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버스를 아시나요?②-AEC 루트마스터
-영국 대표하는 빨간 이층 버스, 50여 년간 런던 누벼
영국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다. 런던 아이, 빅벤 등의 건축물과 선데이 로스트, 피쉬앤칩스 같은 음식, 미니, 블랙 캡 등의 탈 것. 그리고 빨간 이층 버스다. 영국에 이층 버스가 처음 운행한 건 생각보다 아주 오래 전인 1925년이다. 너무 옛날이라 당시의 차를 기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이층 버스는 2세대로 꼽히는 '루트마스터(Routemaster)'다.
루트마스터는 1950년대 초 영국의 AEC(Association Equipment Company)가 런던교통국의 의뢰를 받아 개발했다. 당시 런던교통국이 요구한 버스는 작은 차체, 운전 및 유지 보수 편의, 고효율, 그리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겸비한 70석 규모의 디젤 차다. 모두 열악한 교통 환경에서 최대한의 이동 효율을 내기 위한 요소다. 물론, 기존에 운행하던 리젠트 RT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나아야 했다.

디자인은 젊은 디자이너 더글라스 스콧이 총괄했다. 스콧은 미국 디자인 컨설팅 회사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루트마스터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새 버스의 디자인은 과거 이층버스를 보다 진보한 스타일로 다듬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콜린 커티스, 앨버트 듀런트 등의 기술자가 없었다면 디자인을 실물로 구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역사는 이 세 명을 루트마스터의 아버지로 꼽는다.
루트마스터는 1954년 9월 첫 프로토타입이 등장했다. 외관은 모서리를 다듬은 박스형 모노코크 차체를 이층으로 구성하고 엔진을 전방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차체 좌측 뒤편에 마련한 출입구는 문이 없다. 이층은 출입구와 마주한 나선형 계단을 통해 오르내릴 수 있다. 차체는 경량화에 유리한 알루미늄을 주로 사용했다. 제 2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항공기 제조 기술을 대거 활용했다. 알루미늄은 당시 연료효율과 내구성을 높이기에 좋은 최적의 소재였다. 섀시는 전륜 독립 서스펜션, 파워스티어링, 유압식 제동장치 등을 채택해 운전기사들이 놀랄 만큼의 주행 성능을 갖췄다. 휠을 비롯한 차 전체는 빨간색으로 칠했다. 그 배경은 일조량이 적은 기후와 대비되는 강렬한 색채, 잉글랜드 십자군 상징 등의 설이 존재한다.

1956년 2월8일, 루트마스터가 런던을 달리기 시작했다. 양산차는 프로토타입과 마찬가지로 출입구에 문이 없다. 안내 승무원이 탑승해 승객들의 승하차 시간을 줄이고 안전을 확보했다. 하지만 기사 외에 인건비가 추가 발생하는 단점을 초래했다. 그러나 루트마스터는 트롤리버스를 대체하고 트램의 수요도 일부 흡수하기 시작했다.
차체는 길이에 따라 기본형 RM 8.2m, RML 9.2m의 두 가지를 제공했다. 좌석은 각각 64석, 72석을 갖췄다. 1960년대엔 수요 확대에 따라 RMC, RCL, RMF, RMA, FRM 등이 등장했다. RMF, RMA는 항공사의 요구에 맞춰 출입구를 앞쪽으로 이동하고 접이식 문을 단 버스로,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총 116대가 판매됐다. 1966년 1대의 프로토타입으로 남은 FRM의 경우 엔진을 차체 뒤에 탑재하고 출입문을 앞에 마련해 전혀 다른 차가 되기도 했다.

루트마스터는 최고 115마력을 발휘하는 AEC의 6기통 9.6ℓ과 11.3ℓ 엔진을 얹었다. 1962년 영국 상용차 제조사인 레이랜드가 AEC를 인수하자 레이랜드의 9.8ℓ 엔진을 장착하기도 했다. 변속기는 4단 자동 및 반자동을 조합했으며 앞바퀴를 굴렸다.
문이 없던 루트마스터는 2010년대까지 매년 평균 10여 명의 추락사망자를 야기했다. 그러나 런던교통국은 개선의 의지가 없었다. 2012년 운행을 개시한 뉴 루트마스터는 3개의 출입구를 적용했지만 차체 뒤편에 문이 없긴 마찬가지다.

1968년 2,876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생산된 루트마스터가 공장을 빠져나왔다. 수요가 줄고 회사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다. 결국 레이랜드는 AEC를 폐쇄하기에 이르고 이에 따라 버스의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 수급이 어려워졌다. 때문에 수명을 다한 엔진과 주요 부품은 커민스, 이베코, 스카니아의 것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 이르자 루트마스터의 주 무대인 런던에도 2문 버스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각 문으로 승차, 하차를 하는 새로운 버스의 등장으로 인해 안내 승무원이 필요했던 루트마스터의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0년대엔 런던교통국이 루트마스터의 운행 여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종 노후화, 배출가스 및 인건비 절감 등이 루트마스터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2003년 런던 블랙월역에서 트라팔가 광장을 오가는 15번 노선을 시작으로 루트마스터의 운행이 줄기 시작했다. 2005년 12월9일엔 159번 노선을 다니던 루트마스터가 마지막 정규 운행을 마쳤다. 그러나 관광 목적의 운행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루트마스터는 영국에서 2차 대전 전후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 인식되고 있다. 이층 버스라는 제한된 수요 때문에 생산대수는 적었지만 시대를 초월한 존재감은 상당하다는 평가다. 그 영향력으로 루트마스터는 2006년 콩코드, 스핏파이어 등의 항공기와 미니, 공중전화 박스 등과 함께 영국의 10대 디자인 아이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루트마스터는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랜드그룹이 속초 켄싱턴 호텔과 대구 이월드에 전시용으로 들여온 루트마스터는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 이 버스를 아시나요?① 미쓰비시 후소 에어로
▶ 이 트럭을 아시나요?①-르노 매그넘
Copyright © 오토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