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경찰 출석' 오거돈은 한 달 동안 어디 있었나
(시사저널=박석호 부산일보 기자)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전대미문의 '집무실 성추행' 범죄로 사퇴(4월23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오 전 시장은 경남 거제의 한 펜션에서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던 그가 모습을 나타낸 건 22일.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비공개 출석했다. 오 전 시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하는 상황에도 여러 가지 논란은 해소되지 않았고, 부산시는 업무 공백과 함께 조직 내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23일 사퇴와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거주하던 관사에도 들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일부 시민이 이날 부산-거제 간 거가대교의 한 휴게소에서 오 전 시장을 봤다면서 언론에 사진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동선을 놓고 추측만 난무했다. 27일엔 부산 강서구 구포대교 위에 '옷과 신발, 휴대폰이 있고 사람이 없다'는 내용의 119 신고가 접수돼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CCTV에서 한 남성이 투신하는 모습이 확인되면서 오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사퇴 11일이 지난 5월4일 오 전 시장은 경남 거제의 한 펜션에서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목격됐다. 이 펜션은 오 전 시장과 가까운 건설업체 대표의 소유로 알려졌다. 오 전 시장은 지난달 23일 사퇴한 뒤 이 펜션에서 외부 접촉을 피하면서 줄곧 지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오 전 시장은 자신을 알아보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 잘못 봤다"며 차를 타고 황급히 현장을 떠났다.
이후 오 전 시장의 행적은 전남 순천에서 드러났다. 부산지방경찰청이 5월18일 전남 순천시 소재 한 주택을 수색해 오 전 시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것이다. 경찰이 오 전 시장의 신병을 사실상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이었을까. 오 전 시장은 22일 오전 8시께 부산경찰청 지하주차장을 통해 조사실에 들어갔다. 사퇴 29일 만에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총선 이후 사퇴' 공증 의문점
오 전 시장 성추행 사건 이후 가장 두드러진 논란은 이른바 '공증(公證)' 문제였다. 성추행 사건에서 가해자의 공적 직위에 대한 사퇴 여부를 놓고 공증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날은 지난 4월7일. 오 전 시장 측은 총선이 코앞이라는 점에서 4·15 총선 이후 시장직에서 사퇴하기로 하고 피해자와 이를 공증했다고 한다.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걸 원하지 않은 피해자가 선거가 끝난 이후 사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공증을 제안했는지, 공증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공증을 맡은 법률사무소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부산'이라는 점이다. 거기다 이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다. 정 변호사는 지난 2018년 부산시장 선거 당시 오거돈 캠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도 이곳 출신이다.
여권 인사들과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는 법무법인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에서 공증 업무를 맡은 것이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청와대가 사건 직후 이를 인지했느냐는 의혹으로 번졌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해당 법무법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고, 정 변호사도 "소설에 가깝다" "증권가 지라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오 전 시장과 정 변호사의 특수관계로 볼 때 법무법인 부산이 이 사건의 공증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성추행 사건의 경우 명백한 물증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 사건 등 저명인사들이 연루된 사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은 공증서까지 작성하면서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고, 얼마 뒤 약속한 대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피해 여성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이는 곧 오 전 시장의 성추행 범죄가 동일한 피해자에게 반복됐고, 피해자는 또 다른 성추행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오 전 시장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같은 달 27일 윤리심판원 전체회의를 열어 오 전 시장을 만장일치로 제명했다. 이로써 오 전 시장은 민주당원 신분이 박탈됐다. 그는 소명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 같은 날 이해찬 대표는 "피해자와 부산 시민, 국민께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산 지역 여권 관계자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민주당 부산시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잠잘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을 때 지역 사령관이라는 사람은 성추행을 하고 있었다"며 어이없어 했다.
총선에 나선 한 후보자는 "우리가 표를 얻으려고 그렇게 바닥을 누비는 순간에도 당 소속 광역단체장은 집무실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민주당이 폭망한 건 오거돈 때문"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2018년 오 전 시장 취임 이후 정무직 인사들이 부산시에 대거 들어왔다. 그동안 정무라인 인사들은 인사 개입, 일방적 정책 하달 등의 논란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시 조직 내 갈등 격화
오 전 시장의 사퇴와 함께 물러났던 신진구 대외협력보좌관이 지난 5월18일 업무에 복귀하자 갈등이 폭발했다. 부산시 공무원 노조는 '오거돈의 핵심 측근 신진구는 물러나라'는 현수막을 시청 입구에 걸어놓고 신 보좌관의 출근을 반대하고 있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행정부시장)은 "동남권 관문 공항 추진 등 정무 기능이 중요한 시점이며 신 보좌관이 일정 역할을 해 왔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야당과 노조만 자극했다. 성추행 사건 진상조사단을 맡고 있는 정오규 미래통합당 전 부산 서·동구 당협위원장은 "시장 권한대행의 핑계에 부산 시민이 분노한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여권 후보로 변신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고 비판했다.
숨죽이고 지내던 '늘공'(직업공무원)들 의 불만도 표면화됐다. 부산시 공무원노조는 지난 5월7~13일 시 본청과 직속·산하기관 공무원 1428명을 상대로 한 '민선 7기 2년 시정 평가와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정 운영 평가에서 55.8%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고, 긍정 평가는 10.4%에 그쳤다. 정무라인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정무라인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38%가 '모든 업무에 대한 지나친 개입'을 꼽았다. 그다음으로 '지시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29.1%), '채용과 승진 등 인사 개입'(12.6%), '직업 공무원과의 소통 부재'(17.2%)라는 답변도 나왔다.
오 전 시장의 성추행 범죄는 피해자는 물론이고 부산 시민, 시청 내 공직자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사건이 드러난 지 한 달이 넘도록 숨어 지내는 전 시장에게 전직 대학총장, 전직 시장, 전직 장관으로서의 사명이나 책임감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이제는 수사 당국이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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