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인가제 폐지, 통신비 인하는 글쎄?

이하늬 기자 2020. 5. 3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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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의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 유리창에 위약금 지원, 공짜폰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5월 20일 국회는 휴대폰 요금인가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요금인가제는 1991년 업계 1위인 SK텔레콤의 과도한 요금인상 등을 막아 후발 사업자들과의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도입됐다. 즉 이번 개정안 통과로 SK텔레콤에 대한 규제가 29년 만에 풀리게 됐다.

이제 SK텔레콤은 새로운 요금제를 출시하거나 기존 요금제의 가격을 인상할 경우, 신고만 하면 된다. 종전에는 새로운 요금제를 출시하거나 요금을 인상하기 위해서 길게는 한두 달이 걸렸다. 다만 정부는 신고된 요금제가 소비자의 이익이나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해칠 경우에 대비해 유보신고제를 마련했다. 과도한 요금인상이나 공정경쟁에 저해된다고 판단되면 15일 이내에 신고서를 반려할 수 있는 제도다.

SK텔레콤에 대한 규제 29년만에 폐지
SK텔레콤은 그동안 인가제가 폐지되면 사업자 간 경쟁이 발생할 것이고 이로 인해 통신비가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지금까지는 1위 사업자가 요금을 정하면 후발 사업자들이 이를 기준으로 유사한 요금제를 따라 만드는 형태였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요금제를 출시하는 데 있어 이전보다 심의절차와 소요시간이 줄어들면 통신사 간 경쟁이 활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도 “전 세계 어디에도 정부가 직접 요금을 인가하는 곳은 없다”며 “규제가 없어지면 다양한 상품이 나오는 건 너무 당연한 결과다. 이미 통신시장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입장은 다르다. 인가제 하에서도 요금을 인하할 때는 신고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28조에는 “이미 인가받은 이용약관에 포함된 서비스별 요금을 인하하는 때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동통신 3사가 적극적으로 요금 인하 경쟁을 벌인 적은 없다.

참여연대는 성명에서 “SK텔레콤이 7만원 이상의 고가요금제만으로 5G 요금제를 출시하려 할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이를 반려하고 5만원대 요금제를 신설하게 했던 것도 인가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인가제가 폐지되면 정부는 요금인상을 견제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수단을 스스로 폐기하고 이동통신 요금 결정권을 사실상 이통 3사에게 넘겨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SK텔레콤을 제외한 후발 사업자들도 인가제 폐지와 요금 인하는 크게 관계가 없을 것으로 봤다.

한 후발 사업자 관계자는 “통신비는 인가제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정책, 알뜰폰 시장 등 변수가 많다. 그런 것들을 고려했을 때 인가제가 폐지됐다고 해서 경쟁이 활발해지고 저렴한 요금제가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솔직히 SK텔레콤을 제외한 다른 사업자들에게는 별 영향이 없다. 오히려 1위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는 것이니 후발 사업자에는 약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규제가 폐지됐다고 해서 바로 자유로운 경쟁으로 이어진다는 건 너무 단순하고 이상적인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1위인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9년도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알뜰폰을 제외한 국내 이통사의 가입 점유율은 SK텔레콤 47.3%, KT 29.8%, LG유플러스 22.9%였다. 후발 사업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공정경쟁 되려면 과점시장부터 해결해야
통신시장 내에서 SK텔레콤의 지분이 크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통신시장을 이통 3사가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은옥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경쟁이 불을 붙으려면 독과점 시장부터 해결돼야 하는데 현재의 시장에서 경쟁이 불붙어서 요금이 인하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독과점 체제 때문에 제4사업자를 도입하자는 논의는 꾸준히 제기되지만, 그때마다 이통 3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통 3사는 알뜰폰으로 인해 시장구조가 개편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알뜰폰 가입자는 전체 가입자의 12.0% 수준이며 사업자는 45개에 이른다.

알뜰폰 업계에서는 인가제 폐지가 자유로운 경쟁은커녕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이통 3사가) 비싼 요금제를 몇천원 낮추는 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낮은 요금을 더 낮게 하면 알뜰폰 소비자가 이통 3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수익이 잘 나는 요금제를 출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낮은 요금제를 몇천원 낮춰 알뜰폰 사용자를 흡수하는 결과가 생길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의 우려대로라면 소비자가 부담하는 통신비용은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가입된 통신사만 바뀌게 된다. 물론 부가서비스 등 혜택은 추가된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지금도 12%대에 머물고 있는 알뜰폰 시장이 사라지고 나면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때는 이통 3사가 요금을 올려도 선택권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금인가제가 29년 동안 유지되어온 이유는 공공성 때문이다. 휴대폰은 전 국민의 생활필수품이고 이동통신사업은 공공재인 주파수를 기반으로 한다. 현재 이동통신 가입자는 500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SK텔레콤 관계자는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요금인가제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인가제 자체가 이제는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유보신고제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의견을 내고 행동할 계획이다. 문은옥 간사는 “유보신고제는 소비자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큰 경우, 공정한 경쟁을 해칠 우려가 큰 경우만 반려한다고 두루뭉술하게 기술돼 있다. 누가 심사를 할지, 이익을 크게 침해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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