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당락으로 갈리는 보좌진들의 운명은

정용인 기자 2020. 5. 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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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선거 끝난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별정직 공무원 2700여 명 이합집산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국회 직원은 3483명이다. 총선 결과는 이들의 ‘운명’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별정직 공무원 신분인 의원 보좌진이다. 의원이 300여 명이니 2700여 명에 이른다. 총선결과는 이들 별정직 공무원들의 ‘앞으로의 4년’ 신분도 결정한다. 선거에서 이긴 쪽은 신분 변동이 적다. 자리를 옮기더라도 4년간 계약직 공무원 신분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 쪽은 사정이 다르다. 새로운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선거 후 개원까지 신임 국회의원이 당선자로 머무는 권력교체기. 의원의 당락에 따라 보좌진의 ‘운명’도 엇갈린다. 사진은 황혼 무렵의 여의도 국회의사당. 우철훈 선임기자



갈 곳 사라진 미래통합당 보좌진들

“저쪽 사정은 심란할 겁니다. 망해도 너무 망했거든요.” 보좌진 경력만 20년 넘은 민주당 핵심 당직자 ㄱ씨의 말이다. 여기서 저쪽은 미래통합당을 말한다. 그가 ‘폭망’을 거론한 것은 이번 총선결과만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권만 바뀌었나요. 그 뒤에 지자체장 바뀌었지 게다가 국회까지…. 솔직히 갈 데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저에게도 저쪽 사람들의 청탁이 들어옵니다. 솔직히 통합당 성향까지는 아닌 친구인데, 17대 열린우리당 때 고향이 경상도라 어쩔 수 없이 그쪽에서 경력을 시작한 친구입니다. 우리 쪽에서는 직장을 잡을 수 없어서 그쪽으로 간 것인데….” 그는 “안타깝지만 자신이 도움을 주기는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전 ‘민주당 출신이 아닌 다른 당 출신 보좌진을 뽑을 때 지난 20대 때 패스트트랙 대립 사건 등과 관련된 보좌진은 아닌지 평판 조회에 신중을 기하라’는 내용의 당 사무총장 명의의 공문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민생당 낙선의원 보좌관 ㄴ씨는 “신중을 기하라고 했지만 사실상 뽑지 말라고 지시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ㄴ씨의 말이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기존 민주당 보좌진들이 대거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빈자리를 메운 것이 의원을 따라 ‘국민의당’으로 옮겼던 보좌진들이었다. 자신들도 그렇게 자리를 옮겨놓고, 막상 여당이 압승하니 당 밖으로 나간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안 된다고 한다. 솔직히 화장실에 갈 때와 나올 때 표변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정가에서 이번 총선에서 화제를 모은 과거 의원실이 있다. 328호다. 고 김근태 의장의 열린우리당 시절 의원실 호수다. 의원실 출신 다섯 명이 차례로 ‘배지’를 달았다. 기동민 의원은 재선이 되었고, 유은혜 의원은 장관이 되었다. 김원이·허영·박성혁 보좌관은 이번에 초선 배지를 달았다. 이른바 ‘GT계’ 또는 민평련 계열을 이번 총선에서 물밑의 승자로 부르는 까닭이다. 지난 4월 26일엔 이들 328호 출신 당선자들을 비롯해 총 27명이 함께 모여 마석 모란공원의 김근태 의장 묘소를 찾았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 측 실무진들은 의원이 낙선해도 여유가 있다. 갈 데가 많기 때문이다. 의원실이 아니더라도 자치단체 정무직·별정직 공무원으로 옮길 수 있다. 게다가 지난 지방선거 압승으로 다 채워지지 않은 자리가 많다. 그러나 122석에서 103석으로 줄어든 미래통합당의 경우 다르다. 103석 중 58명이 초선이다. 제한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 경쟁에서 떨어지는 경우엔? “흔히 말하는 여의도 낭인이죠. 의원회관 맞은편 여의도동 일대의 사무실을 전전하면서 알맹이 없는 명함만 있는….”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사무처 출신 인사 ㄷ씨의 말이다. 모시던 의원의 낙선을 기회로 여의도를 떠나 다른 직장을 찾는 경우도 많다. “가장 많이 전직하는 경우가 흔히 말하는 기업대관팀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는 기존의 연줄이나 인맥이 있어야 가능한 자리죠.”

민주당 유력 재선 의원의 수석 보좌관을 맡을 예정인 ㄹ씨는 아직 보좌진 인력트레이드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진 않았다고 귀띔한다. “보좌 인력을 구하는 공지가 올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의원들의 상임위도 결정되지 않았고, 의원회관 의원실 배정도 당까지만 결정되었을 뿐 아직 호실은 민원 수렴을 안 한 상태”라는 것이다.

사실 ‘인사가 만사’라는 원칙은 보좌진 구성에서도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ㄹ씨의 말이다. “제일 알기 힘든 것이 사람이다. 아무리 면접을 보더라도 공채로 시험 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기 힘들다. 특히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의 경우 같이할 팀을 얼마나 잘 구성했느냐에 따라 4년 성적표가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처음엔 평가가 어렵지만, 이후엔 확연히 결과가 드러나기 때문에 4년 뒤엔 누가 남을 사람이고, 앞으로도 같이할 사람인지는 명확히 알 수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보좌진 전원을 새로 구성해야 하는 초선의원의 경우, 전체 인력을 첫 경험자로 쓸 수는 없다. 어느 정도 국회 경험이 있는 노련한 보좌진을 기존 의원들로부터 수혈받아야 한다. ‘도미노 전직’으로 인력트레이드 시장이 열리는 이유다. 그렇다고 선거 시기 자신을 도왔던 캠프 출신 인사들을 배제할 수도 없다.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한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오히려 선거 후 들어오는 민원 중 ‘자신이 아는 유능한 인사를 써달라’는 보좌진 인사청탁 민원이 제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보좌진 선정따라 4년 성적표 달라진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일은 크게 ‘정무’와 ‘입법’으로 나뉜다. 의원실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이것은 다시 정책과 정무 내지는 지역보좌관으로 나뉜다. 정무는 지역구 관리, 당 내외 의원과의 관계 등을 포함한다. 정책보좌관은 상임위별 전문성을 갖는다. 의원이 낙선하더라도 해당 상임위에 소속될 다른 의원실로 옮겨 계속 일할 가능성이 높다. ㄹ씨의 말이다. “그렇다고 엄밀하게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 전문성을 가진 보좌관이라고 꼭 새로 당선된 의원실로 옮길 수 있도록 보장된 것도 아니다. 선거 때는 정무든, 정책이든 지역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시는 의원이 당선돼야 앞날도 보장되는 것이니까.”

국회의원 수당에 관한 법률 등으로 각 의원실이 뽑을 수 있는 보좌진은 인턴 1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이다. 이중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이 각 2명, 6급에서 9급까지 비서가 각 한 명씩 총 8명이다. 4급 보좌진은 연봉 8300만원(세전) 정도를 받는다. 5급은 7300만원 수준이다. 9급 비서는 약 3400만원 정도다. 센 편이다. ㄱ씨는 국회의원 보좌관의 업무 강도 등을 고려하면 결코 높은 임금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기업의 경우 매일매일 업무가 정해져 있는 편인데 비해 국회에서의 일은 입법정책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여 년을 국회에서 보낸 ㄱ씨는 과거에 비해 보좌진이 정책 전문성으로 당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80년대 학생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정치인 보좌진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모시는 의원과 별도로 통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창당한 2003년 정도까지는 그래도 보좌진끼리는 어느 정도 말이 통했는데, 운동권이 사라진 이후 세대는 비서단계부터 이념 성향이 뚜렷한 보좌진이 자리 잡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보좌진들 사이에서 인적 교류가 끊겼다. 소통이나 선·후배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도 당이나 정파별로 따로 가고 상대방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ㄹ씨는 “농담조로 당이 다르면 파란피(민주당)와 붉은피(미래통합당)가 흐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것도 ‘20대 국회 끝, 21대 국회 시작 무렵’의 달라진 국회풍경 중 하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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