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100단 택시기사 2명, 2억 보이스피싱 범인 잡았다

이승규 기자 2020. 5. 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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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기사 2명의 기민하고 치밀한 대응이 2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보이스피싱 범인 검거를 이끌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대구 달서경찰서는 50대 A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4월 29일 체포되기까지 10여일간 대구·부산 일대에서 보이스 피싱 수법으로 약 2억 7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해 “기존 대출금을 반납하면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준다”며 피해자를 속인뒤 직접 만나 현금을 가로챘다. 최근 대구에서 증가 추세인 ‘대면편취형’ 수법이다.

/일러스트=정다운

특히 A씨 체포에는 택시기사 2명의 공이 컸다.

지난달 29일 택시기사 B씨는 A씨를 대구에서 태운 뒤 경남 마산과 부산 일대를 돌았다. B씨에겐 ‘운수 좋은 날’이었다. 약 4시간 동안 택시 미터기엔 26만원이 넘는 금액이 찍혔다.

손님 A씨는 중간중간에 잠시 택시에서 내려 10분간 어딘가를 다녀온 뒤 다시 탔다. 처음에 택시비를 떼먹는게 아닌가 걱정했던 택시기사 B씨도 휴대폰 번호를 교환한 뒤, 매번 택시로 돌아오는 A씨를 보고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B씨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A씨가 한 여성에게 현금이 든 봉투를 받는 것을 목격했지만 범죄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대구로 돌아오던 중 A씨의 범행은 꼬리를 밟혔다. 위치 추적으로 A씨가 B씨의 택시를 타고 이동중임을 파악한 경찰이 B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B씨는 운전을 하고 있어 휴대폰 스피커를 켠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 A씨를 태웠는지 여부 등을 묻자 A씨는 즉시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또 B씨에게 택시비 30만원을 던지고 내려 맞은편에서 오던 다른 택시로 갈아탔다.

이때 B씨는 A씨가 탑승한 택시 번호를 침착하게 기억해 경찰에 제보했다. 그 덕분에 경찰은 A씨가 갈아탄 택시를 몰던 택시기사 C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C씨는 마침 A씨를 내려준 뒤 같은 은행에 들어가 돈을 찾던 중이었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동선과 위치를 제보받고 체포에 성공할 수 있었다.

대구 달서경찰서는 지난 7일 범인 검거에 공헌한 택시기사 두 사람에게 표창장과 30만원 상당의 포상금을 수여했다. 택시기사 C씨는 “은행에 볼일이 있었는데 마침 거기에 범인이 있다기에 도와드린 것일 뿐”이라고 했다.

최근 대구 지역에는 금융기관 직원 등을 사칭한 대면편취형 범죄가 늘고 있다. 대구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 355건 중 137건(38.6%)이 대면편취 유형이었다. 대면편취형은 지난해 동기간엔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등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정부지원서비스가 제공되자 이를 악용한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A씨 역시 이혼 후 생활고로 고민하며 고액 알바를 알아보다 범죄에 가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중석 대구 달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은 “경찰의 검거 활동에 적극 협조해주신 기사분들께 감사드린다”면서 “최근 코로나 사태 장기화를 악용한 범죄가 늘고 있어 각별한 주의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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