 값이 지난 2~3년간 급등해 '원상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가 서울 아파트 124만여 가구의 시세를 매달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말 서울 6억원 이하 아파트 가구 수 비율은 조사 대상의 57.5%(71만3573가구)에 달했지만, 올 5월에는 30.6%(38만2643가구)로 줄었다. 6억원은 서민·중산층 실수요자가 집을 살 때 많이 이용하는 '보금자리론(최대 LTV 70%·3억원까지 대출)'의 기준 금액이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가격 순으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집의 가격)은 6억8500만원에서 9억2013만원으로 2억원 넘게 올랐다.

향후 아파트 가격 흐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 아파트 값은 강남의 흐름을 따라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에도 강남권 아파트 값이 먼저 내리고, 반년 후쯤 서울 외곽으로 하락세가 확산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공급 부족과 저금리로 올 들어 중저가 아파트 가격이 상승했지만, 코로나발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연말을 기점으로 가격이 꺾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반면 중저가 아파트는 정부 규제가 덜하고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강해 집주인이 굳이 가격을 낮춰 집을 내놓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3월 이후 떨어지던 서울 아파트 값 하락세가 최근 주춤한 것도 부담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01% 올라 9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감정원 조사 기준으로는 0.02% 하락해 여전히 내림세가 지속하고 있지만, 낙폭은 한 주 전(-0.04%) 대비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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