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아들 계좌서 5억 빼낸 80대 노모 징역형 집유

유영규 기자 2020. 5. 2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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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을 앓던 40대 아들이 숨지자 사망 당일 아들의 계좌에서 5억 원이 넘는 돈을 빼낸 혐의로 기소된 80대 여성이 법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서 변호인은 피고인이 생전 아들의 재산을 관리해왔으며 사후 이체한 돈을 모두 아들의 채무 변제 등에 사용했다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배심원들은 전원 유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수원지법 형사11부(김미경 부장판사)는 오늘(20일) 사문서위조 및 행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A(83)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A씨는 2018년 8월 8일 오전 9시 27분쯤 딸과 함께 경기도의 한 은행을 찾아 숨진 아들 B(당시 42세)씨 명의의 예금거래 신청서를 위조해 은행 직원에게 제출, 딸의 계좌로 4억4천500만 원을 이체하는 등 같은 달 2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5억4천800여만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습니다.

A씨의 첫 범행 시점은 아들이 사망한 지 8시간가량이 흐른 뒤였습니다.

검찰은 A씨가 숨진 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수법으로 은행을 속여 돈을 빼냈다고 판단했습니다.

B씨의 사망에 따라 상속인인 초등학생 딸에게 가야 할 재산을 A씨가 가로챈 셈이 되는 것입니다.

재판에 넘겨진 A씨 측은 배심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습니다.

지난 19일 오전 9시 30분 배심원 선정기일로 시작한 이 국민참여재판은 이튿날인 오늘 오전 2시 30분까지 17시간 이상 이어졌습니다.

A씨 측은 6차례에 걸쳐 이체·인출한 돈을 모두 B씨의 개인채무 변제, 장례비 및 병원비, 사업장 인건비와 임대료, 공사대금 채무 변제, 사업장 전기료 등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A씨가 얻은 이익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 변호인은 "A씨는 아들이 생전 부족한 경제 관념으로 인해 사업실패를 하고 손실을 보자 오래전부터 대신해서 재산관리를 해왔다"며 "아들이 사망하기 전 수억 원의 채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재산관리를 위임받은 피고인이 대신 일 처리를 해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 어떤 피해자에게도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피고인에게 불법영득의사(본인 또는 제삼자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보관하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 소유인 것처럼 처분하는 것)가 없었으며,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행위로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우리 법원은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도 행위와 수단이 불법적이면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한다"며 "예컨대 물품을 반환받을 권리가 있다고 해도 상대의 승낙 없이 물품을 가지고 간다면 절도죄에 해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맞섰습니다.

또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은행"이라며 "사망자의 상속인인 초등생 딸이 예금 지급을 청구할 경우 이중지급의 위험 부담을 안게 되고, 이와 관련한 민사소송이 제기될 수 있어 그만큼의 비용과 시간도 소요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찰은 다만 A씨가 고령이고 초범인 점, 법률에 어두웠던 점, 아들의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고 일부가 아들의 채무 변제에 사용된 점 등을 고려해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아들을 떠나보낸 뒤 이 사건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서는 과정에서 아들이 떠올라 너무나 힘들었다"면서 "아들의 빚을 정리하고 일 처리를 한 것이 법에 저촉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양 측의 주장을 청취한 배심원 7명은 모두 유죄 평결을 냈습니다.

양형 의견은 징역 1년 6개월 4명,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1명, 징역 2년 1명, 징역 2년 6개월 1명이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숨진 아들의 재산을 관리한 어머니라고 해도 아들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예금을 인출한 것은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윤리, 사회통념에 비춰 허용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이 사건 피해 금액은 5억 원이 넘고 은행에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도 "피고인이 아들의 채무를 변제해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고, 이후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 보상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습니다.

유영규 기자ykyo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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