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의 눈부신 하루-나만의 숲, 괴산 여행
이 눈이 부시게 푸르른 계절을 어찌 나야 할까. 사방에 깔린 아름다움에 취해 하루 온종일 황홀경에 빠져보고 싶은데.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 통에 그게 가능할까? 일단 괴산으로 가자.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나만의 숲에 홀로 취해 보자.

괴산이 어디지, 싶을 수 있다. 괴산은 충청북도에 있다. 동쪽에 소백산맥을 끼고 있어 대부분 산지다. 충북 한가운데 가장 넓게 자리한 곳인데 속리산 국립 공원이 감싸고 있어 울창한 거목과 바위 계곡이 풍성한 곳이다. 예로부터 명승지와 유적이 많은 곳들은 유명 관광지의 명성에 걸맞는 관광 호텔과 음식점이 줄줄이 늘어서게 마련. 하지만 괴산은 좀 다르다. 산으로 둘러 쌓인 소박하고 담백한 마을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모던한 호텔 대신 숲을 낀 캠핑장과 소박한 펜션이 많고, 유적보다는 계곡과 바위가 주목받는다. 그래서 괴산에 갈 요량이면 숲속 캠핑장을 숙소로 선택하는 게 옳다. 그래야 하룻밤을 보내도 괴산의 공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서울에서 두시간 남짓, 국도를 따라 도착한 괴산은 한마디로 남다르다. 도시에서 완벽하게 떨어져 나온 것 같은, 숲의 정령이 온몸을 휘감아 세상 시름을 잊게 하는,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서치한 모든 곳을 다 돌겠다는 강박을 털어버리자. 그건 괴산의 시간과 어울리지 않는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보며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깊은 숲을 만나는 여행. 짧지만 깊은 여행이 가능한 곳이 괴산이다.
▶완벽한 숲속 숙소, 코오롱캠핑장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대야로 487
TIP걸어서 10분 이내에 있는 주변 볼거리
-선녀 계곡 코오롱캠핑장 3구역 옆에 있다. 좁은 나무 숲길을 3분쯤 걸으면 작은 폭포와 맑은 물이 가득찬 계곡이 펼쳐진다. 캠핑장에서 일박을 하고 난 이른 아침. 안개길을 헤치며 산책해 보길 권한다.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미로 공원 공원이란 이름 때문에 어린이용이라고 얕잡아보면 안된다. 울창한 나무 사이를 헤매다 길을 잃은 어른이 한둘이 아니다. 그만큼 조성이 잘된 나무 숲이다. 코오롱캠핑장 캠핑카 존 옆에 있는데 깊은 나무 숲을 헤매는 경험이 색다르다. 물론 결국엔 누구나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신선들의 놀이터인가? 화양구곡

코오롱캠핑장에서 20분 정도 차로 달렸을 뿐인데 이런 풍광이 펼쳐진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9개의 계곡을 천천히 돌며 걷는 3km 정도의 이 코스는 걷는 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3시간 코스도, 반나절 코스도, 하루 온종일 코스도 될 수 있다. 부지런히 보물찾기 하듯 탐험하며 걷는다면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그 존재를 드러내는 계곡에 취해 풍광을 즐기다 보면 하루 종일 즐길 수도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곡부터 감상하기로 하자. 하류부터 순서대로 나오는 9곡 중 첫 번째 경천벽(擎天壁)은 공영 주차장 바로 앞에 있다. 기암괴석이 하늘을 향해 가파른 모양으로 솟아올라 있다.


역사적 사실, 이 정도만 기억하자화양서원 화양구곡은 조선 후기 문신 우암 송시열과 깊은 관계가 있다. 송시열은 조선 성리학의 대표. 화양서원은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곳이며 숙종때 어필로 현판을 달았다. 명나라 의종과 신종의 신위를 모신 만동묘를 원내에 두고 있어 조선후기의 혼란함을 대표하는 서원이자 노론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이다. 화양구곡 4곡인 금사담 바로 앞에 있다.


▶만동묘
화양(華陽)은 중국의 햇빛이라는 뜻. 송시열이 화양동을 사랑한 것은 그가 명나라를 떠받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양서원 내에 위치한 만동묘는 그걸 온몸으로 증명한다.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을 위해 세운 사당이기 때문이다. 송시열의 유언으로 지어진 이곳은 들어가는 계단 자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파르다. 명나라 황제에게 예를 다하러 올라가는 길에 허리를 굽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명암이 교차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만큼 돌아볼 의의가 있다. 하지만 긴 계단을 오르면 내려다 보이는 화양구곡의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다.

▶쌍곡구곡과 소금강
속리산을 끼고 있어 계곡이 수려하고 깊은 괴산에서 어디를 갈 것이냐를 두고 고민한다면? 십중 팔구 화양구곡과 쌍곡구곡 때문일 것이다. 사실 화양구곡과 쌍곡구곡 중 어디가 먼저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둘 다 괴산8경 중 하나이고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 다만 화양구곡은 차로는 접근이 불가능한데 반해 쌍곡구곡 중 일부는 드라이브를 하면서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쌍곡구곡은 호롱소, 소금강, 병암(떡바위), 문수암, 쌍벽, 용소, 쌍곡폭포, 선녀탕, 마당바위(장암) 이렇게 9곳. 퇴계 이황, 송강 정철 등 조선 당대의 문인들이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수련했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골짜기마다 위엄이 서려있다. 군자산, 비학산 등이 감싸고 있는 쌍곡구곡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압권인데 여기에 기암절벽과 노송이 어우러져 기품 있는 산수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중 2곡 소금강은 놓칠 수 없는 절경이다. 쌍곡 입구에서 2.3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 하다 하여 작은 금강, 즉 ‘소금강’으로 불린다. 거대한 바위 절벽이 마치 병풍처럼 강을 따라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기세 등등하다. 그 사이사이에 피어난 노송들은 의연한 학과 같고,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은 시리게 푸르다. 이 압도적인 장면에 마음을 홀려 시간을 잊는다. 그런데 이 경이로운 장면을 힘겨운(?) 구곡 트래킹을 하지 않고도 볼 수 있다. ‘소금강 휴게소’를 찾으면 된다. 517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볍게 드라이브를 하면 그만이다. 화양구곡으로부터 25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이곳은 쉬이 상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휴게소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휴게소 이정표에 따라 주차를 하는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눈앞에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소금강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소금강이 휴게소 건물을 둥글게 에워싼 형태인데, 어찌 보면 이곳이야말로 소금강을 제대로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 할 것이다. 원두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데크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소금강. 실제로 휴게소에 들어서면 파라솔 아래 자리한 데크에 누워 풍광을 감상하는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마치 계곡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는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말이다. 숲속의 이 휴게소는 아담하다. 그래서 번잡하지 않다. 딱 필요한 것을 딱 알맞게 갖추고 있다. 정갈한 한식이 제공되는 식당, 커피를 파는 카페, 작은 편의점 정도다. 소박한 휴게소와 넓은 야외 공간. 소금강을 마주하기엔 최적의 구성이다. 휴게소보다는 전망소라는 명칭이 오히려 더 어울리는 곳이다.
▷Info 소금강휴게소
주소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로 242
메뉴 버섯전골 1만5000원, 산채비빔밥 9000원, 육개장 8000원, 갈비탕 9000원

▶괴산 오일장과 그냥 치킨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만끽했다면 이제 사람 냄새 나는 괴산의 속살을 마주해 보는 것도 좋겠다. 무조건 괴산 오일장을 권한다. 시장에 가면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에너지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5일에 한번씩 열리는 전통 재래 시장이라면 말해 뭐할까. 괴산 오일장은 매달 끝자리 3일과 8일에 열린다. 시골 장터의 풍요로움과 왁자지껄함이 살아있는 이곳엔 자연산 나물, 싱싱한 과일, 소박한 그릇, 각종 모종과 식물 등이 넘쳐난다. 그리고 맛있는 간식이 있다. 설탕을 듬뿍 뿌려 먹는 찹쌀 도넛, 꿀 떨어지는 호떡, 재래식으로 튀겨낸 통닭…. 이 모든 것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자연 속 트레킹으로 출출해진 위장을 채우고도 남는 넉넉한 인심은 덤이다. 괴산 오일장의 진정한 명물은 가마솥에 튀겨낸 통닭. 이름하여 ‘그냥 치킨’. 이곳을 찾는 건 식은죽 먹기다. 아침부터 길게 줄을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긴 줄은 기본이고 닭이 튀겨지는 족족 팔려 나간다.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서 튀겨지는 치킨의 압도적인 비주얼은 그냥 지나치긴 어려울 정도. 빨간 셔츠와 빨간 앞치마를 입고 끊임없이 작업을 하는 사장님의 모습은 이미 오일장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가성비도 갑이다. 닭다리 7개에 5000원, 닭날개 15개 5000원, 토종닭 한 마리에 1만 원이다. 아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오일장에서 간식 쇼핑을 했다면 허영만의 『식객』에 나온 노포로 걸음을 옮겨보자. 괴산 오일장에서 십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할머니네 맛식당’. 2대째 이어오는 이곳은 올갱이 해장국 전문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출한 메뉴가 손님을 맞이한다. 올갱이 무침과 해장국 단 두 종류다. 메뉴가 이렇게 적다는 건 하나의 맛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맛집의 자존심이다. 20년 된 된장과 5년 된 된장을 섞어 국물을 내고 과하지 않은 양념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해장국은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특히 올갱이에 밀가루를 입혀 비린 맛을 없애 국물이 깊고 구수하다. 값은 보통이 한 그릇에 7000원, 특대 사이즈는 1만 원이다. 괴산에 와서 단 하나의 토속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단연 올갱이국이다.
주소 충북 괴산군 괴산읍 괴강로 12 영업 시간 매일 06:30~21:00
[글과 사진 우주엔(프리랜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31호 (20.06.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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