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 유가족들 "참사 한달째인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시공사·시행사 무책임 일관..정부도 대책 없어"
"희생된 고인들 너무 처참해..조속히 수사해 처벌해야"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중대재해 유가족 일동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 화재 발생 한달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대책과 시공사·시행사 대상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2020.5.29/뉴스1 © News1서혜림 기자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내 사랑하는 아우. 불구덩이 속에서 너를 앞에 세워 탈출했다면 살았을까. 이 못난 형의 하루하루가 자책과 고통 속에 힘이 드는구나. 화마가 치닫던 날 그래도 형이라고 이러저리 나를 따라다니던 너를 기억하면 미치도록 가슴아프고 미안하구나"(민경원씨가 고 민경진씨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 발췌)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29일로 한달째를 맞은 가운데 유가족들이 애끓는 심경을 토로했다.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중대재해 유가족 일동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조사와 처리 관련 기관 책임자는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지만 말만 앞서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곳은 거의 없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들은 "발주처 한익스프레스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물러나 있고 감리업체·하청업체들도 책임이 없으며 심지어 피해자라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가족들은 "이들 모두는 노동자들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청에 하청을 하는 위험의 외주화에만 최선을 다했다"며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38명 고인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비통해했다.

사고현장에서 근무하다가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온 생존자 민경원씨는 당시 사고상황에 대해 "지하 2층을 작업하고 있었고 8명의 작업자와 함께 있었는데 불을 발견하고 동료들과 탈출하려고 했으나 불은 15초만에 출입구쪽으로 동시에 번졌다"며 "현장에 존재하지도 않던 소화기를 찾던 시공사 대표는 세월호 선장과 무엇이 다른바가 있나"고 규탄했다.

민씨는 "이천 물류창고는 3시간 만에 완전히 탔다"며 "절차대로 시공했다면 최소 2~3일이 걸렸을 것이며 적어도 빠른시간 내에 다 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사측의 부실시공 의혹을 제기했다.

민씨는 사고 현장에서 사망한 동생을 이야기하며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여러 고인들이 정말 처참하게 희생됐다. (고인 중 일부는) 한쪽 손목이 탈구돼 귀밑에 붙어 있었고 발목이 3개가 붙어 있기도 했다. 이게 산업재해의 현실이다"라고 외쳤다.

박종필 유가족 수석대표는 "지난 30일 동안 유가족들은 정부에 답을 얻고자 답답한 가슴을 억누르며 참고 참았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과 대안이 없다"며 "억울한 마음을 담아 호소한다. 대한민국 국민과 노동자가 따를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강재 유가족 공동대표는 "불이 어디서 시작됐느냐가 아니라 왜 이번에도 똑같은 화재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알고 싶다"며 "범정부 TF팀은 다음 달까지 최종개선안을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특단의 대책이 뭔지 알려달라"고 외쳤다.

유족 대리인 김용준 법무법인 마중 변호사는 "이천화재와 연관된 기업들이 속속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폭발이 일어난 층에서 한익스프레스 운영진들만 살아남았다. 이 사람들은 매일같이 모여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38명이 사망했는데 단 한명도 구속되지 않고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건우(시공사)와 한익스프레스 측이 일정을 앞두고 재촉하는 바람에 같이 하지 말아야할 작업이 함께 일어나 화재가 발생했다"며 "명확히 책임질 주체에 대해 구속수사를 요청한지 2주가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수사기관에서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한익스프레스 본사 앞과 참사가 일어난 이천 모가면 물류창고 현장 앞에서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를 포함해 시행사·시공사 측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추가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suhhyerim77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