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소문이 더 무섭다"..가족 확진에도 등교한 속사정

남궁민 2020. 5. 3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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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소독용 물티슈로 책상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수도권에 산발적으로 확산하면서 학교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런 가운데 가족이 확진 판정을 받은 학생이 학교에 등교한 사례가 나타나면서 자가 진단에 의존하는 학교 방역 체계가 쉽게 뚫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초등학교는 이틀간 등교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 학교 1학년 A(7)군의 가족이 이날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등교할 당시 A군의 가족은 진단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해당 학생은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학부모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확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1,2학년 학생이 함께 학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자칫 학교내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부실 응답에 속수무책…학생들 "조퇴하면 소문 쫙"

교육부가 만든 온라인 학생 자가진단표 예시 [교육부 제공]

학생들은 매일 등교 전 '건강상태 자가진단'을 하고 결과를 학교에 보내고 있다. 의심 증상이 있거나 환자와 접촉한 경우, 등교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진단 검사를 받으면 음성 판정 전까지 자가 격리 대상이다. 학생 자가진단에는 '동거가족 중 자가 격리된 가족이 있나요'라는 문항이 있어 A군은 등교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A군은 그날 등교를 했다.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A군은 자가진단에서 문제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인근에서 고등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자가진단에서 문제가 확인된 학생은 학교에 오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증상을 숨기고 학생이 등교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 남모(33)씨는 "학교는 학생을 믿고 맡길 수 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시험을 앞두고 있고,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소문을 무서워 하기 때문에 자가진단에 솔직히 답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도 불안감을 호소한다.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고3 학생이라고 밝힌 한 이용자는 "학교에서 기침만해도 애들이 '코로나'라면서 피하고 장난을 친다"면서 "증상이 있다고 조퇴하면 학교에 소문이 쫙퍼진다. (코로나19) 걸리는것보다 무섭다"는 글을 남겼다.


'설사하면 코로나19 검사'? 질본 규정과 달라

지난 28일 굳게 닫혀있는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교문. 연합뉴스

학교 방역 지침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기침·메스꺼움·설사 등의 증상 가운데 한가지라도 있으면 선별진료소로 가 진단 검사를 받도록 한다. 하지만 방역 당국 관계자는 "단순히 기침, 설사 증상이 있다고 모두 검사를 받긴 어렵고 의사의 상담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전국초등교사노조는 입장문을 내고 "자가진단의 모호한 기준은 큰 문제"라며 "자가진단에서는 등교중지가 떴으나 선별진료소는 의심 정황이 없다는 이유로 등교해도 좋다고 답변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 26일 오전 부모님과 함께 서울 강서구 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어린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은 후 진료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의심증상을 보여 선별진료소에 간 학생을 진료 후 학교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한 지침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교육부 지침은 119에서 의심 증상이 있는 학생을 진료소로 이송한 뒤 집까지 데려다 주지만, 보호자 연락이 되지 않으면 다시 학교로 이송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의료기관처럼 격리시설이 없는 학교로 의심증상을 보이는 학생을 돌려보내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의료기관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야 격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 당국 "문제 인식하고 있어…수정하겠다"

지난 27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서울 송파구 세륜초등학교의 교실 수업을 방문, 학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교육 당국은 방역수칙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경미한 증상으로도 선별진료소로 가게 하는 건 119차량, 보건소 인력 낭비 문제가 있다"며 "교육부에 이의를 제기했고,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등교 초기에는 방역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우려를 막자는 취지로 도입했다"면서 "시행 후 수정하는 걸 전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수정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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